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트릭의 문제점
A. 시신 문제
수사 당국은 괴도단 리더가 자살을 했다고 발표했다. 그게 시도 마사요시 측에서 외압을 넣어서 발표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검시관도 제대로 확인도 안하고 사건 보고서를 썼다고 이야기를 처리한다. 사에는 자신이 서류를 조작해서 시체 안치소에 와타나베의 시신이 있는 것처럼 속였다고 한다.
일단 경찰 입장을 보자. 담당사건도 아닌 여검사가(담당자였지만 교체됨) 심문실을 방문했다. 그러고 나서 용의자가 사라졌다. 근데 윗선에선 자살이라고 발표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 경찰에선 일단 응? 걔 안죽었고 없어진 건데요? 그래도 자살로 발표해요? 혹시라도 나중에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떡해요? 이렇게 반문을 하는게 정상 아닌가?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용의자와 접촉했던 그 수상한 여검사를 불러다가 걔 어떻게 했는지 조사를 해야 하는거 아닌가?
더구나 와타나베가 자기를 감시 중인 간수의 권총을 탈취해서 살해한 다음에 자신도 그 권총으로 자살을 했다는 게 공식 입장인데 어떤 간수가 그 시간에 근무를 했는지는 당연히 근무일지에 기록이 남아있고 그는 실제로 죽지도 않았기 때문에 와타나베가 죽인 게 도대체 누구였는지 설명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
그 시간대에 근무하던 간수가 "저기요. 저 살아있는데요? 제 아내가 저 죽은 줄 알고 경찰서로 찾아와서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덕분에 아내가 절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고 오랜만에 뜨밤을 보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할 것 같다.
또한 간수의 순직은 국가적 입장에선 괴도 사망보다 오히려 더 큰 시스템적인 문제다. 숙련된 간수가 겨우 고교생에게 총기를 탈취당하고 자기 총에 맞아서 죽은 사건이다. 감식과 감찰을 엄청나게 철저하게 했어야 하는데 실제로 죽은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간수는 비록 사에가 죽기 싫으면 도망치라고 겁을 줘서 은둔 생활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사망 신고 들어가서 평생동안 완전히 고립된 인생을 사느니 차라리 저 살아있어요라고 방송국에 가서 커밍아웃을 하는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시도 측으로부터 조작을 지시받은 검시관에게도 이런 문제가 생긴다. 원래는 아케치가 한대로 손에 권총이 쥐어진 주인공이 땅바닥에 뒹굴고 있어야 하고 검시관은 걔를 자살한 걸로 처리하라는 지시를 받았을거다. 근데 조사 대상인 시체가 없다. 걔한테 총맞고 죽었다는 간수도 없다. 보고서를 작성하려면 사체 손상된 부분 사진을 찍고 의사 소견으로 무엇이 사인이 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탄두는 어디에 있는지 혈흔이 어떻게 튀었는지 각종 데이터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는다. 총 맞고 죽은 줄 알았던 놈이 멀쩡히 돌아다니는 건 시도 쪽에선 코드 레드급 비상사태다. 상식적으로 그 매수당한 검시관은 이런 반응을 보였어야 한다. "의원님! 큰일났어요. 지시하신대로 자살로 처리하려고 했는데요, 시신이 없어요. 우리 좆된 것 같은데 어떡해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아직까지 아무것도 안했잖아요. 이 사건에서는 저는 빠져도 될까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성립하려면 추가 설정이 하나 필요하다. 바로 일본 막부 시대의 '직소(直訴)' 제도다. 당시 농민이 억울하다고 절차를 건너뛰고 영주 가마를 막아서면, 내용의 진위와는 별개로 '감히 영주에게 직접 아뢴 죄'로 먼저 처형당하곤 했다. 즉, 죽을 각오가 없으면 상부에 직접 보고하지 말라는 뜻이다.
시도 마사요시의 성질머리가 딱 이 꼴이다. 검시의나 감식반이 전화를 걸어 직통 보고라도 하면, 시도는 "민주사회라 차마 죽일 순 없고" 하면서 "감히 어디다 대고 직접 전화를 하냐"며 일단 빠따 10대부터 때리고 시작하는 엄격함이 수하들의 입을 봉해버렸다고 봐야 그나마 이 어처구니없는 전개가 설명이 된다.
이쯤 되면 검시관도 빠따 10대 맞을 각오를 하고 시도한테 전화를 해서 "의원님! 시체 사진이 없는 부검서를 어떻게 만들어요? 그것도 두건이나요. 그리고 시신이 정말로 없는데 정말 하나도 안 불안하세요? 아케치 걔 혹시 조현병 있어요? 병원에 한번 가보라고 해요. 제발 정신차리세요. 의원님. 이건 제가 충심으로 드리는 말씀인데요, 저한테 요청하신 가짜 검시 보고서가 중요한가요? 아케치가 괴도단 리더를 죽이지 못했고 간수도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을 것 같다는 이 심각한 상황이 더 중요한가요?" 이래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가장 기괴한 건 와타나베가 마치 무연고자처럼 다뤄진다는 점이다. 와타나베는 르블랑 다락에서 살지만 엄연히 부모가 있는 애다. 애가 수사를 받다가 자살을 했으면 부모에게 시신을 인계하고 사건을 공소권없음으로 종결해야 했다. 자살이라고 결론이 났으니까 굳이 시신을 안치소에 보관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사도 팰리스를 시간내에 공략하지 못하면 12월 17일에 아케치가 경찰을 이끌고 르블랑으로 와서 와타나베를 체포한다. 자살한 시점이 11월 20일인데 12월 17일에 시신이 안치소에 없다고 찾아온 것이다. 마치 자살한 시신은 절대로 유족에게 인계되면 안되고 수사기관의 안치소에 영구적으로 보관되어야 하는 법률이라도 있는 것처럼.
B. 통신 문제
기본적으로 이 게임의 세계관에서 팰리스에서는 폰이 안터진다. 그래서 와타나베와 류지가 카모시다 팰리스에 처음 진입했을 때 휴대폰이 불통이었다. 그런데 카지노 팰리스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괴도단은 홀로 카지노에 남은 조커를 무선 통신으로 퇴로에 대한 가이드를 하는 연출이 나온다. 그리고 경찰들도 무전으로 서로 작전 지시를 한다. 아무리 인지된 세계 내부에서의 문제더라도 화면에 안테나가 뜨지 않은 폰으로는 통신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 사람들이 인지하는 사실이다. 이렇게 게임은 은근슬쩍 스스로 만든 룰을 깨버렸다.
이렇게 스스로 만든 세계관 규칙을 망각하다 보니 후타바가 사에에게 보낸 메시지도 문제가 된다. 사에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케치와 마주쳤고 와타나베가 부탁했던대로 와타나베의 폰을 아케치에게 보여준다. 그 때 후타바는 원격으로 이세계 내비를 작동시켜서 두사람을 이세계로 보낸다. 아케치는 사에 팰리스 안의 와타나베를 살해하고 사에는 가던 길을 가던 도중에 알리바바, 즉 후타바의 메시지를 받는다. 후타바는 이미 팰리스에서 탈출한 상태라서 현실 세계에서 메시지를 보낸 건데 팰리스에 있는 사에가 그 메시지를 수신한 것이다.
게임에서 이세계 안에서라면 서로간 통신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이미 룰을 깨버렸으니 그에 맞춰서 따라가보자. 그렇다면 후타바가 현실이 아닌 이세계에서 와타나베의 폰을 가지고 있는 사에에게 메시지를 보냈을 가능성은 없을까? 와타나베의 폰과 아케치의 폰이 같은 위치에 접근하게 되었다는 그 신호를 캐치하고 원격으로 이세계 내비를 실행하려면 후타바는 현실세계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후타바는 현실 세계에 있어야 하고 후타바가 보낸 메세지는 현실과 이세계를 가르는 벽을 타고 넘어서 와타나베의 폰에 도착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무리 같다.
사에는 후타바의 지시에 따라서 와타나베를 데리러 엘리베이터 쪽으로 간다. 그 때 화면이 붉게 일렁이고 사에는 약간의 두통을 느끼면서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사에는 심문실로 들어갔고 그렇게 현실세계의 와타나베를 구출했다. 도대체 후타바는 무슨 용 빼는 재주가 있어서 팰리스 안에 있는 와타나베의 폰에 메시지를 보낼 수가 있었을까?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챕터에서는 아틀러스가 야심 차게 준비했던 '아케치 속이기'라는 정교한 트릭을 복기하며, 그 안에 숨겨진 맹점들을 꽤나 집요하게 파헤쳐 보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천재적인 트릭의 가치가 폄하되어야 한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이야기와 게임이 가져야 할 최우선의 덕목은 단연 '재미'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파트를 플레이하면서 굉장히 짜릿한 장르적 쾌감을 느꼈었다. 아틀러스는 연출과 해설을 통해 마치 완벽한 퍼즐 조각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듯한 서사의 쾌감을 게이머에게 선사해 주었다. 화려하지만 다소 구멍이 있는 이 트릭은 비유하자면, 3D 프린터로 찍어낸 대성당 모형에 기둥 한두 개가 비어 있는 셈이다. 언젠가 무너질지언정, 당장 사진을 찍고 감상하기에는 충분히 아름답지 않은가. 게임은 현실을 재현하기 위한 교과서가 아니다. 게이머로서 감탄하면서 즐거웠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앞서 밝혔듯 이야기를 만드는 취미가 있다 보니, 사에의 팰리스가 공략 대상이 되는 순간 '혹시 심문실의 사에가 섀도가 아닐까?' 하는 대안을 혼자 상상해 보기도 했다. 아마 머리를 짜내어 그 컨셉으로 글을 썼다면 설정 오류가 없는 매끄러운 플롯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완성된 무오류의 서사가, 아틀러스가 만들어 놓은 지금의 트릭보다 더 커다란 재미를 줄 수 있었을까? 나로서는 그럴 자신이 없다. 잘 짜인 트릭의 허점을 찾아 논리적으로 파고드는 '분석의 유희' 자체가, 내게는 플레이의 연장선이었기 때문이다.
* 참고: 시간초과 엔딩에서 혼란에 빠지기 쉬운 지점
이건 아케치 속이기 파트하고는 관계없는 문제이지만 심문실의 액자구조와 관계가 있고 한번에 어떤 원리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서 이 부분도 끼워 넣어 보겠다.
각각 팰리스를 기한 내에 클리어하지 못하면 시간 초과 배드엔딩이 나온다. 대체로 주인공이 르블랑 1층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경찰에게 잡혀가는 구성이다. 그러나 그건 괴도단이 실제로 그 악당들을 개심시키는데 실패했다는 사건이 존재했던 게 아니라 특별 심문실에서 약물을 주입당해서 왜곡된 기억일 뿐이다. 11월 20일까지 모든 팰리스는 클리어된 것은 이미 일어난 사실이다.
예컨대, 5월 1일까지 카모시다를 개심시키지 못하면 와타나베는 슈진고에서 퇴학을 당하고 보호관찰 기간에 사고를 친 죄로 수감이 된다. 그렇다면 현 시점인 11월 20일에 카지노 팰리스를 털고 경찰에 체포되어서 심문을 받을 수가 없다. 아직 만나지 못한 괴도단 멤버인 유스케, 마코토, 하루하고도 모르는 사이여야 한다. 시간초과 엔딩에서 사에는 주인공이 약물 때문에 정신이 나가서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고 말하고 심문을 중단하고 나가버린다. 카모시다를 5월에 실제로 개심시켰으면서 정확하지 않은 기억을 떠올려 개심시키지 못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사에가 떠나 버리면 아케치가 심문실로 들어와서 주인공을 죽인다. 만약 카모시다 팰리스도 클리어하지 못한 게 정사라면 아케치 입장에서는 자기 말고도 이세계를 들락대는 존재가 있다고 알 수도 없고, 시도 마사요시측 입장에서도 굳이 주인공을 죽일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수사기관은 왜 주인공에게 약물을 투입했을까? 약물은 범죄자에게서 정확하고 정직한 진술을 얻기 위한 도구인데 이 서사에서는 약물이 오히려 주인공의 기억을 왜곡시키고 있다. 수사기관은 시도 마사요시의 하수인이라서 진실 따위는 원래부터 관심이 없었다. 괴도의 리더를 체포해서 그들이 오쿠무라를 살해한 진범이라는 거짓 진술이 필요했기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약을 주사한 것으로 보인다. 아케치가 계획대로 주인공을 죽이지 않았더라도 시도의 하수인인 수사 당국은 약물과 고문을 이용한 세뇌 작업으로 주인공에게서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얻어냈을 것이다.
또한 컨티뉴 방식에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시간초과 배드엔딩 내용은 주인공이 아케치에게 총맞고 죽는 것이다. 그러면 느닷없이 벨벳룸이 나오고 이고르가 시간을 돌려줘서 플레이어는 팰리스 공략 마감일의 7일 전 시점에서 다시 플레이를 하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이고르가 돌려준 시간은 플레이어가 맞이한 팰리스 공략 마감 전 7일이 아니라 사에에게 진술 중이던 불과 몇 분 전 시점이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진술을 해서 사에에게 핸드폰을 건내는 미션에 성공하게 하는 것이 이고르가 시간을 돌려준 목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