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에 대한 약탈에 대해 알아보다가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에 도달했다. 개인 재산을 벌기 위해서 그렇게 악랄하게 굴어서 큰 돈을 벌었으니 복리의 마법과 상속세 면제 특권으로 벨기에 왕실은 현재 세계 최고의 부자가 아니겠는가라고 인공지능에게 물어봤다. 인공지능은 의외의 대답을 했다. 현재 벨기에 왕실의 재산은 한국돈 200억원 정도로 왕실치고는 꽤나 가난하다는 것이다. 자산이 200억이면 국내 증권사 중에서는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곳도 상당수 있다. 명색이 왕실인데 패밀리오피스도 가지지 못할 정도라니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다.
인공지능에게 더 물어보니 이런 대답이 나왔다. 벨기에는 왕도 상속세를 내고, 레오폴드 2세는 재산을 후대 왕에게 상속하지 않고 국가에 헌납했다. 그 이유는 그에게는 딸만 있었고 딸들이 모두 외국으로 시집을 가서 딸들에게 개인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곧 국부 유출이기 때문에 그가 지은 궁전과 각종 개인 자산을 전부 로열 트러스트라는 기구를 만들고 그곳에 넘겼다는 것이다. 왕위는 조카에게 넘어갔고, 이후 왕들은 개인으로서는 별다른 재산을 가지지 못하고 나라에서 지급하는 의식주와 의전으로 지낸다고 한다.
가난한 왕실 이야기가 나오니 갑자기 망상력이 발동했고 이상한 로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배경이 반드시 벨기에일 필요는 없고 가상의 왕국 이름을 대충 상상해보자. 예를 들어 발로엔 왕국. 왕가 이름은 폰 하르덴. 선대 왕이 개인 재산을 모두 국고로 환수시켰고 국비로 운영되는 왕실에서 왕은 월급쟁이처럼 생활한다. 딱히 먹고사는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돈을 모아봤자 상속세로 절반이 날아가고 애들 나눠줘봤자 푼돈이 되니까 현재 왕(알베르 3세)은 안빈낙도 모드가 되어서 딱히 생산적인 활동은 안하고 유유자적하면서 지낸다.
여기서 오만과 편견을 패러디해서 넣어본다. 그 중에서 둘째 딸 샤를로트 폰 하르덴 공주는 마치 엘리자베스 베넷처럼 똑똑해서 아버지의 웰빙 라이프에 염증을 느끼고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2년 만에 합격한다. 샤를로트가 똑똑하기도 했지만 사법고시 출제위원급의 왕실 고문 변호사가 일대일 과외로 사를로트의 실력을 이끌어 준 것이다. 샤를로트는 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고 검사에 지원한다. 그런데 때마침 왕의 동생 에드워드 대공이 음주운전을 해서 왕실에 대한 비판 여론이 생기고 왕실 유지비가 대폭 삭감된다. 왕은 샤를로트에게 검사 말고 돈 많이 주는 로펌에 입사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래야 막내 동생 유학비를 댈 수 있다고. 샤를로트는 검사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왕국 최고의 로펌인 그레이스에 입사한다.
그리고 다아시 역할을 할 재벌 4세 카시아 루벤(아르덴 그룹 전략총괄) 등장. 암튼 상속세 우회 목적으로 배임을 저지른 혐의로 남부지검의 내사를 받게 된다. 아르덴 그룹은 그레이스에 이 문제가 사건화되지 않게 그레이스를 찾고 거기서 카시아는 샤를로트 변호사와 대면하게 되는데....
추가 인물들:
정통파 공주인 제인 베넷 같은 큰언니 헬레나.
공대 여신인 세째 공주 아이리스.
음대 유학을 준비 중인 막내 왕자 테오도르. 다른 사람 소유의 비싼 악기를 빌렸다가 망가뜨려서 손해배상금 분납 중임.
샤를로트랑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내왔던 귀족가문 장남 지안 데 벨몽트(연하남. 테오도르와 친구임)
샤를로트의 수행비서(시녀)와 경호원(기사 knight). 샤를로트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그레이스로 출퇴근함.
비오는 여름 어느날 아침에 지하철에서 바짓단을 적셔가며 생고생을 하다가 현타를 느낀 이들이(둘 다 귀족직 자제임) 공주에게 내일부터는 자기들 가문의 차로 공주님을 모시겠다고 제안하지만 샤를로트는 자기가 필요해서 쓰는 돈 이외의 것을 자기가 벌지 않은 곳에서 구하는 건 왕가의 원칙에 어긋난 일이라서며 거절함.
그러면서 현재 하고 있는 고생은 자기 힘으로 차를 사면 끝날 거고 지금은 백성들의 삶을 체험하고 공감하는 소중한 기회라고 말함. 그날 한정으로 택시타고 출근.
그레이스의 시니어 변호사. 샤를로트에게 공주님이라고 존칭은 꼬박꼬박 쓰지만 돈주는 사람으로서의 유세는 충분히 부림.
서사 전개 과정에서 두사람의 불꽃 튀는 마찰
카시아: 공주님. 왕실은 트러스트를 만들어서 가산을 보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법은 사실상 사다리 걷어차기 아닙니까? 폐하께서는 그 악법이 제정될 때 거부권을 행사하셨어야 했습니다.
샤를로트: "(비웃음 섞인 옅은 미소) 착각이 심하시군요, 카시아 총괄님. 로열 트러스트는 왕실의 가산을 '보전'하기 위한 기구가 아니라, 선대왕께서 개인 자산을 국가와 국민에게 완전히 '환원'하기 위해 만든 기부 트러스트입니다. 왕실은 거기서 단 1원도 상속받지 않았고, 지금 제 아버지는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며 일하십니다."
(바짝 다가가며 카시아를 곧바로 노려본다)
"그리고 헌법상 입법권은 의회에 있습니다. 입법부가 정당한 절차를 거쳐 통과시킨 세법에 국왕이 섣불리 거부권을 행사했다면, 그건 입법권 침해이자 '왕정복고'라는 비판을 받으며 왕정 자체가 폐지되었을 겁니다. 카시아 총괄님이 말하는 '사다리'는 탈세와 세습의 사다리겠지요. 총괄님, 지금 절 찾아오신 건 정치철학 강의를 들으러 오신 게 아니라 '배임 혐의로 감방에 가지 않기 위해서' 아닙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총괄님의 변호사이지, 당신은 틀리지 않았습니다라고 긍정해주는 심리상담가가 아닙니다."
식상하지만 아는 맛집
외교 사절과 기업인들이 모인 왕실 무도회.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왕족으로서의 의전을 다하고 있는 샤를로트. 외국 정부와 MOU 체결 건으로 참석한 카시아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샤를로트를 보고 묘한 끌림을 느낀다.
카시아가 다가가 손을 내밀며 춤을 청한다.
카시아: "변호사 서류 가방을 들지 않은 모습을 보니 새롭군요, 공주님. 한 곡 청해도 되겠습니까?"
샤를로트: "(차가운 정중함) 이 자리에서 저는 ‘그레이스’의 변호사가 아니라 이 나라의 공주입니다. 그리고 법정 밖에서 의뢰인과 사적으로 엮이지 않는 것 또한 제 변호사로서의 철칙입니다. 총괄님의 요청에 응하지 못한 점 양해해 주시기 바라며, 부디 다른 영애분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말을 마친 샤를로트는 멀리서 걸어오는 소꿉친구 지안(드 벨몽트)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지안: "공주님, 피곤해 보이시는데 가볍게 한 곡 추고 테라스로 도망칠까요?"
샤를로트: "좋아, 지안. 저 딱딱한 석상 같은 인간들을 상대하다가 너 보니까 숨통이 트인다."
두 사람이 사뿐하게 홀 중앙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카시아는 들고 있던 와인 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법과 돈으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의 세계에, 단 한 뼘도 허락되지 않는 샤를로트 폰 하르덴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의 자존심을 사정없이 자극하기 시작한다.
샤를로트의 편견에 흠집을 낼 카시아의 고백
아르덴 그룹의 창업자이신 제 증조부에 대한 기억이 저는 거의 없습니다. 제가 6살때 돌아가셨는데 저는 할아버지의 무릎위에 앉아서 할아버지의 얼굴을 만진 기억하고 할아버지가 병실에 누워 계실때 손을 붙잡아드렸던 것 정도가 기억날 뿐입니다. 제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증조 할아버지는 선왕 폐하로부터 기사 작위를 제안받았으나 거절하셨다고요. '우리는 장사꾼일 뿐 괜시리 귀족 따위가 되어서 본분을 잊으면 안된다. 우리가 귀족이 되는 순간 손님보다 체면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아르덴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싸고 좋은 물건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한다'라고요. 그게 저희 가문의 모토입니다. 하지만 상속세 때문에 지분이 줄어들고 경영권이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가게 되면 더이상 할아버지의 유지를 이어갈 수가 없게 됩니다. 저는 가문 덕분에 많은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특히 공주님과 이렇게 같은 목표에 대해서 고민을 해볼 수 있는 지금이 특히 그렇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