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페르소나 5에서 가장 짜릿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헛점 투성이였던 아케치 속이기 플롯.

 

1) 사건의 배경

 

6월 9일 슈진고가 방송국에 견학을 갔을 때, 괴도단 친구들은 방송국 복도에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 대화 중에서 모르가나는 커다란 팬케익을 좋아한다는 말을 했는데, 복도 코너를 돌아서 갑자기 등장한 아케치가 나도 팬케이크 좋아한다고 호응을 하면서 괴도단에게 친한척을 하며 접근을 했다.

 

모르가나는 현실 세계에서는 그냥 와타나베가 가방에 넣고 다니는 까만색 애완 고양이일 뿐이고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 귀에는 야옹으로만 들릴 뿐이다. 모르가나의 말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이세계에서 모르가나가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저 고양이가 말을 할 수 있다고 인지를 해야 현실에서도 모르가나의 말을 들을 수 있다는 설정이다. 플레이 당시에 나는 저 캐릭터는 고양이 말을 어떻게 알아듣지? 와타나베 부모와 류지 엄마의 자식에 대한 비현실적인 무심함이나 추행당하는 자신을 도와준 학생을 위한 증언을 하지 않은 여자(이건 알고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이 나중에 밝혀짐)처럼 방치된 설정 오류겠거니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갔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뻔한 권선징악과 중이병 걸린 것같은 이야기로 대부분이 채워진 이 게임에서 가장 천재적인 플롯이었던 아케치 속이기 파트를 향한 빌드업이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진다. 괴도단이 아케치를 처음 마주친건 6월 9일이고 당시는 마다라메가 팰리스를 공략당하고 기자회견이 했던 6월 5일 직후였다. 마다라메의 섀도는 보물을 빼앗기면서, 괴도단에게 '너희 말고도 검은 가면을 쓴 놈이 팰리스를 돌아다닌다'는 말을 했었다. 그리고 모르가나는 누군가 우리들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말을 지나가듯 흘렸는데 이런 것들이 전부 이 파트를 위한 떡밥이었다. 즉 아케치는 마라다메 팰리스에서 괴도단의 활약을 지켜봤고 그 와중에 모르가나가 말하는 걸 봤기 때문에 모르가나가 하는 팬케이크에 대한 말을 알아들었던 것이다. 그러고는 문화제에서 괴도단을 만난 자리에서는 모르가나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 척을 했다.

 

모르가나는 그 점을 의심스럽게 생각해서 아케치를 믿으면 안된다고 괴도단에게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플롯의 만능 해결사 후타바는 괴도단이 작전 회의를 위해 아케치와 이후 만난 자리에서 아케치의 핸드폰을 낚아채서 철부지 4차원 소녀 컨셉으로 장난을 치는 척 하다가 자기가 개발한 도청앱을 설치한다. 후타바는 유능한 해커일 뿐만 아니라 마술사 같은 빠른 손놀림까지 가진 것 같다.

 

아케치의 통화내역을 도청해보니 그는 유력한 총리 후보인 시도 마사요시의 지시를 받고 있었고 괴도단을 체포하기 위해 니지마 사에의 팰리스에 경찰 수백 명을 투입할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아케치가 괴도단과 함께 사에를 개심시키려던 이유는 예쁜 누나를 개과천선 시켜서 사귀고 싶다는 음침한 속내가 아니라 함정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케치는 괴도단의 리더를 체포한 후에 심문실에서 총으로 살해하고 자살로 조작하려고까지 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므로 괴도단의 리더가 체포후 자살한 걸로 발표하고 다른 멤버들도 은밀하게 살해하면 그동안 시도 일당이 저질렀던 폐인화와 인격살해 혐의(이건 이후 퀘스트인 시도의 유람선 팰리스에서 밝혀짐)를 모조리 괴도단에게 덮어씌울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괴도단이 사회적인 우려를 낳고 있었던 일련의 폐인화 사건들을 저질러 온 극악한 범죄자인 것으로 결론이 나면 그들의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비판했던 통찰력 있는 정치인으로서 시도의 지지율은 더 상승하게 될 것이었다.

 

카지노 팰리스를 공략할 때 아케치는 여러가지 기발한 기지를 보이고 심지어 레버리지까지 끌어다 쓰면서 난제를 해결하는 등 엄청나게 유능한 지능캐다운 모습을 보였다. 이 점은 플레이어에게 아케치에 대한 호감이 쌓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 당시 플레이어 시점에서는 아케치의 악의를 확인할 만한 단서가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편이 되니까 든든하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아케치의 함정으로 카지노 팰리스에는 현실의 경찰 수백명이 들이닥친다. 와타나베는 자기가 미끼가 되겠다고 자청하고 다른 멤버들을 안전하게 도주하게 한다. 그래서 눈에 띄는 도주로를 골라서 도주하고 경찰이 자신을 따라붙게 한다. 여기가 게임을 스타트하면 곧바로 플레이하게 되는 오프닝 시점이다.

 

이 오프닝은 나중에 생각했을 때 상당히 찜찜한 여러가지 문제들이 남는다. 아케치는 괴도단을 체포하기 위해서 경찰 수백 명을 사에의 팰리스에 침투시켰다. 그들은 괴도단 리더인 조커를 쫓았다. 그리고 심지어 조커는 그들과 전투를 벌이기까지 했다. 이 경찰들은 현실의 인간일 텐데 조커와 마주치면 갑자기 섀도로 변한다. 도대체 자연인인 경찰이 왜 그리고 어떻게 섀도로 변하게 되는 걸까? 그리고 조커는 그 섀도들을 죽이는데 그렇다면 현실의 경찰관이 죽은 것일까?

 

​압권은 로열 판으로 플레이할 때 추가되는 카스미의 난입이다. 카스미는 궁지에 빠진 조커를 구하겠다며 등장하자마자 섀도로 변한 경찰관의 가슴팍에 장검을 던져 깊숙이 꽂아버린다. 그리고 화려한 리듬체조 동작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경찰 몇 명을 총으로 쏴서 죽이기까지 한다. 오프닝을 플레이했던 당시에는 그냥 게임적 연출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들이 실제 세계의 경찰이었음을 알고 나니까 괴도단이 갑자기 살인마가 된 것일까라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오리지널 말고 로열로 구매하길 잘했다는 확신을 플레이어에게 심어준 카스미는 그렇게 제작사 아틀러스가 자신에게 부여한 소임을 다하고 사라진다. 이후 조커는 멋지게 도주를 이어가다가 매복 중이던 경찰과 정면으로 맞닥뜨려 체포당한다. 경찰은 조커에게 "너는 배신당했다"라는 말을 하고 수갑을 채워, 경찰서 건물 지하에 있는 심문실로 끌고 간다. 이곳에서 와타나베는 니지마 사에 검사에게 본격적인 심문을 받게 된다.

 

​그동안 플레이어가 진행했던 수십 시간의 게임 내용들은, 사실 모두 이 시점에서 와타나베가 자백 유도제를 가장한 약물에 취한 채 가물거리는 의식으로 가까스로 기억해낸 '과거의 회상'이었다. 약물에 중독된 상태였기에, 그가 아케치가 파놓은 함정을 이미 눈치채고 어떤 대비책을 세워두었는지에 대한 기억만큼은 깨끗하게 날아가 있었다.

 

​사에는 와타나베의 진술을 들으며 이야기의 일관성을 느끼고, 괴도단이 단순한 흉악 범죄 집단이 아니었음을 깨달아간다. 그녀는 점차 와타나베를 신뢰하며 마음을 열게 되는데, 게임에서는 이 심문 과정에서 사에의 '코옵 랭크'가 올라가는 연출로 그녀의 심리적 변화를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과거 회상이 마침내 현실의 시점과 일치하는 이 순간, 사에는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네가 나쁜 놈이 아닌 걸 알았으니 선처를 해주겠다며, 자신의 조사로 알아낸 '괴도단 동료들의 목록'을 제시하고 죄를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이 순간, 사에가 제시한 괴도단 멤버 목록에 서명을 하면 즉시 '배드 엔딩'으로 직행한다. 사에는 와타나베에게 걱정 말라며 심문실을 나가고, 곧이어 엘리베이터 앞에서 사에와 인사를 나눈 아케치가 지하 심문실로 들어온다. 아케치는 와타나베를 감시하던 간수의 총을 순식간에 낚아채 간수를 쏴 죽인 뒤, 와타나베에게 "어설픈 정의 놀이는 여기까지다"라는 말을 남기고 머리를 쏴 살해한다.

  • 참고로 여기서 권총에 소음기가 붙어있어 다소 뜬금없어 보일 수 있는데, 영상을 자세히 보면 아케치가 간수의 권총을 빼앗는 찰나의 순간 자신이 챙겨온 소음기를 순식간에 장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워낙 순식간이고 총구에 돌려서 끼우는 방식도 아니라서 마치 권총을 장전하는 동작처럼 보인다.

 

​아케치는 일을 마친 후 권총을 죽은 와타나베의 손에 쥐여주며, '심문을 받던 용의자가 간수를 살해하고 죄책감에 자살했다'라는 완벽한 자작극으로 사건을 조작해버린다.

 

​반면, 와타나베가 사에의 그 목록 제출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면 사에와의 코옵 랭크가 마침내 최고 수치인 10단계로 올라선다. 사에는 동료를 팔지 않는 그의 기개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심문실을 나가며 "내가 뭐 더 도와줄 건 없냐"라고 물어본다. 와타나베는 "아케치에게 내 스마트폰을 보여달라"라는 의문의 부탁을 남긴다.

 

​이후 전개는 배드 엔딩과 표면적으로 똑같다. 사에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아케치에게 와타나베의 부탁대로 핸드폰을 보여주며 "이거 필요하냐"라고 묻는다. 이때 화면이 붉은색으로 잠시 일렁인다. 아케치는 "이미 알 건 다 안다"라며 거절하고 지하 심문실로 내려간다. 그리고 배드 엔딩과 마찬가지로 간수와 와타나베를 총으로 쏴 죽인 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유유히 심문실을 빠져나간다.

 

이후 애니메이션 화면이 나온다. 뉴스에서는 체포된 괴도단 리더인 소년이 심문 도중에 자살을 했다는 기사가 방송된다. 화면에서는 괴도단 동료들 한명 한명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모두 엄청난 충격과 슬픔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충격을 받은듯한 류지가 등장하는데 그가 의미심장한 썩소를 날리면서 반전 스토리가 이어진다.

 

 

2) 트릭의 전말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확실히 총 맞고 죽은 줄 알았던 와타나베는 사실 멀쩡히 살아 있었다. 심문실을 떠나던 사에는 괴도단의 연락을 받고 되돌아온다. 그녀는 간수를 협박해서 그 자리에서 이탈하게 하고는 와타나베를 데리고 나와서 르블랑에서 소지로에게 넘겨준다. 약기운이 풀리면서 와타나베는 이전의 기억을 되찾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괴도단이 어떻게 아케치를 속였는지가 플레이어에게 드러난다. 이 트릭을 설명하는 파트는 아틀러스가 가장 공을 들인 부분으로 보인다. 이야기를 만들때의 철칙인 쇼돈텔은 나도 딱히 잘하는 건 아니지만 여기서는 캐릭터의 입을 빌려서 아틀러스가 설명하고 싶었던 걸 정말 꼼꼼하게 쏟아내 준다. 이야기를 만들 때 쇼를 거추장스러운 걸로 여기면서 텔에 많은 걸 떠넘기는 나쁜 습관이 있던 나로서는 마치 거울치료를 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아케치의 계략을 알아낸 괴도단은 사에 팰리스 공략에서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아케치를 속여서 위기를 탈출할 기회로 삼기로 한다. 어차피 도망을 가려 해봤자 자신들의 정체가 아케치에게 완전히 들켰기 때문에 그 순간을 모면하더라도 자기들은 계속 쫓기는 위험한 신세로 남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에의 팰리스에 잠입해서 카지노 옆에 있던 경찰서를 조사한다. 거기서는 자신들이 괴도단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고 그곳 심문실을 사전답사한다. 사에가 경찰서에 대해서는 딱히 왜곡된 인식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경찰서는 실제와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똑같이 구현이 되어 있었고 괴도단은 이것을 활용하여 아케치를 속일 기발한 트릭을 기획하게 된다.

 

후타바는 아케치의 폰에 도청앱을 심었는데 거기에는 위치추적 기능도 있었다. 와타나베의 폰에는 원격으로 이세계 내비를 실행하는 기능을 심었다. 사에가 조사실을 나서고 아케치와 마주쳤을 때 두 폰의 위치가 일치하게 되는데 그 때 후타바가 원격으로 와타나베의 이세계 내비를 실행하면 두 사람은 사에의 카지노 팰리스에 옆에 있는 이세계 경찰서 건물로 자기도 모르게 빨려들게 된다.

 

아케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지하 심문실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탔고 사에의 내면세계 안에서 간수와 와타나베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와타나베의 자살로 위장하고 유유히 조사실을 나선 것이다.

 

한편 사에는 이세계의 경찰서에서 와타나베에게 받은 폰으로 괴도 알리바바라는 이름을 내세운 후타바의 메시지를 받게 된다. 후타바는 사에에게 악당은 아케치라고 말하면서 아케치가 시도에게 자기가 심문실에서 괴도를 죽일거라고 말한 도청 녹음본을 들려준다. 그러면서 간수도 한패이기 때문에 그를 믿지 말아야 한다면서 그들은 이 사건을 덮기 위해서 간수도 죽일 거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사에는 조사실로 돌아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는데 이때 화면이 한번 붉은색으로 일렁인다. 이세계에서 현실세계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사에는 지하 조사실 앞에서 간수와 마주친다. 방금 아케치가 죽였던 그 간수다. 사에는 그동안 왔던 사람이 있냐고 묻는데 간수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아케치는 이세계로 간 것이지 현실세계의 심문실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이건 아틀러스가 꼼꼼하게 다루지 않은 논리다. 아케치는 틀림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는데 아케치와 한패인 간수는 아무도 온 사람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 순간 사에가 판단하기에는 간수도 한패이기 때문에 아케치가 왔다는 걸 숨기려 한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심문실 안으로 들어가려면 사에는 간수에게 자기도 그들과 한패인 척을 해야 했다. 그래서 아케치 대신에 자기가 일을 마무리하게 되었다고 그 간수를 떠보았다.

 

간수는 사에가 자기들과 한패라고 믿게 되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따라서 만약 아케치가 이미 왔다 갔더라면 간수는 이미 아케치는 다녀갔다고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사에는 심문실 안에 와타나베의 시체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반면에 간수가 아무도 안왔다고 대답한다면 아케치가 중간에 화장실에 들렀다든지 등의 이유로 아직 심문실에 도착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여기서는 간수가 아무도 안왔다고 대답을 했다. 사에 입장에서는 심문실에 와타나베가 있다는 확신을 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를 데리고 나오려면 간수의 감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그는 간수도 제거할 것이라는 아케치의 계획을 활용해서 당신도 제거될 예정이니까 살고 싶으면 도망가라고 겁을 줘서 그를 자리에서 이탈하게 했다. 그리고 나서 사에는 와타나베를 구출하는데 성공한다.

 

여기서 괴도단은 사에의 인지 세계 내부의 아케치가 사에나 실제 아케치와 마주치는걸 막기 위해서 그 섀도를 억류한다. 사에는 아케치를 흑막이나 빌런이 아닌 그냥 똑똑하고 얌전한 학생 정도로 인식했기 때문에 괴도단은 인지된 세계의 아케치를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가 있었다.

Posted by 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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