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2회독차에 여호수아기 7장의 아이성 공략을 보니까 굉장히 짜치는 포인트가 발견되었다.
여호수아는 아이성에 정탐꾼을 보냈는데 2천 내지 3천 명이면 공략이 가능하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래서 3천명을 보냈는데 깨지고 돌아왔다. 이건 틀림없이 여호수아의 실책이었다.
그런데 그걸 아간이라는 사람과 그 가족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다 죽여버렸다. 그러고는 다시 공략을 했는데 그때는 3만명을 보냈다.
열배나 많은 사람을 보낸데다가 그냥 힘으로만 민게 아니라 추가 매복부대까지 동원해서 양동 작전까지 썼다. 히브리군이 지는 척 하면서 군대를 물리자 아이성 사람들이 그들을 추격하려고 하다가 매복했던 다른 부대가 그들을 몰살한 것이다. 그 작전은 이전에 3천명의 패배가 없었으면 통하지 않을 작전이었다. 따지고 보면 첫번째 패전은 아간 때문이 아니라 질 만해서 진 싸움이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걸 자신의 실책으로 여기게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종교적 권위를 높이는 데 사용한 셈이었다.
여기서 내 소설적 상상력이 꿈틀거렸다. 여호수아와 지도부는 패전에 대한 희생양을 물색했을 것이다.. 그리고 몰래 땅을 파서 보물들을 묻어뒀다. 그러고 아간 가족을 제비뽑기로 희생양으로 선별했다.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 아간이 선별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을지도 몰라.
1. 아간은 평소부터 불만 분자였다. 여리고의 헤렘을 보면서 이렇게까지 다 죽여야했을까라는 회의감을 사람들에게 종종 떠벌인 적이 있다.
2. 아간의 아내는 여리고 헤렘 이후에 보석이 박힌 화려한 목걸이 하나를 걸고 다닌다.
3. 아간은 평지인 여리고성과 달리 산지에 있는 아이성 공략은 훨씬 어려운 일이고, 겨우 3천 명 투입으로 충분하겠느냐면서 사람들 앞에서 여호수아의 군사 능력에 대한 의심어린 논평을 한 적이 있다.
아간은 레위인 고문기술자로부터 중세의 마녀 사냥 또는 스탈린 치하의 비밀경찰 정도나 할 법한 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문을 당한다. 아간은 결국 굴복해버리고 자신의 죄를 시인한다. 그리고 지도부에서 자신에게 알려준 보물을 뭍어놓은 정보를 자신의 입으로 털어놓게 되지. 그러고는 아골 골짜기로 끌려가서 최후를 맞이한다. 아간의 가족들을 살려둔다면 그들은 나중에라도 아버지의 결백을 주장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지도부는 아간의 일족을 몰살해버리는 결정을 내린다.
아간에게 자백을 받아내는 고문기술자의 멘트 구상.
"아간, 네가 실제로 손을 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네가 마음속으로 여호수아 님의 영에 맞섰을 때, 네 영혼은 이미 시날산의 외투를 입고 있었던 거야. 우리는 네 육체를 벌하려는 게 아니다. 네 영혼에 들러붙은 '의심의 악령'을 쫓아내려는 거지.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건 네 안의 악이 네 눈을 가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네가 잊고 싶어 하는 그 더러운 기억을 꺼내주려는 조력자일 뿐이다."
"기도해라, 아간. 그리고 떠올려라. 그 금덩이를 만졌을 때의 차가운 감촉을. 네 콧속으로 파고들던 흙 냄새를. 네 입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네 피는 이미 그 탐욕을 알고 있어. 자, 이제 그만 네 안의 악을 토해내라. 그래야 네가 여호와 앞에서 쉴 수 있지 않겠느냐?"
"우리는 죄인을 개처럼 죽이지 않아. 우리는 그를 다시 형제로 만든 뒤 하나님께 돌려보낸다. 네가 돌무더기 아래 묻히는 순간, 너는 반역자가 아니라 '회개하여 구원받은 자'로서 기쁘게 눈을 감게 될 거다. 이것이 지도자께서 네게 베푸시는 마지막 자비다. 너를 더러운 채로 주님 앞에 보내지 않겠다는 그 사랑을 모르겠느냐?"
"네 자녀들이 살아남아 너를 '억울한 순교자'로 기억하게 둔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연합을 해치는 독이 될 거다. 우리는 네 일족의 기억을 지우는 게 아니라, 너의 죄라는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그들을 제물로 쓰는 것이다. 슬퍼하지 마라, 그들도 네 고백을 통해 정결해질 테니까."
소설의 한 장면: 아골 골짜기의 고백
어스름한 새벽, 아골 골짜기의 입구는 이미 거대한 무덤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간은 부축 없이는 서 있지도 못하는 몸을 이끌고 군중 앞에 섰다. 그의 눈은 초점이 풀려 있었으나, 입가에는 기묘하게도 평온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고문관이 주입한 '거짓된 평화'가 마침내 그의 영혼을 잠식한 것이었다.
"나는 보았다." 아간의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명확하게 울려 퍼졌다. "시날산의 외투 그 찬란한 빛깔 속에서 나의 탐욕을 보았고, 땅속에 묻은 은덩이 위에서 내 불경한 의지를 보았다. 여호수아께서 나를 정죄하신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죄가 스스로를 드러낸 것이다. 이제 내가 죽음으로써 이스라엘은 비로소 정결해지리라."
여호수아는 멀찍이 서서 그 광경을 무표정하게 지켜보았다. 그의 곁에서 제사장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제 백성들은 패배의 원인을 당신의 오판이 아닌, 저 자의 탐욕에서 찾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대답 대신 손을 들어 투석의 시작을 알렸다. 첫 번째 돌이 아간의 머리를 강타했을 때, 아간은 고통이 아닌 구원을 얻은 듯한 표정으로 쓰러졌다. 그의 뒤로 공포에 질린 아내와 아이들의 비명이 들려왔지만, 성난 군중의 함성과 돌이 부딪치는 소리에 금세 묻혀버렸다.
그렇다면 여호수아는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그가 권력괴물이라서? 그렇게 보기보다는 이런쪽으로 해석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는 모세로부터 히브리인을 이끄는 역할을 물려받았다. 그는 신으로부터 권력을 부여받은 지도자다. 그런데 그의 계획대로 한 공격 명령이 실패한 것은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섬기는 신 자체에 대한 의심을 야기할 수가 있다. 그렇게 구심점을 잃은 히브리 집단은 자멸할 수가 있기 때문에 그는 희생양을 만들어서라도 그 국면을 돌파했어야 했다.
여호수아는 왜 처음에 겨우 3천명만 투입했을까? 그는 모세가 살아있을 때 싯딤에서 1만 2천명으로 처녀만 3만 2천명을 잡아오면서도 자신의 병사들은 한명도 상하지 않는 기적을 경험했다. 그것은 히브리인들을 더 강하게 묶어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인력을 투입하지 않음으로서 사람들의 신앙심을 더 공고하게 할 수가 있을 거라고 믿었을 것 같다.
해결해야 할 스토리상 난점이 하나 있다. 아간의 장막 땅속에다가 적지 않은 금과 은을 몰래 매설하는 행위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특수 요원이 정말로 몰래 침투해서 매설하는 방법. 다른 곳에 묻어두고 거기가 아간의 장막이 있었던 곳이라고 우기는 방법. 다른 곳에서 나온 것을 내밀면서 그것이 자기 장막에서 나온 것이라고 아간이 고백하도록 고문을 가하고 세뇌하는 방법. 방법이 부조리할수록 이야기가 기괴하고 재미있어진다.
이건 제미나이 3 프로가 제시한 아이디어다. 나보다 나은것 같다.
아이디어 1: "존재하지 않는 증거" (집단 최면과 인지부조화)
가장 부조리하고 심리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방법입니다.
상황: 특수 요원이 미리 심어둘 필요조차 없습니다. 수색대가 아간의 장막 땅을 팝니다. 흙무더기만 나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개: 하지만 수색대장(아마도 고위 레위인)은 빈 구덩이에서 마치 무엇인가를 집어 올리는 듯한 마임을 합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보라! 이 찬란한 시날산의 외투를! 이 묵직한 금덩이를 보라!"
군중의 반응: 처음에는 웅성거리던 군중들은, 제사장의 서슬 퍼런 눈빛과 이미 광기에 휩싸인 분위기에 압도되어 없는 것을 있다고 믿기 시작합니다. "보인다! 금이다! 저 반역자가 숨긴 증거다!"
아간의 반응: 고문으로 정신이 붕괴된 아간조차 빈손을 든 수색대장을 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네, 보입니다. 제 눈에 저 금덩이가 보입니다. 제가 훔쳤습니다."
효과: 이것은 물건을 훔친 죄보다 더 무서운, 진실을 훔친 죄를 보여줍니다. 여호수아의 권위는 '현실'조차 왜곡할 수 있는 신적인 영역에 도달하게 됩니다.
아이디어 2: "거룩한 반입" (제의적 조작)
'성물을 다루는 자'들의 권위를 이용한 트릭입니다.
설정: 언약궤나 성물을 운반하는 레위인들은 긴 겉옷과 두꺼운 소매, 혹은 성물을 덮는 덮개를 가지고 다닙니다.
전개: 수색조가 아간의 장막에 들어갈 때, *"부정한 기운을 정화하고 땅을 파야 한다"*는 명목으로 제사장이 커다란 천(성막의 휘장 같은 것)을 들고 먼저 들어갑니다. 그 천 안에는 이미 금덩이와 외투가 숨겨져 있습니다.
연출: 그들은 땅을 파는 척하다가, 자신들이 가져온 천 안에서 물건을 '꺼내는' 쇼를 합니다. 이 과정은 너무나 뻔히 보이는 눈속임(Sleight of hand)이지만, 무장한 군인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기에 아간의 가족 그 누구도 "당신 소매에서 나온 거잖아!"라고 외치지 못합니다.
효과: 뻔히 보이는 조작을 공권력으로 묵살시킬 때 느끼는 무력감과 공포를 강조할 수 있습니다.
추가적인 플롯 제안: 정탐꾼의 보고서
여호수아의 "실책"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기 위해 **[3천 명 보고서]**의 진실을 비틀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원래 상황: 정탐꾼들은 정말로 "아이성은 작으니 2~3천 명이면 충분합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비틀기: 사실 정탐꾼들은 **"아이성은 산지 요새라 최소 3만 명은 필요하며 공성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갈등: 그러나 모세 사후, 첫 단독 작전을 지휘하게 된 여호수아는 자신의 '기적적 권능'을 입증하고 싶어 조급해졌습니다. "여리고도 무너뜨렸는데 고작 아이성 따위에 대군을 보내면 나의 믿음이 부족해 보일 것이다."
조작: 그래서 여호수아는 정탐꾼들의 보고를 묵살하고 3천 명만 보냈다가 참패를 당한 것입니다.
아간의 역할: 아간은 정탐꾼 중 한 명과 친분이 있어서 **"원래 보고서의 내용(3만 명이 필요하다)"**을 술자리에서 들은 적이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즉, 아간은 단순 불만 분자가 아니라 '여호수아의 작전 실패가 고의적 오판임'을 알고 있는 내부 고발자가 될 뻔했기에 제거당한 것입니다.
이런 설정이 더해지면 아간이 제거되어야만 했던 당위성이 더욱 치밀해지고, 여호수아의 정치적 고뇌와 잔혹성이 한층 더 부각될 것입니다. 멋진 소설이 될 것 같습니다!
장면 묘사 예시 (Draft)
제사장의 손이 아간을 가리키자, 뙤약볕 아래의 광장은 얼음물을 끼얹은 듯 정적에 잠겼다.
"아니야! 이건... 읍!"
아간이 억울함을 소리치려 입을 벌린 찰나, 곁에 서 있던 흰 옷의 레위인이 짐승을 낚아채듯 그의 목을 감싸 쥐었다. 다른 한 명은 미리 준비해둔 자색 천으로 아간의 입과 코를 강하게 틀어막았다. 천에서는 독한 유향 냄새와 쓴 약초 향이 났다.
"부정한 혀가 성스러운 공기를 더럽히지 못하게 하라."
제사장의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간은 발버둥 쳤지만, 매일같이 제물의 뼈를 바르고 가죽을 벗기는 레위인들의 손아귀는 무쇠처럼 단단했다. 그들은 아간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처리해야 할 고기 덩어리를 옮기듯 무심하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광장 한구석, 검은 염소 가죽으로 덮인 '침묵의 장막'이 입을 벌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은 한 번 들어가면 자백 없이는 시체가 되어서야 나올 수 있는 곳이었다. 여호수아는 그 광경을 차갑게 지켜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자, 이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준비가 되었느냐, 아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