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는 앰프가 오래되었을 때 말썽을 부리는 대표적인 부품이다. 비싸지 않고 다루기 까다롭지 않은 크기라서 어렵지 않게 교체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앰프는 사용 기간이 비교적 긴 물건이기 때문에 원래 들어있던 것과 똑같은 릴레이를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생길 수 있다.
앰프에 들어있는 릴레이는 전압, 전류가 맞고 다리가 기판 구멍에 들어간다면 호환된다.
굳이 힘들게 똑같은 회사의 제품을 찾을 필요는 없다.
기판 구멍보다 다리가 많다면 남는 다리는 잘라내거나 구부려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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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관 앰프랑 매칭시킨 대형 스피커에 TR이나 IC앰프를 연결해보고 싶어졌다.
실용오디오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앰프 기술은 70년대에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에 제대로 설계된 TR이나 IC앰프는 음질상으로 동일하다고 한다. 오디오애호가들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면 200달러짜리나 4만달러 짜리나 구별을 전혀 하지 못한다고 한다는 말을 믿고 싼 앰프를 하나 구입하고자 했다.
요즘 잘나간다는 TPA3116 계열의 앰프가 관심이 갔으나 옥션 중고물품을 보니 3만원짜리 인켈에서 90년대에 생산한 AX-858앰프가 눈에 들어왔다. AX-858V에 비해서 물량이 다소 드물고 약간 비싼 경향이 있는 물건인데 3만원이면 시세보다 싼 편이었다. 게다가 TPA3116을 고르면 적당한 아답터까지 구매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5만원에 가까운 돈이 들어가니 3만원이라는 가격이 휠씬 싸게 느껴졌다. 데논과 샤프에 OEM 납품했었다는 내역을 보니 "제대로 설계된"이란 최소 조건은 만족시킨 제품일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름 중고거래가 활발하고 무난한 평가를 받는 물건인데다 덩치를 보니 대형 스피커와 잘 어울릴 것 같아 보여서 구매해버렸다.
굳이 따지자면 출력 자체는 조그만 TPA3116과 별 차이가 없으니 상대적으로 앰프 크기가 커서 대형 스피커와 매칭하기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어리석었던 것 같다.
택배로 앰프가 도착했는데 마땅히 연결할만한 스피커가 없었다. 바나나 단자를 쓰지 않아서 기존 스피커를 연결하는게 다소 귀찮았다. 그래서 굴러다니는 얇은 케이블을 물려봤는데 오른쪽 스피커에서 약간 찌그러진듯 한 소리가 났다.
지나치게 수준미달인 케이블을 물려서 생긴 문제라 생각하고 구매결정 버튼을 눌러버렸다. 그러고나서 연결을 편하게 하기 위해 케이블과 단자를 몇 종류 주문했다.
호기심에 전력량 측정기를 물려보니 제법 큰 소리를 낼 때는 대략 25와트 전후 소리가 났고 소리가 나지 않는 때는 13와트 정도 전력을 소모했다. 그냥저냥 무난한 전력량이다. 다만 전원버튼을 껐을 때 경악했는데, 대기전력이 무려 8와트나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TPA3116을 살껄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블과 단자가 도착해서 연결해봤는데 찌그러진 음은 여전했다. 오른쪽 스피커는 약간 볼륨을 높이면 고음이 심하게 찌그러졌다. 단자를 닦아봐도 마찬가지였다.
망했다.
구매결정을 너무 일찍 눌렀나보다. 앞으로는 앰프 같이 10년 넘게 쓰다가 파는 물건은 중고거래를 해서는 안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TPA3116을 구입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후회가 또다시 몰려왔다.
어차피 버릴 거라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과감히 뚜껑을 열어 직접 고쳐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검색을 해보니 릴레이를 청소하거나 교체하면 정상적인 음을 출력할 수도 있다고 한다. 케이스를 분해해보니 릴레이가 보였다. 그런데 벽쪽에 완전히 붙어 있어서 뚜껑을 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판을 들어내고 뒷면의 납땜을 제거한 후 릴레이를 들어내야 했다. 릴레이 땜납에 인두를 대어보니 다행히 녹았다. 무연납이면 녹이는데 애를 먹었을텐데 90년대 물건이라 유연납을 쓴 것 같다. 다리가 6개짜리 릴레이었는데 4+2 배치였다. 당장 교체할 부품도 없는데 번거로운 일을 하기 싫어서 더 손을 대지는 않았다.
좀 더 살펴보니 오른쪽 스피커 출력 단자의 납땜이 새까맣고 지저분한 거품같은게 섞여있었다.
인두로 지져대니 플라스틱 녹는 냄새가 났다. 납땜한 부분은 완전히 망가진 것 같았다. 검은 플라스틱 같은 물질을 계속 녹여보니 2밀리 정도 되는 큰 구멍이 기판을 관통한 상태였다. 기판을 옆면에서 보니 인두가 기판을 관통해서 다른 부분까지 녹여버린 상태였다. 어쨌건 땜납이 있어야 할 곳을 차지했던 플라스틱 녹인 것 같은 검은 물질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납을 녹여서 구멍을 메우고 앰프를 재조립했다.
다행히 전원은 들어왔는데 음 왜곡은 여전했다. 릴레이는 사진을 찍었고 며칠 후 세운상가 인근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보여주며 부품 가게들을 돌아다녀봤는데 릴레이에 인쇄된 DEC라는 회사가 릴레이 제작사로서는 생소한 메이커이고 사진만으로는 어떤 물건인지 알 수 없다는 대답을 들을 뿐이었다. 그 중에 한 집에서 닮은 물건이 있다고 보여줬는데 다리가 6+2인 배치였다. 4+2 릴레이가 필요하다고 하니까 안쓰는 발은 자르거나 구부리면 된다고 했고 앰프에 달려있는 건 2암페어 짜리인데 새로 구입할 5암페어 짜리가 너무 크지 않겠느냐고 물으니 용량이 크면 좋지 뭐가 걱정이냐는 식이었다. 값이 1200원밖에 안해서 그냥 구입했다. 안맞으면 그냥 버릴 작정이었다. 사용기를 보니 이 제품과 같은 종류의 릴레이를 구할 수 없어서 앰프를 버렸다는 사례도 있어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이었다. 새로 구입한 릴레이는 완전 밀봉형이라서 청소같은건 불가능하다.
집에 도착해서 기판의 땜납을 제거하고 기존 릴레이를 제거 후 새로 산 릴레이 다리 중에서 기판에 구멍이 없는 놈을 구부리니 기판에 장착할 수 있었다. 떼어낸 릴레이를 열어보니 의외로 새 것 마냥 아주 깨끗했다. 어쩌면 릴레이 탓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난번에 납땜한 찜찜한 스피커 단자가 생각났다. 될 수 있으면 납을 아주 많이 녹여 넣어서 어정쩡하게 붙은 접점들을 완전히 붙여주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에 납땜했던 자리를 인두로 지지니 납이 녹아서 어디론가 흘러 들어갔다. 기판 옆면에서 보니 납이 적절하게 기판 구멍 속으로 베어 들어가 있는 게 보였다. 그래서 더 이상 기존 납이 녹아 흐르지 않게 새 납을 녹여서 기존 납 표면에 떨어뜨리는 식으로 기판의 구멍을 다시 메웠다. 납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갔다.
며칠 전에 한번 뜯어서 재조립을 해본 경험 때문인지 두번째 분해 조립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전원을 연결하고 스위치를 누르니 딱 하는 소리가 나면서 전원이 들어왔다. 용량 큰 릴레이를 쓰니까 전자석 힘이 좋아서 전원 켜지는 소리도 더 큰 것 같다.
스피커에서는 정상적인 음이 흘러나왔다.
다행이다.
소리가 나쁘진 않은데 쓰고 있던 진공관 앰프 소리보다는 확실히 못하다. 좋은 걸 놔두고 굳이 이 앰프를 쓸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방에서 컴퓨터에 물려서 쓸까 생각도 했지만 대기전력이 너무 커서 일상용으론 비호감이다. 그냥 TR앰프의 래퍼런스로서 보존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걸로 족할 듯 했다.
결국 오디오가 없는 다른 방으로 보냈다. 그 방에서 온오프 되는 멀티탭에 물려놓고 쓸때만 멀티탭을 켤 계획이다.
최소 15년 이상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었던 패시브 스피커 한조를 찾아내서 물려봤다. 90년대 초반에 당시엔 고가 대형TV였던 대우 29인치 TV에 딸려온 서라운드 스피커다. 공장도 가격이 25000원이라는 12옴 7와트 스피커다. 3~4인치 쯤 되는 우퍼 유닛과 1인치 정도 되는 트위터가 달린 2웨이 구조다. 전체 크기는 앞에서 봤을 때 대략 B5용지 정도 크기로 보인다.
별 기대 안했는데 의외로 통통 튀는 소리가 나름 들을만하다. 헬스클럽에서 천장 근처에 매달아 놓고 음악 트는 스피커 수준 정도는 되는 것 같다. 25000원이라는 가격표를 보고는 한쪽이 25000원일까 한조에 25000원일까, 그리고 당시 물가를 감안한다면 요즘 가격으론 어느 정도 되는 물건과 비길 수 있을까 등이 궁금해졌다. 기대를 별로 안했다가 의외로 소리가 괜찮아서 과대평가한듯 하다. 컴퓨터 책상용으로 사용중인 기가웍스 t20 ii 하고 비교해보니 곧바로 진압되었다. 싸구려 스피커답게 소리가 너무 가벼웠다. t20과 비교하니 덩치값 못하는게 눈에 확 띄었다. 다만 앰프가 힘이 세서 그런지 볼륨은 T20보다 훨씬 크게 올라갔고 볼륨을 꽤 크게 높여도 음이 T20보다 훨씬 덜 찌그러졌다. 음질은 딸리지만 값싸고 소리가 크니 헬스클럽용으로 적격인 것 같다.
비교 테스트를 통해 못난이 스피커임이 밝혀졌지만 당분간 돈 쓸 생각이 전혀 없으니 그냥 쓸 계획이다. 혹시 돈을 쓴다면 패시브 입문기라는 평을 받는 쓸만한 북쉘프 또는 완전히 반대로 아주 옛날 전축에 딸린 거대한 싸구려 스피커를 물려보는 것도 고려할만 하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고장나면 버리면 그만이란 마음을 먹고 아무짓이나 저지르다가 앰프를 살려냈다. 떼어낸 릴레이의 내부가 깨끗한 걸로 봐서 릴레이 문제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 뚜껑을 열었던 첫날 땜납을 좀 더 과감하게 투입했다면 번거롭게 릴레이 구하느라 세운상가 근처를 해메지 않고 간단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다만 구하기 어려운 릴레이도 비슷하게 생긴 놈 다리 구부려서 장착하면 호환이 된다는 걸 알게 된 건 일종의 수확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손품과 발품은 들었지만 큰 돈 들지 않았고 나름 경험도 생긴 셈이라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