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이 태어난 계절은 모르고 나이도 확실하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오늘 기록을 남기면 죽은 날은 확실히 기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녀석은 문 앞에 누워 있었다. 그것이 주인을 위한 그 놈의 마지막 배려인지는 알 수 없으나 덕분에 녀석을 일찍 발견할 수 있었고, 아직 따뜻하고 말랑한 상태에서 옮길 수 있었다. 혀를 길게 늘어뜨리지만 않았다면 잠들어 있는 걸로 보였을 것 같다.


어제까지만 해도 활발하게 뛰어다니던 놈이라서 늙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할머니를 떠올리면 녀석의 나이와 태어난 계절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항상 젊은 놈이라 생각했었는데 따져보니 강아지 때 할머니가 주는 밥을 먹고 큰 놈이다. 그러니 봄에 태어났을 것 같다고 짐작해 본다. 개가 만 11살까지 살았으니  요절이라 할 수도 없고,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개는 길어야 15년 사는데 100세 시대에 반려동물로 부르기는 무리가 있다. 논란은 있으나 기존에 사용했던 애완동물이란 표현이 반려동물보다 본질에 충실한 어휘라는 생각이 든다.  녀석은 누구보다도 인본주의적인 놈이었다. 모든 사람을 사랑했다. 특히 주인보다 손님을 더 좋아했다. 녀석의 직업은 경비견이었으나 영혼은 애완견이었다.


개를 많이 기르던 시절에는 개의 죽음은 일상적인 일이었는데 기르는 숫자가 줄면서 상당히 오랜만에 보게 되니 예전과는 다른 감회가 든다.

Posted by 누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