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이론의 중심 골격은 사성제이며, 사성제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적거나 불분명한 불교 이론은 방편으로 이해될 수 있다. 사성제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고 나서 최초로 설파한 불교의 네 가지 핵심 진리를 말하는데, 사성제와 관련된 핵심 개념들을 깊이 이해하고 통찰하게 되면 불교 이론 체계 전반에 대한 탄탄한 기반을 쌓을 수 있다.
고성제는 인간의 삶은 고통이란 것이다. 이는 실제로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많고 직관적이기 때문에 고통의 유형에 대해 특별히 깨달을만한 건 없다. 다만 집착의 대상이 되는 5온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는 집성제와 멸성제를 이해하기 위한 사전 지식이 되기도 한다.
집성제란 고통의 원인을 탐구하는 것이다. 여기에 12연기, 카르마,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 등이 제시된다.
멸성제란 깨달음을 통한 고통의 소멸, 열반이다. 그 깨달음의 핵심이 삼법인이다.
삼법인이란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이다. 삼법인에 열반적정을 빼고 일체개고를 넣는 관점이나 일체개고와 열반적정을 모두 포함시켜 사법인이라고 부르는 관점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를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체개고는 고성제의 내용이고 나머지 3가지는 멸성제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일체개고는 굳이 깨달음을 얻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직관적인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깨달음의 내용상 통일성에서도 핵심에서 벗어나는 개념이기 때문에 굳이 삼법인 수준의 깨달음으로 지정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도성제란 멸성제로 가기 위한 수행이다. 석가모니는 팔정도와 그것을 통해 달성한 중도를 그것으로 보았다.
불교의 주요 가르침은 대체로 사성제와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예를 들어 공사상은 집성제와 멸성제, 자비와 보시는 멸성제와 도성제, 중도와 팔정도는 도성제와 관계가 깊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다양한 분파가 있고 그 포용성 때문에 어떤 의견도 받아들여서 융합하는 면이 있다. 그러다보니 때때로 사성제의 내용과 맞물리지 않은 이론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타력신앙 사상과 가피이다.
타력신앙은 자신의 힘으로 성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본원력이 있는 부처의 힘에 의탁하여 성불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타력구제가 더욱 변형되면 가피에 이르게 된다. 가피란 부처의 본원력과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여 현세의 실질적인 복을 비는 기복이다. 윤회의 고리를 끊고 진정한 자유에 도달하려면, 세속적인 욕망에 매달리기보다는 모든 것이 덧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가피는 헛된 욕심에 집착하게 만들어 참된 깨달음의 길에서 멀어지게 한다.
이런 문제를 초래한 가장 근원적인 원인은 본원불 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본원불 사상이 무조건 부정적인 효과만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예를 들어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본원불이 부여한 불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여래장 사상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팔정도와 중도에 따른 수행을 하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본원불은 타력신앙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해탈과 성불을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라 본원불이 부여해서 비로소 달성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수행이 아니라 본원불에게 기원을 함으로써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수행보다는 기복을 바라게 된다. 내가 수행을 해서 스스로 부처가 될 생각보다는 부처에게 현세적인 가치를 요구하는 기도를 한다. 심지어 나의 해탈까지도 부처에게 요구하기에 이른다. 이는 사성제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태로 불교에 대한 정확한 관점이 성립되지 않은 사람이 불교의 핵심을 이해하는데 큰 혼란을 초래한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에서 윤회 같은 인도의 세계관을 제거하면 스토아철학과 유사한 점을 보인다. 예를 들어 스토아의 덕과 절제는 불교의 팔정도, 중도사상과 닮아있고 이성과 논리를 중시하는 것은 팔정도 중 정견과 결을 같이 한다. 또한 불교의 열반은 스토아의 아파테이아와 유사하다. 초기 불교는 이렇듯 철학적인 측면이 강했고 하나의 철학 학파로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철학이 아닌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띈 종파들로 분화하였다. 이는 본원불 사상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종교가 되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위로를 줄 수 있었지만 반대로 핵심을 이해하는 데는 방해가 되었다는 폐해도 있었다. 아마도 옛사람들 역시 이런 문제점들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문자 자체에 집착하지 말라는 지침을 제시했을 것이다.
불교는 기나긴 역사를 거치면서 각각 시대에 맞는 방편들을 추가해왔고 그중에는 현대적 관점에서는 어울리지 않고 깨달음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현대는 과거에 비해 절대적 빈곤이 현저히 줄었고 사람들의 평균적인 교육 수준과 지식의 전파 수단이 크게 향상된 시대다. 그런 물적인 조건의 개선 이외에 지식에도 큰 발전이 있었다. 석가모니의 시대에는 없었던 0과 음수의 개념, 극한과 미적분, 동영상의 프레임과 역재생,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모두 가진 빛, 가상현실, 뇌과학 등등 무아와 무상, 공 사상을 이해하는 것을 수월하게 해주는 다양한 예시들도 생겨났다. 불교의 핵심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여건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불교의 교리를 대중에게 설파하는데 방편이 필요했지만 현대는 대중들도 정법에 대한 이해가 수월해졌다. 정법이 대중들의 손 닿을 곳에 있는데도 예전부터 전해져 온다는 이유만으로 굳이 방편을 따를 필요는 없다. 시대의 변화를 간과하고 기존의 모든 방편들에 집착을 하는 것은 제행무상을 잊은 태도다. 진리를 추구하고 진정한 해탈을 원한다면 부대적이고 지엽적인 이론들 하나하나에 집착하기보다는 사성제를 기틀로 그것들을 탐구하고 수없이 다양한 방편들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비판적으로 통찰해야 한다. 그것이 사성제에 합당하면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현재 시점에서 그것이 굳이 필요한 것인지를 검토해 보고 결정하면 족하다.
이렇게 사성제만을 강조하는 자세는 얼핏 편협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불교의 궁극적 가치는 결국 해탈이고 해탈을 설명하는 핵심 이론이 사성제다. 이를 감안하면 해탈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방해하는 요소는 제거를 하는 것이 낫다. 그런 결정은 목적을 잊고 핵심과 괴리된 방편을 이해하느라 방황하는 어리석음을 피하게 한다. 타력과 방편의 산물인 염불과 진언보다는 차라리 자력과 정법인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을 외워보면 어떨까?
물론 종파에 따라서 이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이런 의견에 모든 종파가 따를 필요도 없다. 불교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포용적인 종교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나의 이런 주장이 가능한 면도 있다.
글을 이해하는데 해설이 필요한 불교 용어들
1. 사성제 (四聖諦): 불교의 핵심 교리로, 고통의 존재, 고통의 원인, 고통의 소멸,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네 가지 진리를 말합니다.
고성제 (苦聖諦): 인생은 고통이라는 진리
집성제 (集聖諦): 고통의 원인은 집착이라는 진리
멸성제 (滅聖諦): 고통은 소멸될 수 있다는 진리
도성제 (道聖諦):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길은 팔정도라는 진리
2. 오온 (五蘊): 인간의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로, 색(色, 물질), 수(受, 감각), 상(想, 표상), 행(行, 의지), 식(識, 인식)을 말합니다.
3. 십이연기 (十二緣起): 고통의 발생 원인과 과정을 12가지 단계로 설명하는 불교의 연기설입니다. 무명(無明)에서 시작하여 노사(老死)로 끝나는 12단계의 순환 과정을 통해 고통이 발생하고 소멸되는 원리를 설명합니다.
4. 카르마 (Karma): 업(業)이라고도 하며, 과거의 행위가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과응보의 법칙을 말합니다.
5. 번뇌 (煩惱): 마음을 어지럽히고 괴롭히는 정신적인 불안정 상태를 말합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 등이 대표적인 번뇌입니다.
6. 삼법인 (三法印): 모든 존재에 적용되는 세 가지 진리로,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은 변한다), 제법무아(諸法無我, 나라는 것은 없다), 열반적정(涅槃寂靜, 열반은 고요하다)을 말합니다.
7. 일체개고 (一切皆苦): 모든 것은 고통이라는 뜻으로, 고성제의 핵심 내용입니다.
8. 팔정도 (八正道):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는 여덟 가지 수행 방법입니다.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9. 중도 (中道): 극단적인 양 극단을 벗어나 바른 길을 가는 것을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쾌락과 고행의 양 극단을 벗어나 팔정도를 실천하는 것을 중도라고 합니다.
10. 타력신앙 (他力信仰):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절대적인 존재의 힘에 의존하여 구원을 얻으려는 신앙 형태입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나 보살의 힘에 의지하여 깨달음을 얻으려는 신앙을 말합니다.
11. 가피 (加被): 부처나 보살의 초자연적인 힘으로 중생에게 복을 내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12. 본원불 (本願佛):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스스로 깨달음을 포기하고 중생계에 머무르며 중생을 돕는 부처를 말합니다. 아미타불이 대표적인 본원불입니다.
13. 여래장 사상 (如來藏思想): 모든 중생에게는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인 불성(佛性)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상입니다.
14. 방편 (方便):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말합니다.
15. 정법 (正法): 부처가 설파한 진리 그 자체를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