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기 전에 이 글은 순전히 재미를 위해, 근거 없는 상상을 펼쳐 쓴 것임을 밝힌다.
나는 복음서를 읽을 때 예수가 그리스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즐기곤 했다. 유대 율법학자들은 율법에 따라 사람을 처벌하는 데는 능숙했지만, 논리적 사고에는 다소 약점을 보였다. 지혜의 보고라는 탈무드가 세상에 나오려면 아직 200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복음서에 나타난 율법학자들의 태도를 보면, 율법보다 생명 구하기를 우선하는 원칙(피쿠아흐 네페쉬)조차 아직 완전히 확립되지 않았던 시대로 짐작된다. 오로지 토라만이 절대적인 기준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논리적으로 충분히 반박할 수 있는 예수의 말에 율법학자들은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당황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예를 들어, 예수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사건에 대해 율법학자들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예수는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소을 건져내지 않겠느냐?"라고 되물었다. 당시 율법에 더욱 엄격했던 율법학자 입장에서 논리적인 답은 "건져서는 안 된다."였다. 토라에 따르면 모세와 아론은 안식일에 나무를 줍던 사람을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처형하기까지 했다. 소는 물건을 나르거나 밭을 가는 데 사용되는 가축이다. 안식일에는 소를 집 안에 두어야 했다. 소를 구덩이에서 꺼내는 행위는 나무를 줍는 것에 비해 훨씬 심각한 안식일 위반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
또 다른 예로, 율법학자들은 예수가 마귀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비난했다. 이때 예수는 "바알세불이 스스로 분열하면 그 나라가 망할 텐데, 어찌 그런 일이 있겠느냐?"라고 반박했다. 만약 사고가 조금 더 유연한 율법학자가 있었다면, 다음과 같이 예수에게 되물었을 수도 있다.
"당신은 바알세불이 스스로 분열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논리로 당신의 행위를 변호했습니다. 일견 논리적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어, 한 마을에 밤마다 흉악한 산적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해친다는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고, 감히 밤길을 다니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때, 한 젊은이가 나타나 용감하게 산적들을 물리치겠다고 나섰습니다. 어느 날 밤, 산적들이 나타났지만, 젊은이는 놀라운 힘과 용기로 산적들을 순식간에 제압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환호하며 젊은이를 영웅이라 칭송하고 마을의 지도자로 모셨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마을 사람들은 젊은이가 산적들의 우두머리와 은밀히 만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알고 보니, 젊은이는 산적 우두머리와 짜고 산적 소동을 벌였던 것입니다. 산적들은 젊은이의 명성을 드높이는 도구였을 뿐, 실제로는 젊은이의 통제하에 있었습니다. 당신이 쫓아낸다는 마귀들은 정말로 당신과 적대적인 존재입니까? 혹시 당신의 권능을 과시하고 당신을 메시아로 추켜세우기 위해 당신과 모종의 거래를 맺은 것은 아닙니까? 당신에게 쫓겨난 마귀들은 정말로 사라진 것입니까? 아니면, 당신의 영웅담을 훌륭하게 연출해 준 대가로,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영혼을 잠식한 채로 당신 안에서 함께 웃고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제국의 변방, 이스라엘 땅에서 제대로 된 지적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때려잡는 대신, 당대 세계관과 문화의 중심지였던 그리스에서 학문적으로 충분히 단련된 에피쿠로스 학파, 소피스트, 스토아 학파, 플라톤주의자, 니코마코스 윤리학자들을 예수가 만났다면 어땠을까? 이러한 상상은 늘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곤 했다.
복음서를 다 읽고 사도행전을 펼쳤을 때, 17장에서 드디어 내가 그토록 기대했던 장면이 나타났다. 바로 예수의 가르침을 대표한다고 하기에 충분한 최고의 사도, 위대한 바울이 아테네에 도착한 것이다! 게다가 내가 그토록 궁금해했던 에피쿠로스 학파, 스토아 학파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사도행전 17:18) 나는 수준 높은 철학적 논쟁이 오가는 치열한 토론 장면을 머릿속에 그렸다. 나에게는 그야말로 "드림 매치"였지만, 아쉽게도 성경은 그 만남을 너무나 싱겁게 묘사했다. 그들은 바울을 그저 말만 앞서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했을 뿐이다.(18절:"말쟁이") 그리스인의 관점에서 볼 때, 바울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부족했고, 신앙과 순종, 신비만을 강조하는 것처럼 들렸을 것이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루카는 그들이 어떤 논리를 주고받았는지 자세히 남기지 않았다.
어쩌면 에피쿠로스 학파는 신의 전능함과 선함의 모순을 지적하는 "에피쿠로스의 역설"을 바울에게 제시했을지도 모른다. 신의 선함을 의심하는 주장은 바울에게 그의 삶의 근본을 뒤흔드는 충격으로 다가왔을 수 있다. 바울은 기독교인들의 모범답안인 "심오한 신의 섭리를 인간의 사고로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라는 대답으로 겨우 침묵을 모면했을 것이다.
바울이 '사망의 권세'와 '영원한 생명'에 대해 말할때 에피쿠로스 학자는 이런 반응을 보였을 수 있다.
"사망의 권세? 좀 어색한 표현으로 들리는데 어쨌든 당신은 죽음이 무서운가보군요.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있을 때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고 죽음이 우리에게 왔을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한계와 한정된 시간의 가치를 깨닫고 그 안에서 지속가능한 쾌락, 아타락시아를 최대로 즐기는 길도 있습니다. 그건 당신이 원하는 '영원히 누군가에게 복종해야 하는 삶'보다 오히려 괜찮을 것 같지 않나요?"
바울이 스토아 학파 사람들에게 신이 주는 평안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그들은
"그것은 절제된 삶에서 오는 아파테이아일 뿐이며, 당신이 말하는 신은 필수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라고 반박 당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반박에 바울은 이렇게 응수했을 수 있다.
"당신들이 추구하는 아파테이아 자체가 바로 주님의 선물이며, 당신들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자세를 실천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면 스토아 학파 학자는 다시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당신은 무슨 권리로 당신이 믿는 외래 신을 우리가 성취한 정신적 경지 사이에 끼워 넣어 통행세를 받으려 하는 것입니까?"(18절: "외국의 신들을 선전하는 사람인 것 같다")
이러한 추궁에 바울은
"당신들이 스스로 정신적 경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희생과 부활로 인해 당신들에게 주어진 은총입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사람이
"희생과 부활이라… 무슨 뜻인지 좀 더 자세히 듣고 싶군요. 제가 당신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낄 사람들을 모아올테니 아레오바고 법정으로 자리를 옮겨서 설명해 보시죠."라고 제안한다.(19-20절)
아레오바고 법정에서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열정적인 연설이 끝난 후, 청중 중 누군가가
"저승에서 돌아온건 당신이 말한 것처럼 대단한건 아닐 수 있답니다. 헤라클라스, 테세우스, 오르페우스, 오디세우스, 아이네이아스처럼 이미 여러 사람들이 저승에 갔다가 돌아온적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딱히 섬기지는 않는답니다. 당신이 섬기는 예수가 되살아난게 뭐가 그리 특별한가요?" 혹은
"희생이라고요? 부활했다면서요? 부활했는데 왜 희생이죠?"
라고 질문했을 수 있다. 그 질문에 대해 바울이 판에 박힌듯한 기독교적인 답변을 늘어놓자, 논리를 중시하는 그리스 철학자들은
"당신은 변변한 답변을 못 할 때마다 '알 수 없는 신의 섭리' 뒤에 숨는군요. 자신도 잘 모르는 것을 왜 남들에게 강요하려 하십니까?"라며 핀잔을 주었을지도 모른다.(32절)
만약 바울이 아테네 철학자들과의 논쟁에서 성공적으로 우위를 점했다면, 사도행전에 그 토론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었을 것이고, 어쩌면 그것은 에피쿠로스 역설에 대한 유명한 논박 자료가 되었을 수도 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신약성경에 아테네의 "알려지지 않은 신에게 바쳐진 신전"(22절)을 기독교 형제들이 차지한 기념으로 바울의 "아테네서"가 신약성경에 추가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울의 전도에 끊임없는 딴지를 걸어온 아테네 사람들에 대해 "새로운 것이라면 무엇이든 말하고 듣는 데만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라고 비꼬며 루카는 빈정 상한 뒤끝을 사도행전 17장 21절에 소심하게 남긴 것 같다.
아테네를 떠난 바울은 고린토로 가서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를 작성한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신약성경에 포함될 만큼 인정받는 그의 첫 번째 저술이었다. 아마도 아테네에서 철학자들과 부딪히면서 바울은 지적으로 큰 자극을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과의 논쟁을 곱씹으며 심오한 묵상을 거듭한 결과, 자신의 신학을 한층 성숙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훗날 세 번째 코린트를 방문했을 때, 바울은 마침내 그의 지성이 최고조로 응축된 로마서를 집필해낸다. 여기에는 유명한 예정론이 등장하는데, 어쩌면 그는 로마서를 쓰면서 과거 아테네에서 수없이 자신에게 이불킥을 선사했던 논쟁의 천재들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똑똑한 인간들이 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주님을 믿지 못하는 걸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군.’
그러다 문득 영감이 떠올랐다.
'아! 그들은 주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불쌍한 사람들이었구나! 그래, 맞아. 심지어 예수님을 직접 만나 뵙고도 그분을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수많은 율법학자들과, 심지어 그 똑똑했던 빌라도 총독조차도… 아테네에서 만난 사람들 중 주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겨우 디오누시오 의원, 다마리스 여사, 그리고 몇몇 사람들 뿐이었지. 그러고 보면 절대 예수님을 인정하지 못했던 나부터도 운 좋게 다마스커스로 가던 길에서 주님의 선택을 받았던 걸 깨닫게 되었던 것이구나!'
그렇게 바울의 머릿속에서 피어난 이 깨달음, 혹은 일종의 정신승리가 로마서에 슬며시 녹아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테네 철학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바울에게는 꽤 그럴듯한 결론이었을 테니까.
내가 생각하는 바울의 아테네 선교 실패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바울은 과거 불신자였던 자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는 본래 야훼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완강히 부정하면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유대교 신앙을 어지럽히는 이단으로 간주하고 박해하려 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의 음성을 듣고 신비로운 체험을 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모했다. 반면 아테네에서 만난 사람들은 야훼가 창조주라는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었고, 예수에 대한 신비 체험도 없이 오로지 일방적 교리와 말씀으로만 기독교를 접했다.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사도인 바울이 직접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말씀"만으로는 그러한 사람들을 신앙의 길로 인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전도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