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와에서 메모리카드를 검색해 보면 현재 2 테라짜리 sd카드까지 출시되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아직은 실험적인 용량이라 가격당 용량은 꽤 비싸다. 대략 30만 원 정도인데 1 테라가 10만 원인걸 감안하면 가성비 구간에서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삼성은 없고 오직 샌디스크만이 출시한 상태다. sdxc규격은 2 테라까지이고 4 테라부터는 sduc라는 새로운 표준이 도입될 것이라고 한다.
sduc는 장차 제대로 정착할 수 있는 규격일지에 대한 의심을 품게 하는 면이 있다. sd카드의 가장 확실한 소구점은 미니기기에 장착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큰 게 스마트폰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끈질기게 SD슬롯을 제거하려 했었다. 애플은 애초에 sd 같은 불순물을 자신의 제품과 결합시킬 의사가 없었다. 구글 역시 안드로이드에서 sd카드를 제거하려고 사용자를 괴롭히며 꾸준히 노력해 왔었다. 삼성은 갤럭시 s6에서 sd 슬롯을 제거했다가 사용자들의 격한 반발에 되돌리게 되었고, s21에 이르러서야 그 야망을 기어코 성공적으로 실현시켰다.
애플을 흉내낸 내부 메모리 용량 장사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삼성 클라우드를 승계한 원드라이브를 팔아먹기 위한 마소의 입김 때문이라는 해석이 오히려 힘을 얻었다. sd 슬롯 제거는 많은 사용자들을 괴롭히긴 했으나 그게 클라우드 매출에 충분히 기여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대시보드 위에 놓여 있는 동전 하나를 훔치기 위해 자동차 유리를 깨버리는 무지막지한 도둑놈을 보는 기분이랄까. 삼성이 총대를 매고 나니 중국 제조사들도 플래그십 모델들을 중심으로 그 뒤를 따랐다. 2025년 현재는 sd 슬롯이 없는 저가 모델들도 각사마다 속속 출시되고 있다.
대부분 미니기기들은 스마트폰이 집어삼켜버렸다. 그리고 스마트폰은 미니기기들로부터 승계받은 sd슬롯을 스스로 폭파시키면서 sd카드의 존재 이유에 대해 강력히 도전했다. 지금 와서 굳이 sd카드를 필요로 하는 분야는 상당히 마니악한 영역인 드론과 액션캠, 미러리스 카메라 정도가 아닐까? 차세대 닌텐도나 스팀덱 같은 게임 콘솔은 네트워크 연결이 필수화되면서 sd슬롯은 언제든 사라져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sduc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데이터 밀도의 물리적인 측면도 있다. 2023년 하반기쯤에 TLC 중에서 가장 저렴한 2 테라 ssd의 가격은 10만 원 미만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15만 원쯤하고 있다. 18개월마다 반도체의 집적도가 2배씩 상승한다는 무어의 법칙과는 상반된 추세이고, 현재는 데이터 저장용으로는 qlc도 널리 쓰이고 있는 실정이다. slc mlc tlc qlc는 반도체 회로의 선폭을 줄여 데이터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 물리적인 한계에 도달했다는 방증으로 보일 수 있다. slc에서 mlc가 되는 것은 용량을 2배로 만들기 때문에 매우 효과적인 발전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셀에 더 많은 비트를 기록하는 기술은 수확체감 법칙이 작용한다. mlc에서 tlc는 50%의 향상이었고 tlc에서 qlc는 33%, qlc에서 plc는 25%의 향상만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반도체의 내구성은 크게 하락한다. 그나마 mlc에서 tlc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는 3d nand기술이 도입되어서 실질적인 내구성은 mlc수준을 유지했으나 qlc부터는 데이터 보존의 불안정성이 일방적으로 증폭되기만 하는 구조가 되었다.
현재 sdxc의 끝자락에 있는 2테라짜리 sd카드는 데이터 밀도의 한계에 도달한 상태라고 추측된다. 128 테라까지 지원하게 될 sduc가 물리적으로 같은 크기의 규격이기 위해서는 데이터 밀도가 64배까지 올라가야 한다. 현재 최신 3d 낸드 기술은 대략 200층 정도로 알려져 있다. 단순 계산으로는 대략 13,000층이라는 비현실적인 3d낸드 구조를 만들어야 128 테라가 sd카드에 실릴 수 있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MRAM, FeRAM, ReRAM 같이 완전히 새로운 반도체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는 점에 희망을 걸어볼 수도 있다. 그리고 만약 연구 중인 신기술들이 기존 낸드에 비해 면적당 데이터 저장 밀도가 10배나 높다고 한다면 기술적으로는 비약적인 발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일시적인 발전에 그치기가 쉽다. 공정 미세화는 양자 터널링의 단계에 이렀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은 일회성으로 용량을 10배로 키울 뿐 그 기술을 고도화시켜 꾸준하게 용량을 확장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차 드론과 액션캠의 sd슬롯 자리에는 sduc 대신에 무엇이 들어가게 될까?
배터리로 구동되는 미니기기에 엄청난 컴퓨팅 능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내장된 인코더는 극도로 많은 수의 화소를 감당하지 못해서 원본 영상의 크기를 대책 없이 키울 테고, 겨우 2 테라짜리 메모리 카드로는 장래에 도입될 엄청난 해상도의 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못할 것이다. sd카드를 대체할 가장 현실성 있는 대안은 또 다른 종류의 메모리보다는 6g 유심일지도 모르겠다. 메모리카드로는 감당할 수 없을 용량의 데이터를 기기를 생산한 업체의 서버에서 잠시 기록물을 보관해 주는 방식을 예상해 볼 수 있다. 클라우드 서버의 연산력을 활용해서 최신 코덱으로 최적화된 프로파일로 인코딩까지 대행해 줄 수도 있다.
이 대안은 꾸준한 구독료 매출을 일으키기 때문에 기업들이 환영을 받을만하다. 사용자들은 비용적인 측면과 데이터 주권 문제로 울상을 짓겠지만 고밀도 저장 능력을 필요로 하는 sduc가 정착하지 못한다면 마땅한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을 테고, 사용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6g 유심 슬롯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런 폐쇄적인 정책에 저항을 해봤자 펌웨어를 개조하여 클라우드가 아닌 개인 나스에 연결하는 정도 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개인 나스에 들어가 있을 하드디스크의 용량 역시 물리적 한도에 다다랐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물론 90년대 후반쯤 하드디스크의 물리적 용량의 한계는 2기가 정도라는 다소 귀여운 회의론이 거론되긴 했다. 그런 절망 속에서 5.25인치 하드디스크라는 괴상한 제품이 나오기도 했었다. 그랬던 점을 떠올려보면 이런 비관이 근거가 희박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염려는 과거와 진행되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그때는 2기가가 한계일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제품 출시는 2, 4, 6, 8, 10, 20, 30, 40, 60처럼 빅스텝으로 용량 증가를 보여왔었다. 당연히 용량 증대에 따른 가격 인상은 없었다. 하지만 현재 출시되고 있는 하드디스크들은 2,3,4,5,6,8,10,12,14,16,18,20,22,24,26,28,30으로 2 테라 단위로 겨우 겨우 허덕이면서 용량을 늘려가고 있다. 그러면서 테라바이트당 단가는 14 테라 제품을 기준으로 용량이 클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렇듯 저장장치의 용량이 물리적 한도에 달했다는 인식은 근거 없는 엄살이 아니라 제품 시장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에 근거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 1테라 하드디스크 2개가 2테라 하드디스크 1개에 비해서 훨씬 비쌌던 이유를 생각해 보겠다.
우선은 공급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 하드디스크는 상당히 복잡하고 정밀한 기기다. 단순히 말해서 1 테라 하드디스크에 플래터 한 장만 더 추가하면 2 테라가 된다. 2 테라 하나가 1 테라 2 개에 비해 생산비 자체가 훨씬 저렴하다.
수요 측면에서도 살펴보겠다. 과거에는 부팅을 위해서는 무조건 하드디스크 1개가 필수였다. 1 테라 하드 2개는 2대의 컴퓨터를 부팅시킬 수 있지만 2 테라는 1대를 부팅시키고 1 테라라는 추가적인 용량을 제공할 뿐이다.
현재 하드디스크가 용량이 클수록 1테라당 가격이 비싸지는 이유는 근본적인 저장 기술의 발전 없이 기계적으로 용량을 높이는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면적당 데이터 밀도는 그대로인 상태에서 플래터 매수만 자꾸 늘어난다. 1장에서 2장은 큰 부담이 아니었으나 매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7장, 10장씩 되다 보면 점차 기계적으로 감당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다 보니 원판의 펄럭임을 방지하기 위해 안정적이면서도 가장 밀도가 낮은 기체인 헬륨으로 내부를 채우기에 이르렀다. 20 테라 디스크는 10 테라 디스크 2개를 꽂을 포트와 베이를 하나로 줄여주기 때문에 값을 좀 더 받아도 된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다. 부팅을 ssd가 담당하고 하드디스크가 필수품이 아니게 된 현 상황이 작은 용량 하드디스크에 대한 수요를 제한하여 시장 가치를 하락시킨 셈이다.
예전에는 용량의 증가란 같은 동일한 기술을 이용해서 같은 면적에 더 많은 것을 집적시키는 양적인 방식이었지만 앞으로는 완전히 다른 기술과 소재를 필요로 하는 질적인 발전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매번 용량을 늘릴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비관적인 상황에서는 용량의 발전 속도는 예전처럼 빠르게 이어지기 어렵다. 그렇다면 개인이 필요로 하는 용량을 줄이는 기술이 오히려 저장 장치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이 될 수 있다.
예전에 pc를 조립할 때 하드디스크는 거거익선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현재 pc를 조립할 때 512기가를 초과하는 ssd나 추가적인 하드디스크를 원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게임과 영상 음악 같은 컨텐츠를 다운받아서 스스로 보존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언제든 스팀 같은 플랫폼에서 구입한 게임을 다시 다운로드할 수가 있고 영상은 넷플릭스, 음악은 스포티파이로 즐기면 된다. 상업적 컨텐츠는 돈만 내면 별도의 저장장치 없이 언제든 접근할 수가 있다. 개인적인 스토리지에 대한 수요는 지극히 개인적인 데이터를 저장하는 용도일 뿐이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나 짧은 영상들 그리고 용량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개인적인 문서 정도가 개인이 만든 컨텐츠의 전체라고 볼 수 있다. 예전에는 100곡의 고음질 인기가요를 듣기 위해서는 개인당 1기가 정도의 용량이 필요했다. 백만 명이 같은 음악을 즐기려면 사회적으로 1 페타의 저장공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스트리밍을 이용하면 서버 쪽은 1기가만 필요하고 미러링과 백업까지 고려하더라도 3기가면 된다. 다만 각각이 다운로드 받아갔던 상황에 비해서 더 큰 트래픽이 필요할 뿐이다.
이점을 일찌감치 똑똑한 중국인들이 교묘하게 파고들었었다. 2010년대 초중반 무렵 바이두는 무료사용자에게 2 테라 용량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운영했다. 텐센트는 10 테라 그리고 치후360이라는 업체는 무려 36 테라를 무상제공했었다고 기억한다. 그때 당시는 태국 홍수로 하드디스크 공장들이 수해를 입었고 하드디스크 가격이 순식간에 2배 이상으로 치솟아있던 시절이었다. 당시 2 테라 하드디스크의 가격은 15만 원 정도였다고 기억한다. 하드디스크가 비쌌던 시절이기 때문에 그런 무료 서비스는 더더욱 파격이었다. '역시 중국 업체들은 돈이 많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중국 사용자도 그에 따라 많아서 필요한 비용 역시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그래서 단지 업체가 돈이 많다는 것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서비스였다.
내가 똑똑한 중국인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들이 바로 그 점을 상당히 스마트하게 돌파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사용자가 파일을 업로드하려고 할 때 그 파일을 그대로 받아주지 않았다. 사람들이 가진 파일들 중에서 용량이 큰 것들은 대부분 상업적인 컨텐츠들과 그것의 무단복제물들이었다. 그런 파일들은 고정된 원본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업로드하는 대부분의 데이터들은 겹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파일을 업로드할 때 파일 용량과 해쉬값을 점검해 보고 자기들 서버에 보유 중인 파일과 같은 것으로 감지가 되면 트래픽을 발생시켜서 업로드를 받는 대신에 서버에 이미 보유 중인 파일을 링크하여 디스크 용량을 아꼈다. 사용자는 지루한 업로드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식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에는 구글이 구글포토 무제한 저장 서비스를 시작했고 교육용 계정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무제한 저장공간을 제공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때 '더 이상 하드디스크가 필요 없는 진정한 네트워크 컴퓨팅 세상이 도래한 것일까?'라는 상당히 안일하고 낭만적인 낙관에 빠져서 지냈었다. 그러나 중국 업체의 이런 데이터 보관법은 곧 사용자와 업체 모두에 큰 재앙을 가져왔다. 중공의 무지막지한 검열 정책이 개인용 클라우드에까지 적용된 것이다. 역시 공산당의 오지랖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선 사용자 입장에서의 재앙부터 보자. 그들 입장에서 불온한 데이터로 간주되는 것들은 접속이 차단되거나 더미파일로 대체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하루 만에 많은 걸 잃었다. 그 독특한 저장방식은 서버에 있는 하나의 파일만 건드려도 수억 명이 보유한 데이터를 한순간에 날릴 수 있는 파괴력을 보여줬다. 그러자 사람들은 파일을 살짝 수정해서 용량과 해쉬값을 바꾸는 방법으로 대응했다. 그건 곧 업체의 재앙이 되었다. 업체 입장에서는 중복되는 데이터에 대해서는 하나의 파일만 저장할 용량만 부담하면 될 일이었지만 수억 명이 각각 다른 해쉬값을 가진 파일들을 업로드해 버린 것이다. 클라우드는 그들이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엄청난 리소스가 필요한 사업이 되었고, 바이두를 제외한 업체들은 그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서비스를 중단해 버릴 수밖에 없었다. 바이두 역시 불필요한 사용자들을 차단해 버리는 조치를 취했다. 바이두가 문자인증을 요구했을 때 '중공 탈출은 지능순'이라고 바이두를 떠났던 기억이 난다. 내 흐릿한 기억으로 당시는 중공의 한한령으로 실제로 수많은 한국 기업들이 엄청난 손실을 감수하며 중국 시장에서 탈출했던 사건들과 시기적으로 겹쳤던 것 같다.
여담으로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받아주던 구글의 관대한 정책은 비교적 오래갔지만 결국은 끝이 나버렸다. 그래도 모든 사람을 상대로 했던 구글포토는 기존에 저장했던 파일들을 보장해 줬지만 교육용 계정에 넣은 데이터는 가차 없이 삭제되어 버렸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원드라이브 교육용 계정도 비슷한 길을 갔었는데 무제한은 아니고 1 테라라는 한도가 있었고, 저장공간을 회수하기는 했지만 기왕 저장된 데이터를 삭제하지는 않았다.
중국 업체들과는 달리 상당히 긴 유예기간을 주고 대비할 수 있게 했던 건 빅테크다운 품격이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며 데이터 주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체감한 계기가 되기도 했었다. 자유의 본질과 근거는 재산권에서 비롯된다든지, 출판의 자유는 누구나 인쇄소를 소유할 자유가 있기 때문에 성취할 수 있다는 자유주의 철학을 입증한 사례들이라고 우겨볼 수 있으려나.
중국 업체들의 믿기 어려운 용량 공세가 있었던 그 당시는 클라우드가 미래 산업으로 알려지며 각종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진출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클라우드는 대다수 일반 사용자에게는 웹하드랑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질 뿐이었다. 많은 업체들이 그때 생겼지만 끝까지 살아남은 곳은 극소수였다. 클라우드의 근본적인 문제는 사용자가 직접 데이터를 보관하는 것보다 고비용 구조라는 점이다. 24시간 전원을 넣어야 하고 하드디스크 자체도 서버용으로 비싼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 거기에 업체 스스로도 이윤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보더라도 이용자 입장에서는 비싸게 보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따라서 클라우드는 단순 저장용보다는 상시적으로 필요한 소량의 데이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경로 정도로 활용하는 게 경제적 관점에서 합리적이다. 그러나 산업 초창기에 애매한 업체들은 무작정 대용량으로 자사 서비스의 차별성을 어필함으로써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
아직 살아남은 네이버 클라우드는 30기가, 지금은 사라진 다음 클라우드는 지금 관점으로는 상당히 큰 50기가나 되는 용량을 통 크게 무상으로 제공했었다. 그런데 당시 내가 느꼈던 소감은 이랬다. '싸구려 SD카드 절반도 안 되는 용량인데 누구 코에 붙이나?' 사용자들의 시큰둥함과 대조적으로 사업자들은 막연히 클라우드가 미래라는 말을 어디 들었는지 무작정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오래 살아남지는 못했다. 통신사들이나 중소 규모 업체들은 속속 클라우드 사업에서 철수했고 심지어 다음 클라우드마저 그 뒤를 따르면서 단지 저장공간만 제공하는 클라우드는 그리 수익성이 좋은 사업이 아님을 시장에서 증명해 버렸다.
그 과정에서 클라우드의 절대적인 소구점인 데이터의 안전이라는 덕목에도 사용자 인식에 큰 상처를 남겼다. 구글과 애플도 언젠가는 망할 수 있고 그 안의 데이터를 수습하느라 번거로움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장만한 나스와 거기 넣은 하드디스크는 내가 재정적으로 망하든 말든 누군가가 물리적으로 건드리지 않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건 클라우드 구독료 이외에 트래픽 자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보편적인 유선 인터넷 속도인 100메가 bps는 출시 당시에는 초고속이었지만 현재는 그리 빠르지 않다. 이론상으론 초당 12.5메가이고, 실체감 속도는 기껏해야 초당 11메가바이트 전송된다. 1기가 전송에 1.5분 정도 소요된다. 하드디스크의 전송속도는 초당 200~300메가바이트다. 클라우드에 속도 지연 없이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2.5기가 bps 회선이 필요하다.
인터넷 접속이 전화선에서 해방된 이후 사용자들은 정액요금제로 통신비 폭탄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통신사들은 인터넷 종량제를 해야 한다고 한동안 꾸준히 주장해 왔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사용자들로부터 욕만 먹고 그 주장을 철회하는 추태를 주기적으로 반복해 왔었다. 그러나 100메가 bps를 초과하는 상품을 출시하자 기다렸다는 듯 하루당 사용량 제한을 적용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숙원을 일부 해소했다.
현재 이동통신 기술인 5G 역시 마찬가지다. 5G는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지만 한 달에 기껏 100기가바이트 정도만 그 속도가 제공될 뿐 그 용량이 초과되면 10메가 bps로 속도제한이 걸린다. 라이트 한 사용자라면 애초에 데이터를 자기의 메모리칩이나 하드디스크에 감당하기가 곤란해서 클라우드에 의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통신사의 트래픽 제한은 용량 부족과 저장장치 증설 압력을 클라우드로 돌파해 보려는 시도에 병목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껏 데이터를 보관하는 일의 고단함에 대해 생각해 봤다. 클라우드는 큰 비용이 나가고, 앞으로도 요금이 내리기는 어려운 구조다. 하드디스크나 메모리를 구입하는 것도 과거처럼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줬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2025년 현재 10만 원 초중반대에 가격이 형성되어 있는 4 테라 하드디스크는 5년 전 가격이 오히려 싸다. 그렇다면 개인이 보유하는 데이터 크기의 급격한 확장에 대비하는 다른 방식의 접근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감각이 그리 민감하지 않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건 좋은 타협책이 될 수 있다. 일단 자기가 8k 디스플레이를 감당할 부동산과 시력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27인치 FHD모니터를 가로세로 4*4로 16개를 이어 붙이면 108인치 8k 디스플레이가 된다. 24인치 모니터를 이어 붙인다면 96인치다. 그런데 그 모니터들은 멀어봤자 1미터 이내에서 화면을 보는 사람들을 위한 해상도다. 100인치 tv를 1미터 거리에서 보는 건 별로 현실적이지가 않다. 따라서 8k 디스플레이의 현실적인 크기는 100인치보다 훨씬 큰 150인치 이상이 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특히 고령화 사회가 될 것이라서 화면 크기에 비해 지나친 해상도는 비용을 높일 뿐 시력이 흐릿해진 고령 사용자의 체감에 큰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150인치 tv는 가로뿐만 아니라 세로 높이도 상당해서 일반적인 주택이라면 층고의 대부분을 디스플레이의 세로축이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큰 TV를 집안에 들이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건 기술의 문제라기보다는 부동산의 문제다. 부동산은 물리적인 절대량을 늘리는데 매우 큰 비용이 드는 희소 자원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모든 사람들에게 쾌적하고 충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00인치로 사이즈를 축소하더라도 그것 역시 만만찮은 크기다. 어떤 집은 넓지만 문이 작거나 계단실이 좁아서, 어떤 집은 사다리차를 쓰기에 부적합한 구조라서 못 들일수가 있다.
그렇다면 카메라가 영상을 8k로 저장할 능력이 있다고 해서 실제로 그 해상도로 저장할 필요가 있을까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장된 영상파일을 무조건 원본으로 보관하기보다는 최신 코덱을 이용해서 압축률을 높이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행히 cpu나 gpu 성능은 저장용량에 비해 정체가 덜 일어나고 있는 편이라 카메라에 내장된 변변찮은 코덱으로 기록된 영상을 구분할 수 없는 수준까지만 열화 시켜서 정밀하게 재인코딩하면 저장 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그밖에 자신의 기기가 명목상 지원하는 화소수를 온전히 감당해 낼 능력이 있는지를 의심해 볼 필요도 있다. 2천만 화소의 미러리스카메라와 1억 화소의 핸드폰 사진을 비교해 보고 과연 1억 화소라는 해상도가 충분히 기능했는지를 냉정하게 평가해 보면 어떨까? 불필요하게 높은 해상도는 사진의 실질적인 품질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용량만 낭비하는 계륵일 수 있다. 또한 큼직한 UHD TV로 1080p 영상과 2160p 영상을 한눈에 구별할 수 없다면 자기에게 적절한 해상도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발상을 약간 전환해 볼 필요도 있다. 고화질 영상과 사진을 몇 개만 보존하고 유사한 영상과 사진들은 저화질로 낮춰서 저장한다. 나중에 남겨놨던 고화질 파일을 레퍼런스로 삼아서 ai를 이용해서 저화질 파일들을 복원해서 보는 방법이다. NPU 성능이 크게 향상되면 아마 핸드폰에서 실시간으로도 가능해질 것 같다.
데이터의 원본성이나 데이터 주권을 크게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면 자기 영상을 최대 화질로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비공개처리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하다. 비공개지만 구글의 검열 ai는 작동하므로 커뮤니티 가이드를 위반하는 영상은 피하는 게 좋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재인코딩을 하면 열화가 생길 수 있지만 직접 인코딩하는 시간과 부족한 저장공간을 아끼는 효과가 있다. 다른 사람의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된 4k, 8k 영상을 보면 유튜브가 인코딩한 결과물 화질이 딱히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비공개영상이라도 초대 링크를 이용해서 지인들에게 공개할 수는 있다고 한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예상보다 늦게 발전하는 스토리지 용량이다. 1 테라 하드디스크가 최초로 발표된 시점은 2007년이다. 그로부터 18년 전인 1989년에 가장 큰 하드디스크는 100메가 정도였다. 그때의 시각에서는 하드디스크는 18년 만에 10,000배가 커지는 물건이었다. 마찬가지로 18년 후인 2025년이라면 겨우 1,000배가 클 뿐인 페타바이트 단위의 하드디스크를 기대하는 것은 그리 무리한 망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2025년 현재 가장 큰 용량의 하드디스크는 겨우 30배 정도 커진 30 테라바이트일 뿐이다. 그리고 용량의 확장이 지지부진해진 지금으로부터 18년이 지난 2043년에 지금보다 34배 이상으로 용량이 늘어나서 페타바이트 단위를 쓰는 하드디스크를 볼 수 있을지도 상당히 회의적이다. 따라서 누구도 기대하지 못한 스토리지 기술의 비약이 생기지 않는 한, 개인적인 데이터 생성과 저장은 과거와 달리 다소 보수적인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저장 강박증 환자가 매년 일정한 비율로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면 그는 공간에 대한 걱정 없이 자신만의 보물들을 계속 수집할 수가 있다. 그의 욕심은 끝이 없지만 그가 점유한 공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넓어지기 때문에 그는 쌓여가는 잡동사니로 별다른 불편을 겪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실의 저장강박증 환자는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지 않고 그 집에 계속 거주하면서 자신의 보물에 파묻혀 고통을 받는다. 더 큰집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그를 구원할 방법은 그의 자유 대신에 그의 보물이 차지한 공간을 그에게 되돌려 주는 것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