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할 때 사용하는 이어폰이 있다. 전자책이나 강의 같은 사람 목소리를 들을 때는 좋은 음질의 이어폰이 필요 없다. 최대한 가격이 싸되 방수가 확실한 제품이 좋다. 지금 사용중인 이어폰은 지마켓에서 20,000원 정도 주고 샀던 amoi f9라는 모델인데 ipx7이라는 스펙을 자랑하는 제품이다. 현재 검색해보면 전혀 다른 물건이 같은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처음 구매했을 때는 며칠만에 기기가 사망을 해서 환불을 받았고 이후 다시 구입했는데 또 며칠만에 오른쪽(하필 메인유닛)이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격렬한 반응을 보이면서 사망해서 사실상 방수 기능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살아남은 왼쪽 유닛은 머리 감을 때는 쓰지 않고, 먼저 머리를 감은 후 머리 물기를 수건으로 대충 닦고 나서 몸을 씻을 때 사용한다. 2년 쯤 쓰다 보니 유닛의 배터리 수명이 점점 내려와서 교체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현재 알리익스프레스에서 가장 싸게 팔리는 tws 방수 이어폰은 Y50이라는 모델이다. 케이스로 충전하지 않는 모델 중에서 더 싼 것도 있지만 그런 물건들은 충전단자에 물이 닿으면 고장이 나는 것이 뻔하기도 하고 매번 충전하는 게 귀찮기도 해서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
4.66달러에 배송비 포함인데 주문하고 보름 쯤 지나서 물건이 도착했다. 조그만 뽁뽁이 비닐봉투로 포장이 되어 있었는데 봉투를 뜯어보니 별도의 포장 없이 본체와 10센치 남짓 될법한 충전용 마이크로5핀 케이블만 들어 있다. 이어팁은 기본 장착된 것 뿐이다. 크래들 배터리 용량이 3000mah짜리라고 해서 2000mah짜리 제품보다 1달러나 더 줬는데 실제로 접해보니 3000mah가 들어갈만한 무게도 아니고 크기도 아니다. 그냥 2000mah짜리로 살걸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용중인 amoi f9는 스펙상으로는 3500mah라고 표기가 되어 있고 크래들도 실제로 크고 무겁다. 크래들 안에는 18650 리튬 배터리가 들어있는데 중국산 3500mah배터리이므로 실제 성능은 2500mah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amoi의 3500mah에 비해 y50의 3000mah는 너무 작고 가볍다. 리튬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기술이 아직 없었기 때문에 3000mah라는 수치를 믿을 수 없다. 봉투 안을 샅샅이 훑어보니 우표 2장 정도 면적의 설명서도 있다. 그 작은 종이 조각에 깨알 같은 활자로 제법 많은 내용들이 적혀있다.
음질은 비행기 탈 때 주는 이어폰 수준으로 형편 없었다. 어차피 사람 목소리만 제대로 들리면 되기 때문에 괜찮다. 착용감도 여태껏 사용해본 이어폰 중에서 확실하게 제일 불편하다.
초창기 tws 이어폰처럼 메인 서브가 따로 있지 않고 각각 핸드폰과 연결되는 요즘 방식인 점은 마음에 들었다. 목욕할 때 사람 목소리만 들으면 되는 용도이기 때문에 스테레오로 들을 필요는 없다. 한 쪽 씩만 듣는다면 이어폰의 배터리 수명은 2배로 늘어날 것이다. 조그만 설명서에 적힌 사용법과 실제 작동은 많이 달랐다. 설명서에 의하면 오른쪽을 두번 터치하면 다음곡으로 넘어가고 왼쪽을 터치하면 전곡으로 돌아가는데 실제 제품을 터치하면 직전에 통화했던 번호로 전화가 걸린다. 세번 연속 터치하면 볼륨을 내리거나 올릴 수 있다는데 실제로 터치를 3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설명서에는 빠져있는 길게 터치하기 기능이다. 길게 터치하면 다음곡으로 넘어간다. 보통 이런 기능은 왼쪽을 길게 터치하면 전곡으로 돌아가기 마련인데 어느 쪽을 길게 터치하든 다음 곡으로 넘어간다. 물건을 잘못 만든 셈이다. 그러나 이 물건을 스테레오 이어폰이 아닌 모노 이어폰 2개로 사용할 의도인 내 입장에서는 제작사의 이런 실수가 오히려 좋다.
자칭 ipx7등급이기 때문에 머리를 감을 때 써도 괜찮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두 가지 문제를 발견했다. 첫째는 이어폰이 버튼이 아니라 터치 방식이라는 점이다. 한번 터치는 소리를 플레이하거나 멈는 기능이다. 머리 감을 때 닿는 물방울로도 터치가 되어서 종종 소리가 멈추곤 한다 두번째는 더 심각한 문제인데, 노즐에 이물질 유입 필터나 그릴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노즐로 물이 유입되면 아무런 방해 없이 기판과 배터리를 적시게 되는 구조다. 예전에 사망한 f9 오른쪽 유닛도 그릴이 붙어있지 않았다.(왼쪽은 그릴이 있는데 아마도 불량인 듯) 스스로 ipx7등급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제품의 방수 기능은 0이다. 전처럼 머리를 먼저 감고 나중에 이어폰을 사용하는 습관을 이어가면 된다.
일반적으로는 6천원 밖에 안되는 돈조차도 아깝게 느껴질 수도 있는 물건이지만 내 입장에선 용도가 철저하게 정해진 물건이라 가격 대비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