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게임패스에 새게임으로 들어온 페르소나5 로열 엔딩을 봤다. 확장판인 로열에서 절대로 빼먹으면 안된다는 마루키 코옵 랭크(일종의 친밀도)를 최대치로 달성해서 다행히 로열판 루트를 탈 수가 있었다. 게임의 서사는 허술한 듯하면서도 다양한 레퍼런스를 활용해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다. 이 글에서는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지 않은 사람도 이야기와 이 게임이 다루는 주제를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메인 스토리를 설명하면서, 내가 이 세계관과 서사에서 인상 깊게 느꼈던 지점들에 대한 감상을 남겨보려 한다.
게임 주인공 이름은 내가 직접 지어야 한다. 편의상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주인공 이름을 본따서 와타나베로 하겠다. 주인공은 이 게임 줄거리상 어렵지 않게 친한 여자들 모두를 수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와타나베를 떠올리게 한다.
1. 게임의 배경
와타나베는 고향 동네에서 어떤 취객이 여성을 추행하려는 현장에서 취객을 제지하려고 했다. 취객은 스스로 발을 헛디뎌서 쓰러지고 얼굴을 다친다. 취객이 시끄럽게 굴어서 인근 주민이 이미 경찰에 신고를 한 상태였고 경찰은 신속하게 도착했다. 와타나베는 현행범으로 체포가 되어 상해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보호관찰 1년 처분에 처해진다. 다니던 학교에서도 퇴학을 당하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는데 받아주는 곳이 도쿄의 슈진 고등학교 뿐이라서 혼자 몸으로 도쿄로 상경한다. 그러고는 르블랑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사쿠라 소지로'라는 사람의 보호관찰을 받도록 위탁된다.
이야기를 만드는 취미를 가진 사람으로서 이 초반부 설정은 굉장히 삐걱거리게 느껴졌다. 추행을 당한 여자를 돕다가 오해를 샀다면 여자쪽 증언으로 피의자는 그 취객으로 바뀌고 와타나베는 추행 사건의 참고인 자격이 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무작정 취객쪽 입장만 듣고 와타나베를 범죄자로 만드는 흐름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를 않았다. 게다가 도대체 부모랑 변호사는 뭘 하는 사람들이었을까? 그럼에도 메타크리틱 95점인 게임인데 내가 걱정했던 수준으로까지 막장일 것 같지는 않아서 인공지능에게 스토리가 왜 이모양이냐고 물어봤다. 그럴만 해서 그런 거고 뒤에 이어지는 스토리랑 엮여서 재미있게 이어지니까 조금 참고 플레이를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리고 그 권유는 이후 들을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밝혀진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반응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점은 글의 후반부에서 충분히 다뤄볼 계획이다.
게임 스토리를 본격적으로 설명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핵심 요소가 있다. 바로 '이세계 내비' 앱, '벨벳룸', 그리고 '이고르'다.
와타나베의 스마트폰에는 아무리 지워도 자동으로 재설치되는 수상한 앱이 깔려 있었다. 게임에서는 이를 '이세계 내비'라 부른다. 특정 인물의 이름과 그 사람이 현실을 어떻게 왜곡해서 보는지에 대한 키워드를 입력하면, 그 사람의 왜곡된 내면세계(팰리스)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앱이다.
이 앱을 처음 실행했던 날 밤, 와타나베는 기묘한 꿈을 꾼다. 꿈속에서 그는 죄수복을 입은 채 벽면이 벨벳으로 덮인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벨벳룸'이다. 그곳의 주인인 긴 코의 노인 '이고르'는 감옥이라는 형태가 와타나베 스스로를 사회적 죄수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구현된 마음의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그러고는 "세상이 파멸을 향해 가고 있으니, 네가 갱생하여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사명을 부여한다. 이후 이고르는 벨벳룸에서 와타나베가 다양한 페르소나를합체하고, 강화하고, 기록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한편, 이 세계관 전체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핵심 사건은 '폐인화' 증상이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폭주하거나,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아무것도 못 하는 바보가 되는 기현상이 도심 곳곳에서 발생한다. 게임 도입부에서 한 지하철 기관사가 운전 도중 갑자기 폭주해 대형 탈선 사고를 낸 것이 대표적이다. 피해자가 영구적으로 사회적 제 구실을 못 하게 되기에 사람들은 이를 '폐인화'라 부르며 공포에 떨고 있었다.
2. 카모시다 팰리스
전학온 슈진고에서 와타나베는 문제아, 범죄자 취급을 당하면서 지내게 되는데 그 와중에 또다른 문제아인 '류지'를 만나게 된다. 류지는 학교의 빌런인 '카모시다'라는 체육교사와 앙숙이다. 카모시다는 올림픽 배구 금메달리스트인데 학교에서 엄청난 권력을 누리고 있다. 그가 맡은 배구부는 훌륭한 성적을 내기 때문에 학교의 명예를 중시하는 교장은 그가 저지르는 비행을 묵인하고 은폐해오고 있다. 카모시다는 자기가 맡은 배구부의 학교내 입지를 높이기 위해서 육상부를 없애고 싶어했다. 그는 육상부를 없앨 구실을 만들기 위해 에이스인 류지에게 홀어머니에 대한 패드립을 치며 도발했다. 분노를 참지 못한 류지가 먼저 주먹을 날리자, 기다렸다는 듯 카모시다는 '정당방위'와 '체벌'이라는 명목으로 류지를 무자비하게 폭행해 다리를 부러뜨려버렸다. 결국 류지는 다시는 달릴 수 없는 몸이 되었고, 육상부는 하극상 사건을 구실로 폐부당했다. 류지의 다리는 이때 입은 부상 후유증 때문인지 게임에서 팔자다리(out-toeing)로 묘사되어 있다.
이부분도 내가 보기엔 굉장히 거슬리는 플롯이었다. 저런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정당방위가 아니라 쌍방 폭행이다.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때린건 누가 봐도 과잉방위이기 때문이다. 사람 다리뼈는 웬만해서는 잘 부러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다리몽둥이가 부러지게 맞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인간흉기급 신체를 가진 전직 금메달리스트 교사가 고교생의 다리뼈를 부러뜨린 사건은 학교에서 덮을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겼다. 학교 내에서 일어난 사건이더라도 그걸을 입건할지 여부에 대한 권한은 교장이 아니라 경찰에게 있다. 와타나베 부모도 참 노답이지만 류지 엄마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 육상선수가 꿈인 자기 아이의 다리가 부러지고 후유증으로 뒤틀림이 생긴 사건인데 유야무야 넘어가버리다니, 어쩌면 카모시다의 패드립이 실체적 근거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이야기다. 카모시다를 철저한 악당으로 만들기 위해서 질이 낮은 서사를 억지로 만든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게임 후반부의 연출을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등굣길에 류지를 만난 와타나베는 길을 찾던 중 우연히 이세계 내비 앱을 작동시키게 되고, 두 사람은 카모시다의 내면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카모시다는 슈진고를 자신의 '성(팰리스)'으로, 자신을 그 성의 절대적인 왕으로 왜곡하여 인지하고 있었다. 그 성 안에서 배구부 남학생들은 폭행과 학대를 당하는 노예, 여학생들은 성노예 취급을 받고 있었다. 성의 경비병들은 얼떨결에 들어온 두 사람을 '무단 침입자'로 규정해 체포했고, 급기야 처형하려 한다. 류지의 목숨이 끊어질 위기의 순간, 와타나베는 불의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반항심을 매개로 각성하게 된다. 피를 흘리며 얼굴에 들러붙어 있던 가면을 찢어발기듯 벗겨내자, 그의 내면에서 영혼의 구체화이자 페르소나인 '아르센'이 모습을 드러낸다. 와타나베는 자신과 계약을 맺은 아르센의 힘을 차용해 경비병들을 쓸어버리고 위기에서 벗어난다. 팰리스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이세계 고양이 모르가나를 만난다. 이후 튜토리얼은 모르가나의 조언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다음 번에 팰리스에 진입했을 때 류지도 와타나베랑 비슷한 과정을 겪으면서 페르소나를 얻고 셋은 한팀이 된다.
와타나베와 류지는 배구부 학생들을 상대로 카모시다의 폭행과 희롱 같은 비리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다닌다. 그 점을 거슬려한 카모시다는 교사에 대한 명예훼손과 음해를 이유로 두사람을 퇴학시킬것을 학교에 요청하고 학교는 사실상 학교의 왕이었던 그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게임에서는 매번 팰리스 공략에 대해 이런식으로 플롯상의 데드라인을 만들고 그 날짜 안에 팰리스를 클리어하지 못하면 게임오버로 처리하고 벨벳룸의 이고르는 와타나베를 데드라인 7일전 시점으로 되돌려준다.
한편 카모시다는 슈진고 2학년 '다카마키 안'을 자기의 애완인간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안은 쿼터 혼혈에 대단한 미모와 몸매를 자랑하는 패션 모델이다. 안에게는 '시호'라는 배구부 선수인 친구가 있는데, 카모시다는 안에게 자신이 원하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시호를 주전에서 빼버리겠다며 접근한다. 안은 그 징그러운 접근이 몹시 싫었지만, 단칼에 거절하면 시호가 불이익을 받을까 봐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애매하게 밀어내며 버티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안이 끝내 자신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지 않자, 불만이 턱끝까지 차오른 카모시다는 안을 길들이고 분풀이를 할 목적으로 시호를 성폭행한다. 시호는 수치심과 절망에 빠져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한다. 다행히 시호는 목숨을 건졌지만, 크게 다쳐 의식불명 상태로 입원하게 된다.
한편, 안은 시호의 투신에 분노하던 중 수상한 모습을 보이던 와타나베와 류지의 뒤를 쫓다가 두 사람이 카모시다의 팰리스에 들어갈 때 같이 휘말려 들어간다. 거기서 안은 카모시다의 왜곡된 인지 속 자신이 속옷만 입은 영혼 없는 노리개로 능욕을 당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친구를 짓밟은 카모시다를 향한 분노로 각성하게 된다. 안은 페르소나 '카르멘'과 계약을 맺고 괴도단의 일원이 된다.
이렇게 넷은(3사람과 1고양이) 카모시다의 팰리스를 탐색하다가 성의 보물을 발견한다. 보물은 구체화되어있지 않고 연기같은 형태로 되어있는데 팰리스의 주인에게 마음을 훔치겠다는 예고장을 보내면 보물이 실체화 된다. 보물은 인물이 가진 왜곡된 욕망의 근원인 집착 탐욕 등 추상화된 감정 덩어리라서 평소에는 구체화되어있지 않은 상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를 떠올리게 되듯이 팰리스 주인에게 비뚤어진 너의 마음을 훔치겠다는 던져진 예고는 자신의 심리 깊은 곳에 있던 추상적인 욕구를 구체화시켜서 보물의 형태가 만들어지게 된다. 괴도단이 그 보물을 훔쳐내면 팰리스 주인의 왜곡된 인지가 바로잡히고 개심을 하게 된다.
괴도단은 카모시다의 보물인 왕관을 훔쳐내려다가 이를 저지하려는 존재와 마주친다. 바로 카모시다의 비뚤어진 욕망과 본성이 무의식 세계에서 괴물의 형태로 실체화된 분신, 이른바 '섀도'다. 괴도단은 섀도와의 보스전을 마치고 왕관을 팰리스 밖으로 들고 나온다. 비뚤어진 욕망의 근원인 보물이 사라지자 카모시다의 팰리스는 붕괴된다. 팰리스 밖으로 나온 보물은 왕관이 아니라 금메달로 바뀌어 있다. 이런 식으로 팰리스에서 반출된 보물은 다른 형태의 실제 물건이 된다. 어떤 팰리스에 어떤 보물이 있고 그것이 현실에서 어떤 물건이 되는지를 보는 것도 게임의 재미 중 하나다.
팰리스를 잃은 카모시다는 며칠간 휴직을 하면서 앓아눕게 되고 와타나베와 류지의 퇴학 처분이 결정될 날, 마침내 정신을 차린다. 그날 그는 강당에서 하는 아침조회 시간에 연단에 올라온다. 그리고 바닥에 엎드려서 울부짖으며 그동안 저질러 왔던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고 경찰에 자수를 한다. 나는 여기서 또다시 위화감을 느꼈다.
물론 카모시다는 상종 못할 인간 쓰레기였다. 그렇지만 처벌의 목적을 응징으로 보는지 교화로 보는지 또는 앞으로도 죄를 계속 짓게 될 사람과 세상을 격리시켜서 사람들을 보호하는지에 따라서 이게 꽤 애매한 문제가 된다. 단지 응징과 복수만이 처벌의 목적이라면 카모시다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교화나 세상과의 분리를 통한 재범 방지 목적이라면 처벌의 목적이 없어진다. 팰리스가 없어진 카모시다는 진심으로 반성하는 인간이고 앞으로도 죄를 지을 위험도 없다. 그런데도 굳이 처벌이 필요할까에 대한 문제다.
또다른 문제는 반성의 자발성에 대한 문제다. 스텐리 큐브릭의 영화 시계태엽오렌지에서 교정 당국은 절대 교화되지 않는 싸이코패스 알렉스에게 루드비코라는 강제적인 교화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알렉스는 완전히 선량한 새사람이 되어서 석방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과거에 저질렀던 악행에 대해 복수하려는 피해자들에게 시달리면서 큰 고통을 겪고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그가 죽으면 교화 프로그램이 잘못되었음이 입증되어 불리한 입장에 놓으게 될 정치인들이 그를 이전 상태로 되돌려놓는 치료를 한다. 그렇게 알렉스는 다시 악인이 되면서 작품이 끝나는데 그때 그는 '나는 치유되었다'라고 생각한다. 카모시다의 개심은 치유가 아니라 세뇌인데 그것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 게임이 말하고자 했던 또다른 주제이기도 하다는 걸 후반부에서 알게 되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후반부를 다루는 파트에서 따로 써보겠다.
3. 화가와 깡패, 해커 그리고 악덕 기업주
카모시다 이후 괴도단은 두 명을 더 개심시킨다. 첫 번째가 일본화의 대가 마다라메다. 제자들의 아이디어를 도용해 명성을 유지해온 인물이다. 이곳에서 마다라메와 함께 기거하는 제자 키타가와 유스케가 합류한다. 처음엔 스승을 옹호하던 유스케였지만, 돌아가신 어머니의 그림마저 도용당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각성해 괴도단이 된다. 두 번째는 시부야에서 학생들을 협박해 돈을 뜯던 갈취 브로커 카네시로다. 카네시로 파트에서 슈진고 학생회장 마코토가 괴도단에 합류한다. 마코토는 학생들을 보호하려고 범죄현장을 조사라려다가 카네시로의 계략에 말려들어서 곤란을 겪었었다. 결국 괴도단의 활약으로 팰리스가 차례대로 붕괴된 두 악당은 공개 석상에서 자신의 죄를 사죄하고 처벌을 자청한다. 괴도단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누가 봐도 참 현실성 없는 반성이자 자기 고백이었다.
그 사이 미시마가 끼어든다. 배구부 소속으로 카모시다에게 맨날 얻어맞아서 항상 얼굴에 상처를 달고 다니던 학생이다. 시호를 카모시다 사무실로 불러내도록 강요당한 것도 미시마였다. 카모시다가 체포된 뒤 배구부가 해산되었는지 미시마는 취미생활을 잃은 것 같았다. 미시마는 할일이 없어 적적하던 차에 와타나베 일행이 괴도단임을 눈치채고 자발적으로 팬사이트를 만들고, 세 명이 개심했다는 소문이 이 사이트를 통해 퍼지면서 괴도단은 유명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거대 해커집단인 메졔드가 등장한다. 메졔드는 스스로를 정의라 칭하며 괴도단에게 정체 공개를 요구하고, 거부하면 일본 전산망을 대대적으로 공격하겠다고 협박한다. 괴도단 입장에서는 익명 조직이라 팰리스를 발견할 수 없어 개심시킬 수가 없었다. 마땅한 대응책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차에 알리바바라는 해커가 와타나베에게 접촉한다. 조건은 사쿠라 후타바를 개심시키면 메졔드를 무력화 해주겠다는 것. 알리바바의 정체는 후타바 본인이었다. 르블랑 사장 소지로의 수양딸이자, 인지과학을 연구하던 잇시키 와카바의 딸이다. 와카바는 연구를 빼앗기 위해 살해당했는데, 후타바는 엄마가 죽은 게 자기 탓이라는 죄책감 때문에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후타바의 팰리스는 지금까지와 결이 다르다. 타인을 착취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벌주려는 죄책감으로 만들어진 무덤인 피라미드라, 주인 스스로 보물을 훔쳐달라고 의뢰하는 유일한 케이스다. 괴도단이 보물을 훔쳐내자 후타바는 약속대로 가짜 메졔드의 사이트를 해킹해 무력화하고, 전산망 공격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일로 괴도단 일본을 구한 영웅이 되어서 지지율은 폭발적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이때부터 후타바도 괴도단에 합류한다. 후타바는 특이한 성격과 개인사를 품은 매력있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서사적 밀도와 재미를 깎아먹는 문제점도 함께 가지고 있다. 사실상 전지전능한 세계 최고의 해커라서 괴도단 일행이 겪는 모든 난관에 대한 만능 열쇠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메졔드 사건 이후에 괴도단 홈페이지에서 사람들이 가장 개심을 시켜달라고 요청하는 압도적 1위는 블랙기업 오쿠무라 푸드의 사장인 오쿠무라였다. 그는 종업원을 소모품 취급하는 악덕 기업가인데 심지어 자기 딸 하루까지 정략 결혼용 아이템 취급을 한다. 그의 사윗감은 그가 인지한 세계인 팰리스 안에서도 하루를 노리개 정도로 생각한다. 즉 딸을 노리개 취급하는 놈과 결혼시키는데 주저하지 않는 정신나간 아빠다. 딸에게까지 그렇게 구는 인간이니까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하루는 괴도단에 합류했고 그들은 오쿠무라의 보물을 팰리스 밖으로 꺼내서 그를 개심시킨다.
그런데 괴도단이 팰리스를 떠나자마자 또다른 페르소나 능력자가 나타나서 오쿠무라의 섀도를 총으로 살해한다. 하지만 의외로 그는 당장 죽지는 않았다. 그는 며칠 의식불명 상태였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개심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가 자신의 죄에 대한 고백과 사죄를 마치고 자신의 배후 세력에 대해 폭로하려는 순간, 그는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검은색 피를 눈물처럼 흘리면서 기괴한 모습으로 죽는다. 사인은 심장마비다.
그의 죽음으로 괴도단이 살인마라는 여론이 일었고 그동안 절대적 인기를 누리던 괴도단의 지지율은 급락하게 된다. 사실 오쿠무라가 어떤 원리로 죽었는지에 대해서 나는 이해하지를 못했다. 오쿠무라의 섀도는 이미 오래 전에 살해당했는데 어떻게 오쿠무라가 이후 깨어나서 며칠동안 정상 생활을 했는지, 그리고 죽어도 어떻게 그렇게 시간을 딱 맞춰서 배후세력을 폭로하려는 그 순간에 죽었는지 나에게는 미스터리다. 혹시 오쿠무라가 기자회견 하다가 "죄송하지만 잠시 화장실에 갔다와서 다시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더라면 그는 변기에 앉아서 죽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걸 플롯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쿠무라가 죽자 어부지리를 얻은 건 정치인 시도 마사요시였다. 괴도단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부터 일관되게 괴도단을 범죄자로 규정하고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인물이라, 여론이 뒤집히자 그의 주장이 힘을 얻게 된다. 검찰에서는 괴도단 사건 전담으로 에이스 검사 니지마 사에가 배정된다. 사에는 마코토의 언니이기 하다. 괴도단은 사에를 개심시켜서 자신들에게 씌워진 누명을 벗자고 결정한다.
사에 팰리스를 가기로 결정한 시점에 아케치 고로가 끼어든다. 6월 9일 슈진고교 학생들이 방송국 견학 때 안면을 튼 정의의 소년 명탐정 컨셉의 유명인이다. 이후로도 우연을 가장해 와타나베 주변에 종종 나타났었다. 아케치는 슈진고 문화제에 초대손님으로 강연을 했다. 오쿠무라 푸드 사옥 근처에서 괴도단이 사라지고 있는 사진을 내밀며 협박한다. "너희가 괴도단인 거 다 안다. 내 말 안 들으면 폭로한다"는 거였다. 그가 내세운 조건은 이랬다. "특수부 검사 니지마 사에의 인지 세계는 크게 왜곡되어 있다. 정의감으로 그녀를 바로잡고 싶다. 그러려면 너희 도움이 필요하다. 대신 사에를 바로잡고 이번 위기를 넘기면, 어설픈 정의 놀이는 그만두고 괴도단은 해산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