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통제의 신, 얄다바오트와의 결전  

 

와타나베는 벨벳룸에서 눈을 떴다. 이고르는 세상은 갱생에 실패했고 세상은 더이상 존재할만한 가치가 없으니 이제 파멸시키겠다고 말한다. 그때 이고르를 여태까지 보좌하던 간수가 지금껏 이고르인줄 알고 있었던 그자는 사실은 가짜 이고르였고 진짜 이고르는 지금까지 그에게 봉인당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진실이 밝혀지자 가짜 이고르는 자기가 통제의 신 얄다바오트이고 현재는 메멘토스의 성배가 그의 본체라고 밝힌다. 자기는 세상을 창조한 게 아니라 나태한 대중의 염원으로부터 만들어진 존재라는 점도 알려준다.

 

통제의 신의 관점에서는 팰리스를 가진 탈옥수들은 시스템을 위협하는 변종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와타나베에게 '갱생과 자유'라는 그럴싸한 정의의 깃발을 쥐여주며, 시스템에서 이탈해 자신만의 성을 구축한 탈옥수들을 사냥해 오라고 명령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력한 페르소나 능력을 쓰고 예고장을 날리며 밤하늘을 날아다니던 괴도단의 진짜 정체는, 탈옥한 노예들을 사냥해 다시 지배자의 감옥 쇠창살 안으로 욱여넣던 시스템의 충직한 사냥개이자 솜씨 좋은 추노꾼에 불과했다. 또한 추노꾼 와타나베 역시, 남의 사슬을 채워주며 자신도 사슬에 묶여 있는 줄 모르는 가련한 수감자 중 하나일 뿐이었다.

 

가짜 이고르는 와타나베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

"인간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나태하고 어리석었어. 이제 곧 세계는 파멸을 맞이할 테지. 너는 게임에 졌어."

"인간 세계를 남길 것인가, 부수고 다시 창조할 것인가 모든 건 나의 게임이다."

 

이 선택지에 따라 그는 인간 세계를 부수고 다시 창조하려고 했다. 하지만 와타나베가 그동안 보여줬던 활약이 흥미로웠기 때문에 세상을 파멸시키지 않고 이전대로 되돌리고 너는 괴도단으로서 활약을 하고 살게 해주겠다고 제안을 한다. 여기서 수락을 하면 배드엔딩으로 직행한다. 배드 엔딩의 내용은 이고르가 말한대로 예전과 똑같은 세상이 이어지면서 괴도단은 수많은 사람들을 개심시키는 거짓 영웅이 된다. 가치관에 따라선 이걸 굿엔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와타나베가 제안을 거절하면 가짜 이고르는 메멘토스와 현실 세계를 통합하여 세계를 파멸시키기 위해 벨벳룸을 떠난다. 그가 떠나자 벨벳룸 구석에 봉인되어 있던 진짜 이고르가 나타난다. 와타나베는 벨벳룸의 다른 감옥에 수감된 동료들을 모두 구출한다. 동료들이 모두 벨벳룸에 모이자 이고르는 와타나베가 어떻게 가짜 이고르에게 기만을 당했는지 그 뒷사정을 알려준다. 튜토리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던 모르가나는 이고르가 봉인당하기 직전에 인간에 대한 얼마남지 않은 희망을 긁어모아 실체화해서 세상을 뒤엎을 존재를 돕기 위해 창조한 존재였다.

 

이고르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나태한 정신이 만들어낸 성배, 즉 통제의 신은 이런 세상은 더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세상을 멸망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혹시 그런 인간에게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가지고 세상을 뒤집어볼 체스말을 하나 투입해보는데 그렇게 선택된 인간이 와타나베였다. 이세계 내비는 통제의 신이 와타나베의 폰에 설치한 것이었다. 반면 그는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사람들이 통제당하기를 기원하게 되는 목적의 체스말로는 아케치를 선택했다. 통제의 신 편에 섰어야 할 아케치는 역설적이게도 메멘토스를 탈옥하여 팰리스를 구축한 시도 마사요시의 일을 도우면서 자신의 사명을 수행했던 셈이었다.

 

여기서 나는 혼란을 느꼈다. 갱생이란 자유를 향한 열망과 반역으로 인류가 노예와 같은 죄수 생활을 끝내는 것이다. 괴도단은 일관되게 그 목표를 향해서 행동했다. 정작 갱생을 가장 강하게 방해한 것은 통제의 신 자신이었다. 만약 사람들이 성배를 응원에도 불구하고 괴도단이 압도적인 화력으로, (한번의 공격으로 hp가 100만 단위로 삭제) 메멘토스 최심부의 성배를 원자단위로 분해했더라면 아마도 그게 갱생 성공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통제의 신은 다른 압도적인 존재가 자신을 소멸시켜주기를 갈망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때그때마다 자기가 편할 대로 갱생이란 말을 다른 의미로 쓴 것일까?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 구조를 이정도로 해석해봤다. 그는 쉽게 통제당하는 인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멸망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맞는 판단인지에 대한 확신을 스스로에게 심어줄 계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조커가 될 인간을 선택했고 그가 자신에게 지워진 임무를 다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왔다. 조커는 한번의 실수도 없이 모든 미션을 성공해냈는데 의도치않게 자신의 본체에 대한 공격까지 시도할 지경에 이르렀다. 통제의 신 입장에서는 와타나베도, 아케치도 각각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해왔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원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해서 그냥 판 자체를 엎어버리는 걸로 종결 욕구를 해소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단지 인간의 나태한 정신이 뭉쳐서 만들어진 존재니까 이런 결정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

 

괴도단은 가짜 이고르, 즉 통제의 신과 최후의 전투를 벌이기 위해 벨벳룸을 떠나 시부야 역으로 나온다. 얄다바오트의 권능에 의해서 시부야역 주변은 현실과 이세계가 뒤섞인 듯한 삭막한 모습으로 변해 있다. 괴도단은 얄다바오트의 신전과 지상을 잇는 다리를 따라 올라가서 적들을 물리치고 얄다바오트와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얄다바오트는 거대한 로봇 같은 형상인데 강력한 공격들로 괴도단을 위협한다. 그러나 그가 세상의 멸망을 예고한 데다가 위협적인 모습을 직접 드러냈기 때문에 사람들의 무의식은 더이상 그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절망적인 싸움 도중, 미시마를 비롯해 그동안 와타나베가 인연(코옵)을 맺어온 사람들이 거리에서 괴도단을 응원하기 시작하고, 이 목소리가 대중의 인지를 깨우며 괴도단은 다시 실체를 얻게 된다. 승리를 향한 사람들의 염원을 얻은 조커의 페르소나 아르센은 거대한 사타나엘로 각성한다. 조커는 사타나엘의 힘을 빌려 얄다바오트에게 대죄의 총탄으로 헤드샷을 날려 전투를 종결하고 세상을 통제의 굴레에서 해방시킨다.

 

 

4) 오리지널 엔딩 루트, 그리고 살아 돌아온 아케치  

 

얄다바오트가 소멸하면서 이세계(메멘토스)도 함께 붕괴하고, 세상은 정상으로 돌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시도 마사요시에게 법적인 죗값을 묻기 위해서는 그의 범죄를 입증할 증언이 필요했다. 니지마 사에는 와타나베에게 시도를 기소하기 위해 네가 경찰에 출석해 증언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사에는 경찰이 체면 때문에 와타나베를 구속하게 될 건데 증언을 해주겠느냐고 묻는다.

 

아틀러스는 사에의 입을 빌려 경찰의 '체면' 때문에 와타나베가 구속되는 것이라 설명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와타나베는 이미 폭행 전과로 보호관찰 중인 소년범이다. 게다가 시도의 죄가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이상, 괴도단은 여전히 오쿠무라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다. 보호관찰 중인 자가 살인 용의자가 된다면 그를 구속 수사하는 것은 체면 문제가 아니라 당연한 법적 원칙이다. 만약 게임의 설명대로 경찰이 정말 체면만을 위해 죄 없는 소년을 억지로 구속한 것이라면, 이는 심각한 모순을 낳는다. 방금 통제의 신을 쓰러뜨리고 대중의 무의식에서 성배를 치워버렸음에도, 구제 불능인 대중과 권력의 게으름이 순식간에 또 다른 성배를 만들어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즉, 괴도단의 그 모든 고군분투가 헛수고였다는 씁쓸한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그리고 성배와 이 구속과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문제다. 성배를 치워도 사회의 부조리는 성배가 있을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지점에서 페르소나 5 오리지널판과 확장판인 로열의 서사가 갈라진다. 오리지널판에서는 와타나베가 경찰에게 자신이 괴도단임을 밝히고 소년원에 수감된다. 이후 동료들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와타나베를 변호할 증거와 사람들을 모아 무죄 판결을 받게 하고 그를 출소시킨다. 3월이 되면 괴도단 친구들은 다 함께 차를 타고 와타나베를 고향으로 데려다 주면서 게임이 끝난다.

 

이 오리지널 결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게임 배경에 깔린 종교적 모티프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통제의 신 얄다바오트는 영지주의에 나오는 어리석고 불완전한 하급 신 '데미우르고스'인데, 구약의 야훼에 대응된다. 영지주의에 따르면 야훼는 원래 통제를 좋아하는 신이다. 613개의 율법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따르게 했고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는 인간을 악으로 규정해서 죽이곤 했다. 야훼를 따르는 신자들은 사고의 나태함에 빠져서 맹목적인 순종만 하면서 평안과 행복을 느끼며 살아갔다.

 

영지주의와 이외 전승에 등장하는 반역의 타락천사 중에는 사타나엘도 있다. 사타나엘은 '신에게 대적하는 천사'라는 의미를 가졌는데, 유대교 위경(에녹서 등)에서는 그가 아직 사탄으로 완전히 타락하기 전 천사로서 신의 은총인 접미사 '-엘(El)'을 달고 있던 시절의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오리지널의 결말을 영지주의식으로 상당히 거칠게 말하자면, 인류에게 자유의지를 선물하기 위해 성탄 전야에 사타나엘(사탄)이 얄다바오트(야훼)를 저격해 살해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신이 쓰러진 자리에 남은 것은 오로지 인간 스스로 짊어져야 할 현실의 무게였다.

 

한편 로열판에서는 크리스마스 전야에 와타나베가 자수를 하려고 할 때, 시도의 팰리스에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케치 고로가 나타난다. 아케치는 "네가 나 대신 감옥에 들어가는 꼴은 못 본다"며, 자신이 시도의 수하로서 저질렀던 모든 살인과 폐인화 범죄를 자백하겠다고 스스로 경찰서에 출두한다. 아케치 덕분에 와타나베는 수감되지 않고 르블랑으로 돌아온다. 와타나베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동안 열심히 수집했던 여친 중 한 사람을 불러내서 달콤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게 된다.

Posted by 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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