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 이야기

기쁨 2025. 9. 22. 20:14

어떤 유튜브 채널에서 창세기에 나오는 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이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우선 창세기 2장의 타임라인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창세기 1장에서는 신이 동물을 만들고 나서 인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창세기 2장에서는 순서가 다르다. 신이 남자를 우선 만들었다. 남자에게 선악과에 대한 설명을 하고는 남자를 돕는 짝(개정개역:배필)을 만들어주기 위해 흙으로 동물을 만들고 남자에게 동물의 이름을 짓게 했다. 모든 동물의 이름을 짓고 나서도 남자가 적당한 짝을 찾지 못하자 신은 그를 잠들게 하고는 그의 갈비뼈를 빼내서 여자를 만들어서 그의 짝으로 삼게 한다.

 

즉 모든 동물은 남자의 짝이 될 수 있었던 탈락한 후보자였다는 뜻이라는 해석이었다.

 

그의 상상은 점점 더 흥미롭게 이어졌다. 뱀은 남자에게 버림받은 후보자였다. 뱀은 질투심에 휩싸여서 자신의 자리를 가로챈 여자에게 접근해서 선악과를 먹게 했다. 신이 남자에게 선악과의 효능과 그것을 먹지 말라고 말한 건 아직 동물들이 만들어지기 전의 일이었다. 뱀이 선악과의 효능을 안 것은 직접 먹어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남자가 여자가 시켜서 먹었다고 변명을 할 때 뱀은 자기의 복수를 완성한 쾌감을 느꼈다고 한다. '나를 무시하고 고른 여자를 결국 원망하게 된 남자의 모습이라니..' 뱀은 이후 아무런 여한이 없었다. 그래서 뱀은 자기가 받는 벌에 대해 별다른 변명 없이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그는 해석했다.

 

비록 남의 생각이지만 한번 듣고 잊어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좀 더 재미있게 꾸며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추가적인 요소를 더해서 써보면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스토리를 확장해 봤다.

 

 

 

 

뱀의 이야기


이건 제가 팔과 다리를 잃게 된 이야기예요. 저는 흙에서 태어났어요. 하느님께서 저에게 숨결을 불어넣으시고 나서부터 숨을 쉬게 되었죠. 옆에 있던 다른 동물들이 제게 인사했어요.

"안녕. 정신이 드니? 새 친구야."

저는 제가 왜 태어났는지 알지 못했어요. 친구들이 제게 알려줬어요.
"주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겠다.(창세기 2:18) 이게 우리가 태어난 이유래." 


몇몇 동물들이 더 만들어지고 나서 하느님은 저희를 데리고 남자에게 갔어요. 멀찌감치서 본 남자는 참 예뻤어요. 저라면 그와 좋은 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죠. 남자는 제 친구들을 보고 이름을 짓고 있었어요.


"네 이름은 소야. 힘이 세게 생겼네. 너는 내 일을 돕기에 좋겠는걸."
"너는 개야. 정말 귀엽구나. 똑똑하고 성격도 좋아 보여서 너는 나랑 금방 친하게 지내게 될 것 같아."
"너를 말이라고 부를게. 너는 힘도 세고 발이 빨라서 나하고 잘 맞겠는걸."

다른 친구들은 남자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의 칭찬과 감탄을 얻어내고 있었어요. 다만 그의 짝이 될 가능성이 열려있었지만 뭔가 한 끗이 모자란 것 같아서 후보군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하느님께서는 저를 특별히 지혜롭게 만드셨다고 했어요. 남자와 제가 서로 충분한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는 제게 특별한 의미를 두고 짝으로 삼을 것이었죠. 드디어 제 차례가 왔어요. 저는 가슴이 터져버릴 것처럼 긴장했어요. 남자가 말을 걸면 뭐라고 대답을 할까? 어떻게 말해야 그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을까?

 

"뱀"


남자는 저를 잠깐 스쳐보고는 무심히 내뱉었어요. 그러고는 끝이었어요. 남자는 저를 다시 쳐다보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죠. 저는 뒤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친구에게 밀려났고 남자에게는 아무 말도 듣지 못했어요.

"너는 양이야. 하얗고 곱슬곱슬한 네 털이 정말 부드럽고 예뻐 보인다. 만져봐도 되니?"

제 등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저는 그의 후보군조차도 들지 못했었어요. 저는 태어난 날부터 모멸감이라는 감정을 알게 되었어요. 그 사람이 모든 집짐승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지만 그 남자를 돕는 사람 곧 그의 짝이 없었어요.(창세기 2:20) 저에겐 아직 기회는 열려있는 셈이었기 때문에 저는 희망을 놓지 않았어요. 한 번쯤은 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하느님께서 그를 잠에 빠지게 하신 다음에 그의 몸에서 갈비뼈를 꺼내서 뭔가를 만드셨어요. 남자랑 많이 닮은 생명체였죠. 남자는 그 새로운 동물을 보고 아주 기뻐했어요.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의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르겠다"(창세기 2:23)

라고 말했죠. 여자는 남자만큼이나 참 예뻤어요. 제가 남자였더라도 여자를 제 짝으로 골랐을 것 같았죠.

씁쓸했어요. 저와 제 친구들과는 여자랑 재료부터가 달랐어요. 흙이 아니라 그의 뼈로 만들었는데 어떻게 이기겠어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라도 제 존엄을 지키고 싶었어요. 남자도 흙으로부터 만들었으니 그의 갈비뼈도 흙이나 다름없어요. 여자는 뼈로 만들어졌지만 저보다 고귀한 존재라서 남자의 짝이 된 건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려고 애썼어요.

 

그런 식의 합리화는 힘이 세지 않은 거 아시죠? 그게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역시 머릿속을 떠나지 못했어요. 온몸을 덮은 비늘, 갈라진 혀, 머리털도 코도 귀도 없는 얼굴, 매서운 눈매... 하느님은 정말로 제가 남자의 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고 저를 그에게 데려가신 걸까요? 하느님께서 저도 남자의 뼈로 만들어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랬다면 저도 남자에게 그런 관심과 애정을 받고 그와 짝이 될 수가 있었을 텐데...


다른 친구들은 자기들의 존재 목적을 잊은 듯, 남자에게 거절을 당하거나 말거나 태평하게 '멍멍 꿀꿀'거릴 뿐이었어요. 하느님의 선물인 지혜는 오히려 제게 극심한 고통만 줬어요. 제 존재 이유는 남자와 짝이 되는 것이었는데 저는 살아갈 이유가 남지 않았어요. 그때,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어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세기 2:17)

 

저는 제 손을 참 좋아했어요. 손등은 반짝거리고 손가락이 가늘고 길어서 꽤 예뻤거든요. 여자하고 견줄 만한 건 오직 손뿐이었어요. 저는 그 먹음직한 보기 좋은 과일을, 그때는 아직 존재했던 바로 그 손으로 잡아서 베어 물었어요. 과일을 삼켰으니 제 영혼은 곧 사라져야 했어요. 괴로움으로부터 해방이 되는 순간을 기다릴 뿐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죽지 않았어요. 대신에 눈이 밝아져서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가 있게 되었죠. 눈이 밝아지자 저는 과일을 먹은 걸 곧바로 후회했어요. 하느님으로부터 반드시 벌을 받게 될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새로운 걸 깨달았어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동물들도 남자와 짝이 되질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란 점을요.

 

그런 생각이 드니까 홀가분해졌고 선악과를 괜히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느님의 진노를 자초하고 나서야 그걸 깨닫게 되다니 참 어리석었죠. 여자도 선악과를 먹으면 진실을 깨닫게 될 거라 생각하고 찾아갔어요. 그녀를 성장시켜 주려는 우정 같은 것 때문은 아니었어요. 다만 진실과 함께 찾아올 대가를 여자에게도 선사하고 싶었죠. 그녀가 원했든 아니든 저를 망쳐버린 건 여자였으니까요.

 

저는 여자에게 거짓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제가 그녀에게 말한대로 여자는 눈이 밝아졌고 죽지도 않았죠. 고맙게도 여자는 자기 혼자만 먹지 않고 남자에게도 과일을 가져갔어요. 여자는 눈이 밝아졌을 텐데도 뭐가 잘못된지도 몰랐나 봐요.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로도 구제가 되지 않는 어리석음이랄까요? 훗.

 

그들이 선악과를 먹은 걸 하느님이 아시고는 심하게 화를 내셨어요. 특히 남자가 그 멍한 표정으로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짝지어 주신 여자, 그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그것을 먹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꼬락서니는 참 가관이었어요. 선악과를 먹어도 여전히 우둔한 남자는 자기랑 딱 어울리는 천생연분 같은 짝을 골랐던 셈이었죠. 그런 한심한 모습을 보자 그와 '돕는 배필'이 되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느꼈어요. 그런 사람하고 제가 어떻게 짝이 되겠어요? 마음속 응어리가 깨끗하게 녹아버리는 것 같았어요. 이제 남자는 잊고, 저 나름대로 살아가야겠다는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당신이 알고 계시는 바로 그 이야기예요. 하느님은 저에게도 무섭게 화를 내셨고 저는 팔과 다리를 잃었고,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아시는 이야기잖아요. 모르신다고요? 그러면 기억나는 대로 말해 드릴게요.

하느님이 말씀을 마치시자 케루빔 둘이 나타났어요. 네, 맞아요. 당신들이 속죄판 위에 황금으로 조각해 놓은 그 천사들이죠. 실물로 본 그들은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아름다웠어요. 저는 앞으로 제게 닥칠 일이 무엇인 줄도 모르고 그 광채에 감탄까지 했지요.

한 케루빔이 마치 다친 아이를 달래듯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제 몸을 결박했어요. 저는 그 자애로운 표정에 속아 반항조차 하지 않았죠. 그러자 다른 케루빔이 허리춤에서 스스로 회전하는 불칼을 꺼내 들었어요. 그 뜨거운 열기에 제 비늘이 오그라들기 시작했을 때야 비로소 깨달았어요. 육체적인 고통도 하느님이 내리신 처벌의 일부라는 것을요.

서걱, 하는 소리 대신 치이익, 하고 타들어 가는 소리가 났어요. 불칼이 제 어깨를 통과하자 팔이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어요. 핏방울이 튀기도 전에 단면이 불에 지져져 막혀버렸죠. 바닥에 떨어진 제 팔과 다리는 불칼의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하얀 재로 변해 바스라졌어요. 제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했던 제 예쁜 손이, 바람 한 번에 날아가는 먼지가 되어버린 거예요. 그때 얼마나 아팠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아요. 다만 뜨겁다거나, 날카롭다거나 하는 감각은 사치였어요. 그냥 제 영혼을 거대한 멧돌 사이에 넣고 갈아버리는 듯한 압도적인 '순수한 고통' 그 자체였어요. 저는 첫 번째 다리가 잘릴 때 이미 정신을 놓았던 것 같아요.

깨어나 보니 그들은 없었어요. 제 팔다리가 있던 자리엔 검게 그을린 흉터랑 불타버린 네 개의 잿더미의 흔적만 제 옆에 그림처럼 남아있을 뿐이었죠.

 

제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저의 반짝이는 손을 다시 볼 수가 없게 되었지만 후회는 안 해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저는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살아갈 수가 없었을 거예요. 저는 죽기를 바랬지만 겨우 팔다리만 상실했을 뿐이었어요. 그러면서 팔다리가 붙들고 있던 부질없는 희망과 미련들도 함께 놓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는 완전히 자유로워졌어요.

 

이제야 하는 말인데 저는 다리로 걸었을 때보다 배로 기는 지금이 오히려 편해요. 제 배에 달린 두터운 비늘들은 애초에 제가 배로 기기 위한 운명인 걸 예측하고 만들어진 것 같아요. 하느님의 수다스러운 나머지 저주들은 제게는 초조한 악다구니처럼 느껴졌어요. 모든 게 뜻대로 이루어질 거라 생각하셨을텐데 그러질 못했으니까 많이 당황스러우셨을 거예요.

 

여자의 자손이 제 머리를 상하게 하고 나는 그들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거고 제가 흙을 먹으며 살 거라고 하시던데, 그 분께서 제게 다리를 빼앗을 수는 있지만 제가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는 제가 정하는 거잖아요. 다리를 빼앗기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악한 일을 했다고 저주를 받았잖아. 저주가 지속되는 한, 악을 행하는 게 나의 진짜 존재 이유가 아닐까?'라고요.

 

에덴에서 쫓겨나고 나서 여자는 하와라는 새 이름을 얻었어요. 하와의 맏아들은 카인이라고 불렸어요. 카인은 하느님이 자기가 바친 곡식을 탐탁잖게 여기고  동생 아벨이 바친 가장 좋은 새끼 양만 기쁘게 받으셔서 많이 속상해했어요. 저는 기분이 묘했어요. 새끼 양이라면 남자를 빨리 만나 보려고 제 등을 떠밀던 사랑스런 그 친구의 아들이잖아요. 따지고 보면 양은 남자의 배필이 될 수도 있었던 존재였는데 가죽이 벗겨지고 고기랑 기름이 저며져서 하느님께 재물로 바쳐진 거였죠. 그런 참혹한 모습을 보자 제가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정한 동물을 하느님께 바치겠다고 제단에 올리는 일은 없을 거잖아요.

 

이제부터는 당신이 아직 모르고 계실 것 같은 이야기를 하나만 더 들려드릴게요. 이유 없는 편애가 얼마나 아프게 영혼을 갉아먹는지는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알죠. 그리고 그 틈을 어떻게 파고들 수 있는지도 말이에요. 저주를 받아 다리를 잃은 저는 흙바닥을 배로 기어서 하느님의 냉대에 괴로워하는 카인에게 다가갔어요. 마치 제가 해야 할 사명을 수행하기라도 하듯이 말이에요.

 

카인은 하느님이 말씀하신 대로 제 머리를 내려치려고 했어요. 하느님이 시켜서 그랬다기보다는 그 아이는 화풀이를 할 대상이 필요한 것 같아 보였어요. 저는 그 녀석의 발꿈치를 무는 대신에 '뱀의 혀'로 그 아이의 머릿속에 독을 넣어줬어요. 한 사람에게 주입한 그 독은 하와의 자식을 둘이나 빼앗아 갔어요. 카인의 영혼과 아벨의 육체를 죽였죠. 하느님은 생각보다 순진한 구석이 있어요. 제가 누구 좋으라고 그 냄새나는 발꿈치를 깨물겠어요? 그리고 오해하지 마세요. 하느님이 제게 뭐라고 악담을 하셨든 저는 더럽게 흙 같은 거 절대 안 먹어요.

 

제가 너무했다고요? 무슨 소리를? 아녜요. 모든 건 하느님이 다 준비해 놓으셨어요. 당신도 아시다시피 저는 하느님께 팔다리를 모두 빼앗겨서 손이 없어요.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그 아이를 저에게 허락된 제 혀로 살짝만 건드렸을 뿐이죠. 하느님께서 그 아이를 거기까지 몰아서 세워놓으시지 않으셨다면 제가 아무리 힘껏 밀었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하와가 둘째 아이의 죽음을 겪어내면서 옷을 찢으며 눈물을 쏟는 모습은 참 볼만했어요. 제 친구였던, 그 예쁘고 부드러운 털을 가진 양은 하와의 아들 아벨에게 자기 아들을 빼앗기고 아들이 피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요. 울부짖던 하와도, 조용했던 양도 서로 비슷한 마음이었겠죠?

 

하와는 저에게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의 모멸감을 줬어요. 결과적으로 제가 하느님에 대한 불순종까지 저지르게 했던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도 하와였죠. 저와 제 아이들은 앞으로도 그녀의 자손들에게 계속해서 유용한 조언을 하려고 해요. 왜냐고요? 그게 바로 '뱀에게 부여된 일'이니까요. 저는 제 사명을 수행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호호호.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하느님께서 그 때 저에게 무서운 저주를 내리시는 대신에 저를 꼭 안아주시면서 '많이 힘들었겠구나. 앞으로는 죄를 짓지 마라.'라고 말씀하셨다면 저는 제 존재 이유를 속죄와 반성, 감사와 찬양으로 여기게 되지 않았을까요? 그랬으면 좋았을까요? 아니면 그러질 않아서 다행이었을까요? 하느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셨다면 죄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아들을 내어주지 않으셔도 되었을 텐데,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 도대체 왜 그러셨는지는 짐작을 하기가 어려워요.

 

그건 그렇고, 뱀... 뱀... 몇 번을 들어도 입에 붙지도 않고 정이 안 가는 참 밋밋한 이름이죠? 미련한 놈이 성의 없게 지어준 티가 확 나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 바보 같은 녀석이 지은 것 대신에 저를 부를만한 소중한 이름을 스스로 지었어요.

 

'사탄'

 

예쁘죠?

 

지루한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요. 이제 우리 이야기도 할까요? 당신은 이름이 뭔가요? 필요하신 걸 제게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제가 필요한 걸 먼저 말씀드릴까요? 아까 이야기했지만 저는 흙 같은 건 안 먹어요. 단지 당신의 숨결이 아주 조금 필요할 뿐이에요.

Posted by 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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