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S급 최애 취미가 되어버린 소설 쓰기를 더 잘하고 싶어서 신문 서평으로 발견한 어느 작가의 책을 두 권 읽어봤다. 문단에서는 나름 자리 잡은 중견 여성 작가라고는 하는데 내게는 생소했던 이름이었다. 그녀의 에세이랑 단편집을 골랐다. 이것저것 많이 읽어서 좋은 인풋을 해놔야 좋은 아웃풋도 나온다는 작법론을 따르고자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해 본 것이다. 내게 부족한 섬세한 심리 묘사나 소소한 일상의 정서를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삼아 볼 생각이었다. 그동안 내가 써왔던 이야기들은 너무 매운 맛과 하이 컨셉 위주였다. 이제는 불닭과 마라탕 말고 담백한 백반 레시피도 배워서 취미의 스펙트럼을 넓혀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조지 오웰, 헤르만 헤세 같은 대문호들의 글에는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쓸 수 없을 것 같다'고 느껴지는 압도적 아우라가 있다. 한편 이 작가는 이 정도면 나도 따라해 볼 만하겠다는 도달가능성이 친근하게 느껴져서 교재로서의 가치가 있었다. 작가의 글에 대해서는 느낀 바가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뚜렷하게 눈에 띄었던 특징인 "공감 능력" 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한 바를 남겨보고자 한다.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딱히 정의가 있는 단어 같지는 않지만 내가 관찰하기로는 두 가지 이질적인 개념을 뭉뚱그린 표현 같다. 첫번째는 진짜 쓰레기통, 두번째는 유사 쓰레기통이다.
쓰레기통은 사람이 지니고 있는 쓰레기를 거기에 넣음으로써 사람을 쓰레기로부터 해방시키는 도구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울적한 기분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 놓음으로써 치유된다면 그는 쓰레기로부터 해방이 되는 것이다.
유사 쓰레기통은 자신의 불쾌함을 자기가 싫어하거나 만만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퍼붓는 것이다. 이건 가려운 곳을 긁는 것과 비슷하다. 긁는 그 순간은 시원한 것 같지만 곧 다시 가려워진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괴롭힌다고 해서 자신의 불쾌감이 사라지거나 약해지지 않는다. 자기가 들고 있는 쓰레기를 통에다가 던져 넣었지만 내 손에는 여전히 쓰레기가 남아있다. 그건 쓰레기통이 아니라 쓰레기 복제기일 뿐이다.
진짜 쓰레기통은 ctrl + x이고 유사 쓰레기통은 ctrl + c다. 이 중에서 내가 다루고 싶은 개념은 진짜 쓰레기통에 대한 것이다.
이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기이하다. 겉모습만 남자일 뿐, 갈등을 빚고 해소하는 방식은 지극히 여성적이다. 마치 여성의 심리 회로를 그대로 이식해 놓은 듯한 캐릭터들이다. 작품 속에서 착한 빌런 역할을 하는 '수염 난 여성'은 순수한 얼굴로 여자와 우정을 나누면서 어장을 치고(바람둥이 남자의 어장과는 다른 개념임), 교묘하게 주인공을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전락시킨다. 그렇게 순진한 얼굴의 악당에게 주인공은 정서적으로 착취당한다. 결국 작가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주인공은 다정하지만 무심한 그 남자의 어장을 박차고 나와 씁쓸한 해방감을 맛본다.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남성이라면 이런 식의 결별 통보는 굉장히 생뚱맞고 당황스러운 재난이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질식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약간의 예외는 있겠지만, 대다수 남성들에게는 타고난 기질 또는 전통적인 사회화 덕분에 그가 무슨 말을 듣더라도 자신이 타인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괴롭다고 느끼는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대체로 타인의 정서적 고통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조그만 쓰레기통이 아니라 거대한 용량의 소각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 라는 통설이 있다. 그동안은 정확한 의미가 무엇일까 알듯 말듯한 말이었지만, 이 작가의 여러 글들을 읽고 나니 그 실체가 뭔지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거기서 말하는 '공감'이란 상대의 고통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기분이 나에게도 전이되어야 한다는 뜻에 가깝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서적 공감이라고 한다.
엄밀히 따져보면 번거로운 예외들이 있겠지만, 편의를 위해 성별에 따른 공감 능력의 차이에 대한 통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이어나가겠다. 정신적 고통에 대한 여성 특유의 공감 능력은 ctrl + v의 역할을 한다. 공감하느라 같이 괴로워 한다. 그러나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대부분 남성들은 ctrl + v를 누르는 대신에 win + v로 클립보드 내용만 확인할 뿐이다. 일단 상대의 걱정을 듣고는 "정말 힘들겠다."라고 인지적 공감을 표한다. 그러고서 자기 나름 진지하게 해결책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정말 불쌍하다. 근데 저녁에 뭐 먹지? 달콤한 걸 먹이면 얘 기분이 나아질까?'라고 생각할 뿐이다. 남성의 인지적 공감에 대해서 정서적 공감자인 여성은 그가 자기의 고통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걸로 오해하고 서운할 수 있다. 하지만 인지적 공감자로서는 그게 상대에게 대한 최선의 호의다.
물론 인지적 공감형 인간도 시도 때도 없이 징징거리는 사람이라면 질색을 한다. 하지만 그 짜증의 메커니즘은 공감형 인간이 겪는 감정적 소모와는 차원이 다르다. 후자가 상대의 고통을 그대로 복사해와서(Ctrl+V) 힘들어하는 것이라면, 전자는 징징거리는 소음 자체가 유발하는 스트레스, 즉 내 내부에서 새롭게 생성된 독자적인 짜증 때문에 힘든 것이다. 전자가 감정의 '전이'라면, 후자는 단순한 '소음에 의한 피로'에 가깝다.
이런 성향의 차이는 관계의 비극을 낳을 지도 모른다. 인지적 공감형인 남자가 자신과 우정을 나누는 정서적 공감형 여성에게 자신의 고민에 대해 털어놓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이 남자는 이 여성의 심리를 모르기 때문에 인간 관계의 황금률인 역지사지를 실천하더라도 이런 참극을 맞이할 수가 있다.
'우리가 많이 친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차피 남의 일이니까 내가 무슨 힘든 일을 말하든 쟤는 그냥 들어주는 걸로 끝이지. 말이라도 한번 시원하게 하면 내 마음이 좀 편해질 테니까. 친구 좋다는 게 뭐겠어? 이런 이야기 들어주는 거지. 게다가 걔는 무덤덤한 남자 녀석들보다 훨씬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게 느껴져서 걔한테 이야길 털어놓으면 뭔가 치유받는 느낌이 들거든.'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는 정서적 공감자는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공감 능력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그 남자의 심란한 마음은 정서적 공감자인 여자에게 전염되어 여자는 정신이 복잡해지고 어쩌면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게 될 지도 모른다. 남자는 한번 털어놓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졌고, 그 여자에게도 자기처럼 거대한 소각로가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서 그녀를 몇 번을 더 사용한다. 그러다 보면 정서적 공감자는 '내가 쓰레기장이냐? 쟤랑 만날 때마다 너무 힘들다.'라는 반감을 갖고 남자를 손절하게 된다. 남자가 느낀 존중받는 느낌과 치유받는 느낌은 절대 공짜가 아니었던 셈이다.
인지적 공감형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정신과 의사를 떠올려보자. 치료 목적으로 환자에게 공감을 해 주면서 환자의 이야기를 끌어내지만, 내담자들의 힘듦에 대해 듣는다고 딱히 감정이 축나지는 않는다. 그들은 직업 특성상 정서적 공감보다는 인지적 공감에 머무르도록 의도적인 훈련을 받는다. 환자를 만날 때마다 정서적 공감을 하며 눈물을 흘린다면 그 직업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어쩌면 '공감 능력'은 '능력'이라기보다는 정서적 취약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히려 선천적으로 주어진 과도한 공감과 동일화 경향을 끊어내는 것이야말로 훈련을 통해 본능에서 벗어나 자신을 보호하는 능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의 말에 잘 속아서 맨날 사기를 당하는 사람에 대해서 '잘 속는 능력'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한편 이걸 능력이냐 취약점이냐로 나누기보다는 감각의 민감도로 보는 편이 정확할 수도 있다. 청각이 둔감한 사람은 16khz가 넘는 고주파 소음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지만 예민한 사람은 일상적인 소음 이상의 상당한 짜증과 두통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속칭 '공감 능력'이 넘치는 사람은 타인의 감정과 공명하는 민감도가 높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즐겨 쓰는 이야기와는 성향과는 대척점에 있는 작가의 소설과 에세이를 읽어보니 이런 식으로 나름 깨닫게 되는 게 있었다. 기승전결이나 별다른 사건이 없는 구조에서도 심리를 정교하게 들여다보고 독특한 비유를 하는 것만으로도 읽을만한 글이 나온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서사가 없으면 글이 출력되지 않는 나로서는 무척이나 부러운 능력이다. 타고난 기질이 다른 사람의 작법을 모방할 필요는 없지만 내 글을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 볼 수 있다는 점, 이야기가 없어도 글을 이끌어나가는 기법을 배워본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참고할 만하다. 특히 이렇게 다른 사람의 작품에서 드러난 인물의 심리 유형을 분석해 봄으로써 내 이야기 속 캐릭터의 새로운 구성 성분으로 활용할 재료를 발견한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번에 발견한 공감 능력에 국한되지 않고, 인물들의 독특한 성격으로 심리적 주파수가 미세하게 어긋날 때 별다른 사건 없이도 긴장감 있는 국면을 만드는 흐름을 연습 삼아 써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