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의 성격
서울의 봄: 쿠데타
전두환 회고록: 대통령 시해 사건 공모 피의자 연행 및 그에 반발한 군사반란에 대한 대전복 작전
정승화 연행의 목적
서울의 봄: 전두환이 동해안 부대로 좌천되는걸 피하기 위함.
전두환 회고록: 대통령 시해 이후 정승화의 의심스러운 행적을 조사하고 진실 규명. 동해안 부대 좌천은 나중에 알게 됨.
정승화에 대한 추가 조사 명분
서울의 봄:
원래 무혐의 수사종결이었으나 이후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은 정황을 발견했다는 트집을 잡음.
전두환 회고록:
정승화는 대통령 시해 현장에서 50미터 떨어진 곳에서 있으면서 총성을 듣고 아무 반응 안함.
김재규가 총을 들고 피를 잔뜩 묻히고 돌아다녀도 아무 의심을 안하고 김재규가 하자고 하는 걸 다 해 줌.
아무 근거 없이 죽은 차지철을 시해범으로 의심했다고 진술함.
정승화는 계엄사령관이 되기 전에 권한을 넘는 몇 가지 군사 행동을 함. 수경사 병력으로 청와대 포위하도록 지시하고 경호차장에게 연락하여 경호실 병력 출동 금지 지시함.
(12.12 이후 작성된 정승화 조서의 내용에 따르면 김재규가 범인인 것이 밝혀지면 경호실이 김재규를 체포할 것이기 때문)
계엄령 전에 김재규의 요청에 따라 국방장관 승인 없이 20사단 9공수여단 출동지시 및 수경사 출동준비 지시한 월권행위. 이에 대해 김재규는 조사 당시 '김계원과 달리 정총장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진술을 함.
수사결과 발표시 정총장은 범행과 관련 없다고 말한 건 정승화의 경계심과 증거인멸을 피하면서 내사를 계속하기 위한 목적임.
정승화는 계엄사령관으로 있으면서 김재규의 3단계 혁명계획에 부응하는 듯한 발언을 함.
박정희 비판 및 3김 불가론(쿠데타를 해서라도 3김의 집권을 막겠다) 실제로 김종필 출마 포기.
정승화는 수사 과정에서 여러 차례 조서에 서명 날인을 거부하거나 조서의 내용을 삭제 및 수정하려 했고, 군검사에게 조서 내용을 낭독하게 하는 등 계엄사령관의 지위를 남용함.
계엄사령부는 10.26 당시 경호실 무력화와 수경사의 청와대 포위를 허용한 이재전 경호차장에 대해 기소유예처분을 함. 이는 정승화의 자기책임 논란화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판단.
김재규 측 변호사의 '재판관들은 정승화 계엄사령관의 뜻을 알고 이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가?' 라는 발언.
장태완, 정병주 등 장군들을 잔치에 초대한 이유
서울의 봄:
전두환이 동해로 부임하기 전에 작별인사 구실로 연희동에 정승화 라인의 장군들을 묶어둠.
전두환 회고록:
12.12는 장군 진급 최종 결정일. 조홍 대령의 장군 진급 자축연. 조 대령이 자기 진급을 밀어준 선배 장군 4명 신촌에 초대. 김재규-정승화 라인의 장군들을 묶어둘 계획이었으면 헌병이나 수사관들에게 지시해서 그 자리에서 연금해버렸을텐데 그러지 않았음. 대통령 재가가 계획대로 신속히 나왔으면 자기도 그 자리에 참석하여 그 장군들에게 정총장 연행의 자초지종을 설명할 계획이었음.
30경비단에 모인 장성들
서울의 봄:
하나회 멤버들과 하나회를 후견하는 선배 장성들이 쿠데타를 지원하기 위해 모임.
선배 장성들은 권력에 눈 먼 탐욕스런 똥별들.
전두환 회고록:
김재규-정승화 라인 장군들 포함 군 고위 장성들과 수도권 일부 지휘관들에게 정총장 연행의 불가피성 설명, 협조를 구하기 위해 모이게 함. 장군 진급 최종 결정일이라 연회같은 성격이고 모인 장군들도 잡담이나 바둑 등으로 저녁 시간 보냄.
선배 장성들은 정승화와 김재규의 공모여부가 의심되는데도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는다고 '너도 한패냐'는 식으로 전두환을 질책. 굳이 쿠데타에 가담하지 않아도 4성 장군이나 그 이상으로 출세하는데 문제가 없는 탄탄한 군내 위상.
정승화 체포
서울의 봄:
정승화가 연행에 대통령 허가가 있었는지 물으니 체포조가 부관들을 총으로 쏴버리고 정승화를 강제로 끌고 감.
전두환 회고록:
합동수사본부의 체포조 중에 영관급 장교는 5명이고 그 중 2명은 보안사 소속 2명은 육본(정승화측)소속 1명은 수경사(장태완측) 소속인데 정총장을 만나러 그 중 2명이 비무장 상태로 사령관실로 들어갔고 대통령 승인에 대해 물으니 수사관들이 부관실에서 총격전을 벌임. 누가 먼저 쐈는지에 대한 점, 상대가 총격을 당한 내용은 누락. 비무장 상태인 체포조 우대령(정승화 직속부하)이 총격을 받고 쓰러지자(이후 반신불수됨) 같이 있던 허대령(보안사 소속)이 "총장님 일을 어렵게 만드시지 말라"고 말하니 순순히 자기 발로 연행에 응함.
대통령 재가에 대해
서울의 봄:
정승화 연행에 필수 절차인데 대통령이 안들어주자 장군들이 집단으로 대통령을 찾아가서 위협적 행동을 함.
전두환 회고록:
합수부는 수사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았으므로 대통령 재가는 필수가 아닌 것으로 판단했고 이전에도 관행적으로 장성에 대한 체포 등 조치는 사후보고를 했음. 이후 장군들이 단체로 대통령을 만난건 전두환 본인보다 지위가 높은 선배 장군들이 그런 사실을 대통령에게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위한 목적임. 이 과정에서 무례나 위협은 없었음.
장태완의 병력 이동
서울의 봄:
야, 이 반란군 놈의 새끼야! 니들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가 지금 전차를 몰고 가서 니놈들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
전두환 회고록:
정승화 총장이 괴한들에게 납치되었다는 소식에 진돗개 하나 발령(간첩에 의한 계엄사령관 납치로 오인)
육본 보안부대장이 자초지종을 윤성민 참모차장에게 설명하고 장태완은 윤차장으로부터 설명을 들음.
1공수여단은 특전사령부 예하부대였지만 10.26 이후 수경사의 작전지휘를 받음.
1공수여단장 박희도는 30경비단 초청모임에 참가중. 진돗개하나 발령후 부여단장은 박희도의 지시를 기다림.
그런데 정병주 특전사령관이 1공수 부여단장에게 여단 대원 전부를 무장해제하고 차랑을 9공수여단에게 이관하라는 지시를 급한 목소리로 5번이나 요구함.
그러나 덩사 지휘권이 있는 수경사로부터는 아무런 지시도 없고 통화도 안됨.
부여단장은 박희도 여단장의 전화를 받고나서 여단장이 30단에 있는 걸 알게 됨.
진돗개 하나 상황에서 무장해제를 하라는 지시는 이해할 수가 없어서 부여단장은 박희도에게 전화로 승인을 받고 직접 육본에 가서 작전지시를 받기로 함.
작전참모, 헌병대장을 대동하고 육본으로 가는 길에 제1한강교 검문 통과. 검문소 헌병은 이를 상부 보고.
하소곤 작전참모부장이 이를 1공수여단의 서울 출동으로 오인하고 박희도 여단장 지휘로 1공수여단이 서울로 출동중이라고 상황보고함.
국방장관은 그 소식을 듣고 미8군 영내로 피신.
육본 지휘부는 수경사로 이동.(영화에서는 이 부분을 2공수가 행주대교를 건넌 시점으로 보여줌)
정병주는 장태완에게 1공수 출동은 확인해보니 사실이 아니라고 알림.
육본 지휘부는 장태완에게 1공수여단의 출동에 대비해서 육본 지휘부를 수경사로 이동하겠다고 했는데 장태완은 그것이 허위인 줄 알면서 올바른 보고하지 않고 육본 지휘부가 수경사로 오게 함.
(영화에서는 육본 지휘부가 육본을 지키지 않고 수경사로 이동하는 것에 대해 장태완이 분통을 터뜨림)
육본 지휘부가 수경사에 온 것을 기회로 장태완은 육본 지휘부를 독려해서 여러 부대들의 병력을 출동시키게 함.
장태완 행동의 정당성 여부
서울의 봄: 전두환의 쿠데타 진압을 위한 정의로운 군사행동
전두환 회고록:
노재현 국방장관의 출동 금지 명령이 있었음에도 무단으로 군을 움직임. 그 명분이 김재규-정승화 라인의 은혜를 입은 장태완의 상관 구하기라는 사적인 동기에 불과. 심지에 최대통령 납치까지 계획(진돗개하나 때문에 청와대 경호가 삼엄해져서 시도 못함)한 장태완의 쿠데타.
반란군 출동의 정당성 여부
서울의 봄: 사리사욕을 위해 안보 위험은 신경쓰지 않고 전방부대 동원. 권력에 눈이 먼 하나회의 작당.
전두환 회고록:
장태완등 정승화-김재규 군맥의 반란을 제압하기 위한 보안사의 대전복작전. 국방부차관(장관 잠적)에게 보고하고 대통령 경호실에 '대전복 작전 출동 요청을 각하께 보고해달라' 통보. 대통령을 직접 접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 군부대 출동은 하나회의 지휘권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보안사의 각 부대에 대한 출동 요청(명령 아님)에 의한 것. 각 부대 지휘관은 양심에 따라 출동.
장태완 체포
서울의 봄: 장태완이 30경비단을 포격하라고 명령하다가 국방장관에게 직위해제 당하고 현장에서 체포됨.
전두환 회고록:
이성을 잃은 장태완의 폭주에 대부분의 지휘관들이 지시를 따르지 않게 된 상황에서 수경사 참모들은 장태완에 대한 조치를 신윤희 수경사 헌병 부단장(하나회 아님)에게 종용. 조홍 수경사 헌병단장에게 전화로 체포 지시를 받고 부단장은 수경사령관실에서 장태완 사령관 체포함. 체포 과정에서 총격전이 일어나서 하소곤 장군이 총상 입음.
김오랑 중령
서울의 봄: 반란군에 맞서 총격전 하다가 장렬히 전사. 정병주 장군도 총격으로 다침.
전두환 회고록:
김오랑 소령(당시 계급)이 발사한 총에 체포조 여러 명이 부상당함. 김오랑 중령 전사를 누락함.
3권에서 김오랑 중령의 전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기술했던 것 같은데 1권에 그 내용이 나오진 않음.
현재로는 3권을 다시 봐야 확인할 수 있는데 절판이고 도서관에서도 제거되어서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음.
12.12의 의미
서울의 봄:
중앙정보부장과 경호실장 부재인 상황에서 유일한 정보기관인 보안사의 수장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된 전두환이 분수를 모르고 권한을 남용. 정승화는 이를 견제하기 위해 전두환을 한직으로 좌천시키려고 함. 그랬더니 전두환이 하나회를 동원하여 쿠데타를 일으킴. 정의로운 소수의 군인들이 저항했으나 전두환 휘하의 보안사의 정보력과 하나회의 단결력 앞에서는 중과부적. 결국 악한 세력에게 국가 권력을 찬탈당함.
전두환 회고록:
정승화는 여러가지 정황에서 김재규와 공모한 혐의가 있었으나 계엄사령관의 막강한 지위 때문에 원활한 조사가 불가능함. 그래서 연행해서 조사할 필요가 있음. 보안상 민감한 문제라 대통령 재가와 동시에 연행을 하려고 했는데 대통령이 장관 부서가 필요하다고 장관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함. 그런데 장관이 잠적을 해버려서 장관 부서를 받지 못함. 대통령은 장관 부서를 받아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서 이후 사후 재가를 받게 됨. 체포조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정승화를 강제로 연행해버림. 정승화가 연행되자 정승화 라인 장군들이 국방장관의 병력 출동 금지 명령을 어기고 군대를 출동시킴. 전두환은 이를 쿠데타로 간주하고 보안사의 기능인 대전복작전을 실행하여 반란군을 제압함. 이 과정에서 하나회의 역할은 미미했고 다수의 젊은 장교들의 정의로운 판단으로 올바른 결과가 나옴. 사필귀정.
그러나 이후 김영삼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 자금 문제가 터지자 국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역사 바로 세우기 정치 재판을 벌였고 12.12를 쿠데타로 왜곡함.
나의 감상
서울의 봄: 없었던 일을 많이 만들어 넣었다.
전두환 회고록: 자기에게 유리한 말만 하기 위해서 있었던 일을 안 썼다.
정승화, 장태완, 신현확 회고록도 같이 봐야 더 입체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최규하가 회고록을 남기지 않은 것은 유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