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스포티파이가 한국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계정을 만들어봤다. 선호하는 곡과 가수들을 선택하면 그걸 기반으로 좋아할 만한 곡까지 추천되는 걸 보고 당시에 꽤 마음에 드는 서비스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스포티파이만의 장점인 freemium이라는 무료 플랜은 한국에서 서비스되지 않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재미있는 선진 문물을 잘 구경했다고 생각하고 몇 시간 만에 탈퇴 버튼을 눌렀고 한동안 스포티파이를 잊고 지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신문을 보다가 스포티파이가 얼마 전부터 한국에서도 무료 플랜을 시작했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며칠 동안 미적대다가 한번 이용해 보기로 결심했다.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어서 본 계정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temp mail을 활용해 봤다. 의외로 메일을 열어서 인증해야 하는 절차는 없었다. 애초에 temp mail조차도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이후에 다른 기기에서 로그인할 때도 가입한 메일로 코드를 전송했다는 메시지가 나오긴 했지만 비밀번호로 로그인이라는 옵션을 고르면 그 버려진 메일 없이도 로그인이 가능하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스포티파이가 의외로 허술한 회사가 아닐까라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게 회원 수를 쉽게 늘리기 위한 의도된 헐렁함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무료 플랜을 체험하려는 목적의 가입이었는데 첫번째 시련이 왔다. 첫 15일간은 무조건 premium을 강제로 체험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 15일 동안에 결제수단을 등록하면 3개월 무료이용권을 같이 준다고 한다. 지루한 15일간의 기다림이 끝났고 드디어 무료 플랜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기대했던 무료 플랜의 사용 경험은 유튜브의 경우처럼 유료 플랜과 유사한 긍정적 경험 + 번거로운 광고 청취 의무였다. 그런데 스포티파이는 첫인상에서 느꼈던 것 같은 말랑한 회사가 결코 아니었다.

 

우선, 어떤 기기에서 음악을 듣는지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 윈도우에서는 앱을 쓰거나 웹을 쓰거나 상관없이 비교적 자유로운 플레이가 가능했다. 그러나 안드로이드에서는 여러 제약을 만나게 된다. 첫째, 원하는 곡을 골라서 재생하는 게 불가능했고 특정한 플레이리스트를 랜덤재생할 수 있을 뿐이었다. 둘째, 곡의 듣고 싶은 부분을 골라서 듣는 기능이 없었다. 즉 간주 점프나 못 듣거나 다시 듣고 싶은 부분 되돌리기가 불가능하다. 셋째, 듣기 싫은 곡을 넘기는 게 한 시간에 6곡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마치 헬스클럽이나 카페에서 듣기 싫은 곡을 강제로 들어야만 하는 상황을  굳이 내 폰으로 재현해야 하는 셈이었다.

 

앱 설치 대신에 웹으로 접속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스포티파이는 그렇게 만만한 회사가 아니었다. 폰으로 웹페이지에 로그인하면 윈도우에서 웹을 쓰는 것처럼 순순히 플레이 화면으로 넘어가주지 않는다. 폰을 모니터에 연결해서 덱스모드로 작동할 때만 플레이 화면을 허용한다. 그러면 윈도우용 브라우저로 웹페이지에 접속한 것처럼 사용에 별다른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무료 플랜으로 전환되고 나서 플레이가 불가능한 곡이 엄청나게 많이 생겼다는 점이다. 그런 곡들은 제목이 회색 글씨로 표시되고 플레이버튼에 커서를 올리면 커서 모양이 금지 모양으로 변한다. 플레이가 왜 안되는지에 대한 이유는 제시되어있지 않는다.

 

광고를 열심히 들어주는 것과 원하는 곡을 듣는 걸 등가교환이라 여겼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 같다. 유료 플랜 요금은 한 달에 대략 12,000원 정도인데 거기에 약간만 보태서 유튜브 프리미엄을 구독하고 유튜브 뮤직을 덤으로 얻어오는 게 나을 것 같다. 폰의 덱스모드로 이용하더라도 다른 창에서 웹브라우저로 영상 같은 걸 정상적으로 플레이하려면 브라우저의 백그라운드 재생 기능이 필요하다. 크롬에서는 지원하지 않는 기능이라 부득이 브레이브 브라우저로 스포티파이를 경험해보게 되었다. 굳이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브레이브에 내장된 애드블록이 잘 먹혀서 스포티파이의 광고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본의 아니게 일시적으로나마 스포티파이 입장에서는 기생충 같은 존재가 되어본 셈이다. 나중에 다시 시도해봤는데, 스포티파이는 덱스 모드에서 크롬으로도 정상적인 사용이 가능하다. 백그라운드 재생과는 상관이 없었던 것 같다.

 

윈도우 환경이 아니라면 쓸모가 없는 서비스이고, 윈도우를 사용한다면 굳이 스포티파이에 접속할 필요 없이 유튜브로 원하는 음악을 검색해서 별다른 제한 없이 감상하면 된다. 가짜 메일 주소로 만든 계정이라 굳이 삭제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굳이 즐겨 사용할 이유는 없는 무해무익한 서비스로 볼 수 있겠다. 이제부터 그 계정의 존재와 그 계정에 어떤 플레이리스트들이 저장되어 있는지를 기억하는 건 더 이상 내 책임이 아니라 스포티파이측의 부담일 뿐이다.

Posted by 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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