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체 부실

기록 2018. 11. 8. 00:55

예전부터 나는 다른 건 몰라도 하체는 항상 튼튼하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다음날 헬스장을 찾아갔다. 당시 관장님은 15회 5세트를 강조했고 그 때 배웠던 습관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당시 관장님은 5세트째 마지막 죽기 살기로 들어올리는 2, 3회에 진정한 운동효과가 발휘된다고 가르쳤다. 예전에 머신 운동만 했던  이유는 프리 웨이트로는 그 정도 힘을 짜내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당시 봉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스미스머신 양쪽에 60킬로씩 끼우고 15회 5세트 벤치프레스를 했던게 최종 기억이고 양쪽에 각 70킬로씩 끼우고 5회 정도 들었던 게 가장 무겁게 들었던 기억이다. 10번쯤은 들 수 있었는데 어깨와 팔꿈치 관절이 꽉 눌리는 느낌이 기분 나빠서 그 정도에서 그쳤다. 1RM개념이 없던 시절이고 관장님은 한두번 무겁게 드는건 체력이 아니라 뚝심일 뿐이라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더 무겁게 도전해서 1RM 기록을 세워보지 못했던 건 지금 생각해보면 좀 아쉽다.


스미스머신 벤치프레스로 최대 들 수 있는 무게를 140킬로 5회에서 멈췄던 또 다른 이유는 이렇다.

당시 운동 무게가 체스트 프레스머신 마지막 칸에 도달했기 때문에 더 이상 증량을 할 수 없어 근력이 정체 상태였다. 어느 날 관장님을 형님이라 부르는 씨름 선수 체형의 거대한 아저씨가 헬스장을 1회성으로 방문했는데 스미스머신 양쪽에 65킬로씩 원판을 끼우고 5회 들었다. 거대 아저씨가 돌아간 이후 나도 그 무게가 가능할까 싶어서 꽂혀있는 무게 그대로 시도했는데 깔려 버렸다. 그 이후부터 더 이상 발전 가능성이 없는 체스트프레스 머신과 작별하고 스미스머신으로 가슴 운동을 하게 되었는데 근력 성장 정체는 곧 풀렸고 프리웨이트는 아니지만 120킬로를 15회 5세트 들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양쪽에 70킬로를 꽂고 5회를 들어올렸던 그 날은 목표로 삼았던 거대 아저씨의 기록을 동일횟수에서 10킬로 초과한 것이 되었다. 목표를 달성했기에 더 이상 욕심이 들지 않게 되었고 증량은 거기서 끝났다.


벤치프레스에 대한 '왕년, 소싯적'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하체가 튼튼하다는 자신감이 생긴 계기는 이렇다.

당시 관장님은 상체 머신 사용법만 가르쳐줬다. 운동을 오랜만에 하는거라 상체만도 힘들텐데 하체까지 하면 다리가 풀려서 며칠동안 걷기가 힘들거라는 이유였다. 그냥저냥 상체 머신들에 적응이 되어가고 있지만 관장님은 결국 하체 운동을 가르쳐 준 적이 없다. 아마도 가르쳐야 한다는 걸 잊어버린 것 같다.

어쨌든 하루는 호기심에 하체 머신들을 건드려봤다. 아무런 하체 운동 경험이 없는데 모든 머신들의 추를 마지막칸 까지 놓고 10회 정도 들 수가 있었다. 심지어 스쿼트머신은 무게추가 200킬로인데도 기구를 어깨에 지고 일어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다리나 허리가 아프다기보다 쿠션처리된 패드에 짓눌린 어깨가 아팠다. 힘으로는 10회 정도도 가능할것 같긴 한데 눌린 어깨가 아파서 5회 정도만 했던 걸로 기억난다. 머신이긴 하지만 핵스쿼트나 레그프레스처럼 각도가 기울어있지 않고 지렛대가 작용하지도 않고 200킬로를  다리를 펴는 만큼 온전히 수직으로 들어올린다는 점에서 스미스머신과 비슷한 기구였다.

비슷한 물건으로는 기구 이름은 생각 안나는데 어깨에 무게를 짊어지고 뒷꿈치를 들었다 놨다 하는 운동기구도 있었는데 역시 200킬로그램을 들어올리는게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 이후 하체는 따로 운동 안해도 이미 튼튼하다는 자신감을 갖고 더 이상 하체 운동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게 착각이었다는 점은 요즘에 와서 깨닫는다.


나는 달리기에 극히 소질이 없다. 비만 체형을 탓하곤 했지만 하체가 정말 튼튼했다면 점프도 높게 할 수 있을테고 달리기도 빠를텐데 그렇지 못했다. 이것 외에 최근에 상태가 더 나빠졌다고 느끼게 된 계기는 이렇다.

예전에는 2시간 쯤 걸을 때 평균 시속 6킬로미터가 경쾌하고 자연스러운 페이스였는데 요즘은 2시간 동안 그 속도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다. 요즘 다시 예전 그 스쿼트머신을 다시 사용해 볼 기회가 생긴다면 아마도 예전처럼 쉽게 200킬로를 들기는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요즘 프리웨이트 벤치프레스 가능 횟수는 50킬로 75회 60킬로 63회 70킬로 35회 90킬로 15회 100킬로 7회다. 예전보다는 많이 약해졌지만 그래도 객관적으로 약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상체 운동만  하면서 데드리프트와 스쿼트를 등한시했다. 3대 운동이란 개념을 알게 된 게 최근이다.

3대 운동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 스쿼트와 데드리프트를 시도해봤는데 그리 애착이 느껴지지 않는 운동들이었다.


스쿼트는 빈봉으로 시도해도 봉이 어깨를 누르는게 아파서 하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데드리프트는 처음에 루마니안 방식으로 15회 5세트를 시도했는데 전완근이 먼저 지쳐버려서 그립을 유지하기가 어려웠고 운동다운 운동을 할 수 없었다. 그런식으로 70킬로 정도로 운동하다가 어느날 허리에 통증이 살짝 느껴졌는데 다치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 포기해버렸다. 그리고 배가 나온 체형 때문에 허리를 숙이면 뱃살이 밀려올라가는게 썩 좋은 느낌은 아니라서 운동 동작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예전처럼 벤치프레스만 하다가 스모데드리프트 자세를 알게 되었는데 뱃살에 의한 스트레스를 다소 피할 수 있게 되어서 그나마 운동할 의욕을 되찾을 수 있었다. 8*5방식으로 매트 깔고 땅데드 방식으로 다시 운동을 시작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땅데드가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겨우 8*5인데도 유산소 운동이라도 한 듯 숨이 넘어갈듯 차고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간만에 시도해본 데드리프트 1RM은 겨우 120킬로 정도다. 벤치프레스 무게와 비교하면 상당히 저조한데, 130킬로를 들어보려 하니 다리가 떨리면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주변 원판을 싹쓸이해서 바벨에 끼웠다. 크로스 그립으로 무릎 정도 높이에서 랙풀을 깔짝 들어보니 170킬로까지 들 수 있었고 원판이 더 있었다면 조금은 더 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170킬로에서도 그립이 풀리지 않았으니 130킬로를 들지 못했던 건 악력이나 전완근 문제가 아니라 단지 하체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데드리프트는 필요성은 느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아직 제대로 연습해보지 못했던 종목인데 늦게나마 스모 데드리프트를 루틴에 포함시켜 하체를 단련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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