불교 수행의 최종 목표는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하는 해탈과 열반이다. 해탈은 2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깨달음, 둘째는 업의 소멸이다. 이에 따르면 깨닫고 업은 남은 상태, 깨닫지는 못했지만 업은 소멸된 상태라는 두가지 애매한 지점이 남게 된다.

전통적인 입장에 따르면 두가지 모두 완전한 열반은 아니라고 한다.
첫번째 상황인 깨달았으나 업이 남은 상태에서는 아라한이 되어 육체가 소멸될때까지 업을 소멸시키거나 보살로 윤회하며 자비를 배풀게 된다고 한다.
두번째 상황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면 새로 업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 순간까지 업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반면에 나는 논리적 관점에서만 봤을 때 두가지 모두 온전한 해탈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깨닫긴 했는데 업은 남은 상태에 대해서 보겠다. 깨달음이란 무상과 무아이다. 무아는 나는 고정된 실체가 없어서 자신의 영혼이 그대로 내세에 연결되는 게 아니라 업에 따른 연기에 의해 오온이 상호작용하여 새로운 실체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를 체험하고 느끼는 "나"의 관점에서 윤회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느끼는 실존적 "나"와 업이 분리가 되므로 현상적인 "나"가 윤회를 겪는게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생에 일시적으로 형성된 것에 불과하여 "나"는 사실상 "윤회로 인해 발생하는 번뇌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쉽게 말해 내가 죽은 후에 나의 업으로 인해 새로 만들어진 별개의 존재가 지금의 생을 살고 있는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런 예시를 들어보겠다. 내가 죽으면서 나의 모든 재산을 어떤 가난한 부부에게 물려줬다. 그 부부는 이후에 아기를 낳았는데 내가 물려 준 재산으로 그 아기는 유복한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면서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그 아기와 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나의 선업은 그 아기에게 전달된 셈이다. 그렇지만 그 아기는 내 영혼의 환생이 아니기 때문에 그 아기가 겪게 될 경험과 현상의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현상의 나와 새롭게 만들어지는 그 존재는 다르지 않고 하나라는 공사상을 이용해서 반박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까지 연결이 된다면 애초에 윤회의 중단 자체를 추구할 이유가 남아있다고 볼 수 있을까?

깨닫지는 못했는데 수행을 통해서 업만 소멸된 상태 역시 논리적으로 보면 윤회가 발생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한 것이므로 해탈이다. 나의 죽음 후 나를 형성한 오온은 흩어지고 업에 따른 연기에 의해서 오온이 상호작용하여 새로운 존재를 이루게 된다. 그런데 남은 업이 없으므로 연기가 작용하여 오온이 다시 결합하지 않는다. 그렇게 실제로 윤회가 멈추게 된다.

수행이 생활화되어 모든 업을 소멸시킨 수준에 도달한 사람이라면 새로운 업을 쌓지 않는다는 가정이 비현실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를 들어보겠다. 어떤 사람이 한동안 청소에 소홀해서 방바닥에 먼지와 머리카락이(업) 두텁게 쌓여있다. 그는 방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청소를 한다.(수행) 그는 이후에 청소하는 습관을 유지하기 때문에 그의 방은 바닥에 먼지가 쌓일 틈이 없이 항상 청정하다.

첫번째 경우는 윤회의 의미를 제거하는 형태의 해탈이고

두번째 경우는 윤회라는 현상을 제거하는 형태의 해탈이다.

 

한편 해탈을 내세가 아닌 현세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도 가능하다. 석가모니는 독화살의 비유를 들어 형이상학적인 접근보다는 현세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업를 쌓는 것은 내세뿐만 아니라 현세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쁜 업은 나쁜 습관과 원한과 울분을 만들고 좋은 업은 좋은 습관과 좋은 인간관계와 행복을 이끌기 때문이다. 이런 한 생애 내에서의 악업의 순환과 반복 역시 일종의 '작은 윤회'로 볼 수 있다. 욕심 성냄 어리석음을 버리고 깨달음과 지혜를 얻는 것은 반복되는 현재의 고통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해준다. 윤회의 문자적 정의에만 집착하기부다는 이렇게 현세적으로 윤회를 활용하는 관점을 활용한다면 번뇌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는 불교의 가르침을 현대적 요청에 맞추어 향유할 수 있게 된다. 

Posted by 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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