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성제를 중심으로 하여 불교의 불필요한 방편들을 제거하고 핵심만 취하려는 태도를 가져왔다. 그러고는 어느 정도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걷어내야 할지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다가 반야심경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혼란에 빠졌다. "오온이 공하고 사성제도 없다니? 이게 무슨 말이지? 내가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 모두 의미가 없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나는 왜 그런것으로 지혜를 알게 되었다고 믿은 것일까?"

그 혼란과 궁금함을 뒤로 하고 나는 일상을 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깨달았다. 오온 즉 색수상인식의 다섯가지 요소는 객관적으로 검증된 것이 아니라 석가모니의 주장일 뿐이다. 석가모니는 2500년 전 사람이고 그 때의 지식 수준에서 대중을 상대로 지혜를 설명해야 했다. 그가 살던 시대의 인도 세계관에 이미 통용되어 있었던 오온이라는 개념을 활용한 것이다.

 

반야심경은 공을 궁극의 지혜로 본다. 반야심경의 관점에서는 사성제와 오온의 연기는 영원불멸한 궁극의 지혜인 공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일 뿐 그것 자체가 불멸의 진리라고 보지 않는다. 만약 어떤 과학자가 인간은 색수상인식의 연기로 단정할수만은 없고 탄소와 산소 수소 질소의 결합과 순환, 신경 세포의 전기 작용으로 일어난 것이고 그러한 물질과 전기의 순환을 제행무상과 연기를 설명하는 방편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고 치자. 그는 "내가 흘렸던 땀방울에 들어있던 수분이 현재 너의 피가 되었을 수 있어. 그러므로 너와 나는 연결이 되어 있고 공하다고 볼 수 있어. 이 말이 틀린 것 같지? 맞아. 그건 틀렸어. 이건 내가 즉석으로 떠올린 조악한 예시이고 방편일 뿐이니까. 마찬가지로 오온의 연기도 이런 식의 설명이고 방편일 수 있어 비록 무척 세련되고 오랜 세월을 거쳐 검증된 방편이라는 질적인 차이가 있긴 하지. 유교나 도교쪽 사람이라면 오온보다는 음양오행과 8괘로 설명할 수도 있었을거고 중세 유럽인이라면 4원소와 4체액으로 설명하려고 들었을거야"라고 설명한다. 논리적으로 그 주장을 반박하면서 그의 예시는 틀렸고 오온만 맞다는 걸 증명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이 부정될 수는 없고 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즉 반야심경의 관점에서는 공을 사성제의 발전, 사성제의 부산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핵심이고 공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성제를 방편으로 활용한 것이라는 관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사성제는 여전히 불교의 핵심이고 그것 없이 공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강을 건넜다고 배를 불태워야 할 필요는 없다. 아직 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들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성제가 없다는 반야심경의 가르침과 별도로 사성제는 여전히 불교의 핵심 지위를 잃지 않는다. 그리고 사성제는 그 자체로도 개인의 해탈을 완성할 수 있는 고유의 가치를 가지므로 반야심경이나 공사상과 상관없이 독립적인 가치를 가진다. 이것이 사성제가 없다는 반야심경의 관점을 받아들인 내 입장이다.

Posted by 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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