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1월 춘원의 민족적 경륜은 5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기고되었다. 아직 민족주의자였던 춘원이 친일로 돌아서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는 글이라는 평가가 뒤따르기도 한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는 전 민족적 차원에서의 계획이 필요한데 그것은 정치, 산업, 교육의 측면에서 조선인(주로 농민)의 역량을 키워서 민족이 스스로 자신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논란이 된 부분은 1월 3일에 썼던 정치적 결사에 대한 부분이다. 일본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비판받았다고 한다. 그것을 독립을 포기하는 듯한 태도라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다소 무리한 시각이 아닌가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글을 쓴 당시에 조선인에 의한 모든 정치 활동은 정지되어 있었다. 없던 것을 만들어 보자는 주장인데, 첫술에 배부를 리 없고 실력을 양성하여 자치권이라도 확보한 다음에야 독립도 노려볼 수 있기 때문에 뒷 말은 생략하고 일단 자치권이라도 얻어보자는 계획을 세웠다고 보는 게 좀 더 자연스러운 해석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정치를 하는 최종 목적은 일제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뜻을 굳이 신문에 5일간이나 특집 기고를 하여 공개적으로 선언했다면 일제의 시각에서는 조선인의 정치 활동은 곧 독립 준비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일제는 조선인에 의한 정치 활동을 집요하게 금지할 것이고, 일제가 지배하는 조선 내에 거주하는 민중이 정치 활동을 시작해 볼 수 있는 그나마의 기회를 날리는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맞춤법이 확립되지 않은 시기에 쓴 글이기도 하고, 절반 이상이 요즘은 잘 안쓰는 한자어로 이루어진 고루한 문체라서 원문을 그냥 읽기엔 약간 불편하다. 원문의 내용은 유지하되 가독성을 위해 중복된 부분을 줄이고 고루한 표현을 수정하는 등 내가 읽기 편한 방식으로 다시 썼다.







1월 2일 민족 백년대계의 요


1.
일개 회사의 사업에도 계획이 필요하듯 민족의 사업에도 계획이 필요하다. 만일 회사가 경영을 할 때 뚜렷하고 세밀한 계획서를 작성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마땅히 비웃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조선 민족은 비웃음 당할만하게 무계획 상태다.

2.
조선민족의 장래에 대한 계획이 무엇이냐고 누가 우리에게 물을 때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하랴, 가량 교육과 산업의 진흥으로써 우리의 목적을 삼노라고 대답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방법으로 그 계획을 진흥하겠느냐고 되묻는다면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가장 위대한 어떤 조선인이 자신의 의견으로 대답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대답은 조선민족의 대답은 아니고 단지 그 개인의 대답이다. 개인의 의견은 그대로는 결코 민족적 행위로 표현되지 못하고 오직 그 의견이 민족적 의견 즉, 민족의 중심 단결의 의견이 된 뒤에야 비로소 민족적 행위 또는 운동으로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직까지 우리 민족에게는 민족적 계획이 없다 할 것이다. 각자 의식 속에 잠재한 목적과 계획은 있더라도 그것이 아직 응집하지 못한 것이다.

3.
그러면 그것을 응집시켜 완성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항상 주장하는바와 같이 오직 단결 뿐이다. 이것은 영원히 가장 낡고도 새로운 진리이다.

우리는 수십년간 단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까지도 추상적 이론이었고 구체화되어 실행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었다. 이렇게 되는 동안 우리의 민심은 흩어지고 민력은 약해졌다.

우리는 이러고 있을 수 없는 절박한 시기를 맞았다. 더욱 신년을 맞아(1924년 1월 2일 칼럼임) 과거를 회고하고 장래를 전망할 때 위급하다 생각하여 시급히 무슨 운동을 해야겠다는 전율할만한 내적 요구가 치열하게 밀려옴을 느낀다. 진실로 이대로 갈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힘을 쏟아 민족 백년의 대계를 확립하고 그것이 확립되는 날부터 그 계획의 실현을 위해 전 민족적 대 분발을 하여야 할 것이다.

진실로 우리 민족의 처지는 민족적 일생에 두번도 오지 않을 단 한번의 위기다.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벗어나는가가 조선 민족의 민족적 일생이 결정될 최대 시련이라 할 것이다.

4.
노숙한 인사들은 계획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실현되는 일은 없다고들 한다. 과학적 지식을 가진 인사들 중에서도 유물론자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회 현상도 물리 현상과 같이 필연적인 자연의 철칙에 정명론적 지배를 받는 것이오 결코 미신적인 자유의지론자가 말하는 모양으로 인격적 의지로 좌우되지 않는다고.

이런 주장들은 과학적인듯 보여 현대인의 신뢰를 끌지만 이것은 역사를 관념의 발전만으로 예상할수 있다는 헤겔파의 유심론과 같이 미신적이고 독단적이다. 역사와 사회학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있는 사람이면 심적 원인이 사회 진화에 큰 요인임을 알 것이다. 더구나 사회 진화의 정도가 높아질수록 인격적 이상의 세력이 사회 진화를 결정하는 힘이 커진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민족적 백년대계를 확립하여야 할 것은 모든 조건으로 보아 가장 합리적이고 적절한 일이다. 이하 우리의 의견을 펼쳐보자.






1월 3일 정치적 결사와 운동

1.
사람은 정치적 움직임이라함은 진부한 격언이라고 하나 20세기 현재도 역시 사람은 정치적 존재이다. 사람 사는 일의 모든 현상 중에 지금도 가장 흥미를끄는 것이 정치인 것은 신문을 보면 알고, 가장 높은 명성을 가진 자가 정치가인 것을 보아도 알 것이다.

자유의 사상이나 보급될수록 정치는 민중화되어 농민이나 노동자가지도 정치적 권리를 갖게 된다. 그렇게 사람들은 더욱 정치적 동물이 되는 것이다.


2.
그런데 조선 민족은 지금 정치적 생활이 없다. 아마 2천만에 달하는 민족으로 전혀 정치적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현재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고 역사 이래 없는 일이다. 이는 실로 기괴한 일이다.
그런데 지난 수십년간 조선 민족에게는 정치적 자유 사상이 무서운 힘으로 유래되어 정치 생활의 욕망이 옛날 몰락한 국가 생활을 하던 때보다 치열하게 되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3.
그러면 왜 지금 조선 민족은 정치적 생활이 없나. 그 대답은 단순하다. 일본이 한국을 병합한 이래 조선인에게는 모든 정치적 활동이 금지된 것이 첫번째 이유다. 병합 이래 조선인은 일본의 통치권을 승인하는 조건 아래서는 모든 정치적 활동 즉 참정권, 자치권의 운동 같은 것은 물론 일본 정부와 적대하는 독립운동조차도 원치 않는 강렬한 절개 의식이 있었던 것이 두번째 이유다.(?일본에 지배를 받고 있다는 현실 자체를 부정하는 의미?)

이 두가지 이유로 지금까지 해 온 정치적 운동은 전혀 일본을 적국시하는 운동뿐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종류의 정치 운동은 해외에서나 가능할 뿐 국내에서 한다면 비밀결사적일 수 밖에 없었다.


4.
그러나 우리는 무슨 방법으로 조선 내에서 전 민족적인 정치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조선 내에서 실행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일대 정치적 결사를 조직하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그 두가지 이유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는 우리 당면의 민족적 권리와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조선인을 정치적으로 훈련하고 단결하여 민족의 정치적 중심 세력을 만들어 장차 아득하게 먼 정치 운동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5.
정치적 결사의 최고 또는 최후의 목적은 그 결사가 자신의 모든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6.
우리는 정치적 결사에 대햐 더 자세한 설명을 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것은 결사를 몸소 경륜하는 실제 정치가의 두뇌와 수완에 맡길 수 밖에 없다. 민족적 백년대계의 제1조를 정치적 대 결사를 조직하여야 한다는 것을 다시 역설하고 아울러 그것이 속히 실현되기를 축원한다.






1월 4일 산업적 결사와 운동


1.
먹어야 산다는 것은 극히 평범한 말이나 동시에 극히 엄준한 자연의 법칙이다. 유물론자는 이 문제가 인생 문제의 전체라고까지 말하는데 비록 그것은 유심론적 경향에 대한 극단의 반동론이라 하더라도 전통적으로 먹을 것을 멸시하는 조선인에게는 정문일침이 될 만한 자극제다.
먹어야 살겠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다 이것이 점점 심해지는 우리의 절망적 절규다.


2.
그러면 어쩌나. 이에 대해서는 두가지 의견이 많은 것 같다. 첫째는 맨체스터식 자유주의인데, 산업의 발달은 오직 각 개인의 자유경쟁에 일임할 것이오, 결코 국가 혹은 단체가 간섭하고 좌우할 바가 아니라 함이다. 둘째는 보호주의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총독부의 정치가 비보호적이기 때문에 조선의 산업은 진흥될 수 없다는 의견이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만 어찌할 수 없다 만으로 단념하고 있을 수 없다.


3.
유치 산업 시대에 있을 때는 보호정책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재 조선은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산업의 유치 시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발아 시대에 있다. 이 시기에 강한 보호 정책을 써야 할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일본과 조선 간 중요 관세가 이미 철폐되어 조선에서도 제조할 수 있는 조선인의 일용품이 봇물 터지듯 조선으로 흘러 들어오고 조선인의 부는 고갈되어 대규모 산업을 기획할 능력이 갈수록 쇠약해진다. 이런 경우에 우리가 적당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머지않아 우리가 경제적으로 파멸할 것은 뚜렷하다.


4.
그러나 이 제도 아래서는 어찌할 수 있나. 이런 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고 용서받을 수 없다. 우리는 이런 제도 하에서 가능한 방침을 세워야한다. 그것이 우리의 생존에 대한 의무다.

우리는 물산장려라는 낡은 진리에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첫째, 소극적으로 보호관세 대신 그 효과를 내기 위해서 국산품 사용 동맹자를 형성하고
둘째, 적극적으로 조선인의 일용품과 조선에서 제조 가능한 산업기관을 일으킬 자금을 형성하기 위해 일대 산업적 결사를 조직하여야 할 것이다.


5.
조선의 산업은 산업적 대 결사의 힘 없이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 비록 이것이 미지근하지만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그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이러한 대 결사의 성공한 예를 영국의 길드에서 보았고 조선은 특수한 처지에 있기 때문에 조선인이 크게 분발만 하면 전 민족적 대 산업 결사를 조성하기가 곤란할지언정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물산장려운동이 진실로 이 정신으로 일어난 것이니 비록 무슨 사정으로 아직 부진한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최초의 목적을 관철치 못할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되나 이론만이지" 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듣는 비평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쉽게 되나 조금씩 조금씩 생장함으로써 되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6.
산업적 결사는 어제 본란에서 말한 정치적 결사와는 비록 그 공업의 성질이 상이하다 하더라도 또한 그 사업을 할 자는 지도자 측으로 보기나 일반 민중으로 보기나 동일한 자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가지 운동에 선후완급은 없고 동시에 함은 서로 기세를 도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장차 말하려는 교육적 대 결사도 또한 민족적 경륜 중 하나이니 정치적 결사, 산업적 결사, 교육적 결사 이 세 가지 대 결사는 조선 민족을 구하는 활로로 백년대계의 삼위일체라 할 것이다.





1월 5일 교육적 결사와 운동

1.
교육이란 말은 너무 자주 들었기 때문에 "또 교육" 타령이나 하면서 다 아는 말을 반복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다 아는 것' 중에 정말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교육은 그 중에 가장 큰 하나이다. 사람들은 교육이란 실행이 따르지 않는 실속 없는 말이라 여기지만 그 진정한 의미를 아는 이가 의외로 많지 않고 그것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정성은 더욱 드물다.


2.
새들이 새끼에게 나는 법과 적을 피하는 법과 먹이 잡는 법을 가르친다. 그 열중한 가르침은 우리의 생각이 미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짐승도 그렇다. 교육의 본의는 적을 피하고 먹이를 잡는 법의 교육과 연습에 있다.

그런데 조선 고대의 교육은 첫째, 전 민중도 아니었고 둘째, 적을 피하고 먹이를 잡는 이용후생적도 아니었고 대부분 장식적이었으며 근년의 교육도 아직 예전의 낡은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대개 일반 민중이 아직도 구식 교육의 목적의 잘못됨과 교육의 진의를 깨닫지 못한 까닭이다.


3.
교육이란 첫째, 사람이 다 받아야 할 것이다. 어떤 선택된 하나의 계급만이 받으면 족할 성질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사는 것이란 만인이 다 하는 것이지 어떤 사람만이 남의 몫까지 대신 살 것이 아닌 것과 같다. 그런데 현재의 조선에서는 공부할 나이의 아동만으로 취학률이 백분의 오륙에 불과하고 일반 인민 그 중에서도 전 인구의 거의 백분에 구십을 점한 농민은 대부분 전혀 교육을 못 받은 형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적을 피하고 먹이 잡는 법을 겨우 구경만 할 뿐이고 과학적으로 배워보지 못한 자들이다. 이것이 민족의 가장 근본적인 큰 문제다. 이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고는 다른 정치 문제, 경제 문제, 사회 문제, 모든 문제는 전혀 해결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런 문제의 당사자는 저 민중인 까닭이다.


4.
둘째, 교욱이란 적을 피하고 먹이를 잡는 법을 주로 할 것이다. 이 말이 구식 귀에는 심히 야비하게 들릴 수 있으나 이것이 인생 생활의 중심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교육의 중심 문제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영국의 스펜서도 그의 교육론에 역설 하였다.

그러면 어떤 것이 적을 피하는 법이고 먹이를 잡는 법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려면 적이 무엇인지 먹이가 무엇인지를 말하면 될 것이다.

인생의 적은 첫째는 기후, 둘째는 물과 흙, 셋째는 질병의 원인 넷째는 다른 동물이고, 인생의 먹이는 첫째는 음식물, 둘째는 공기 셋째는 약품이다. 우리는 기후라는 적을 막기 위해 가옥과 냉난방 설비를 갖추고 의복을 제조하고 물과 흙을 정복하기 위해 상하수도를 갖추고 나무를 심으며 질병을 막기 위해 위생 의료법을 찾는다. 반면 음식물을 얻기 위해 밭을 갈고 물고기를 잡고 타 지방의 산물을 얻기 위해 공업과 광업을 하는 것이며 치료를 위해 화학적으로 약품을 제조한다.

그런데 이상에서 말한, "적을 피하고 먹이를 잡는 법"은 어느 것이나 물리학, 화학, 동식물학, 천문학, 지질할 등 과학적 지식 없이 되는 것이 없으니 유럽 선진국이 우리보다 우월한 것은 과학적 지식의 보급에 있는 것이고 우리가 그들 만 못한 것은 과학적 지식이 그들만 못한 까닭이다.


5.
이상에 말한 것은 이미 결정된 사실이고 결코 실험의 증명을 기다리는 이론이 아니다.


6.
우리의 진로는 이상의 소론으로 이미 결정 되었을 것이다. 즉 전 민중에게 과학적 지식을 보급하는 대 운동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운동은 민중이 읽을 책자를 간행함과 민중, 특히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강습소를 설치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민중 교육에 필요한 자금과 인물을 확보하기 위한 대 결사를 조직해야 하고 지금이 그 때이다.

이러한 운동에 대한 자세한 계획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기독교 전도회를 생각해보면 상상하기 쉽다. 전도회가 많은 자금을 가지고 각지에 선교사를 파견하는 모양으로 이 결사에서는 각 농촌에 어문과 과학의 선교사를 파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비슷할 것이다.

이 3가지 종류의 결사와 운동이 조선 민족 구제의 삼위일체적 방책인 것을 말했다. 이 교육 운동은 어떤 의미로 볼 때 다른 두가지 운동의 근저가 될 것이다. 이제 그 관계를 다시 고찰해보자.





1월 6일 교육, 산업, 정치의 관계


1.

망설이거나 포기할 할 때가 아니다. 더구나 그저 어찌 되겠지 하고 우두커니 수수방관할 때도 아니고 더더구나 영웅이 나올 터이지 하고 정도령을 고대하는 듯한 어리석음을 가질 때도 아니다. 우리는 지금 큰 기백 큰 소리로

"옳다 이렇게 해야 한다. 하면 된다. 누구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 문족 각자가 일어나야한다" 하고 일어날 때다.

올해도 작년처럼 보낼 수는 없다. 우리는 큰 사업과 깊은 의미로 충만한 올해를 만들어야 한다.


2.
우리는 이상 4회에 거쳐 정치적 결사와 산업적 결사와 교육적 결사가 조선 민족을 구제하는 삼위일체의 방책인 것을 말하였다. 그러나 이 세가지의 관계가 어떠한가를 다시 말하면 이 세가지는 따로 시기를 떼어서 할 것인가 또는 동시에 할 것인가 각자 독립적으로 할 것인가 또는 밀접한 관계가 있도록 할 것인가 이것은 실제로 매우 중대한 문제다.


3.
정치적 결사는 전 조선 민족의 중심 세력이 되기를 기약하여야 할 것이니 결사의 의견이 곧 조선 민족의 의견이고 이 결사의 행동이 곧 조선 민족의 행동이 되기를 기약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 되려면 될 수 있는 대로 전 조선 각지에서 다수의 회원을 확보할 필요가 있고 다수의 회원을 확보하려면 부득이 농민에게로 가야 할 것이니 대개 조선에서 1400만명은 농민인 까닭이다.

농민 중에서 많은 회원을 확보하려면 첫째, 농민에 지식을 보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일을 하는 것이 교육적 결사의 사명이다. 교육적 결사 한편에선 과학적 지식을 보급하면서 다른 한편에선 농촌 자치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생활의 방식을 가르쳐 정치 생활의 준비를 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정치 운동과 농민 교육 운동은 서로 앞면과 뒷면을 이루어 서로를 돕는 관계가 될 것이다.


4.
산업적 결사도 그 최종 목적은 전 조선 내의 모든 산업을 거느려서 제어하는 것이니 그리하려면 거액의 자본이 필요하고 거액의 자본을 얻으려면 수백만의 회원이 필요하고 수백만의 회원을 얻으려면 역시 농민에게로 가야 할 것이다. 이런 대 산업 조합의 기초는 도시의 주민보다는 농촌의 주민일 것이고 그래야 한다. 그러므로 산업적 결사를 위하여서도 농민을 본위로 하는 교육적 결사는 중요한 보조 기관이 되는 것이다.

교육적 결사는 농민에게 경제학 등 필요한 학문적 지식을 보급하는데 특히 농촌의 경제적 자치와 조선의 경제적 생활에 관하여 가르칠 것이 있을 것이니 각 농촌에는 반드시 대 산업 조합의 지점이 있어 농촌의 경제 생활의 중심이 될 것이다.


5.
이 세가지 사업 중에 가장 곤란할 듯 한 것은 교육적 결사이나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다. 현재 지식 계급의 청년 중에는 적당한 사업을 잡지 못하여 고민하는 이가 많으며 또 민중을 위한 헌신을 원하는 이가 많으니 상당한 방법과 자금력만 얻으면 수백명의 민중 교육자를 얻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200인의 민중교사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매년 이만원 가량의 수입만 있으면 도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없어서 못한다면 너무나 민족적 수치가 아닌가.


6.
이 세가지 사업은 동시에 일으킬 것이니 동일한 최고 간부의 지도 하에 분업적으로 하는 것도 좋고 사업 자체는 독립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특히 정치적 결사 이외의 것은 절대적 색채를 띄지 않을 필요가 있다. 대개 정치적 색채를 띄면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7.
조선인이라면 누구인들 조선인의 운명을 근심하지 않는 이가 있으랴. 또 조선인의 운명을 근심하는 이는 반드시 조선인의 살아갈 길을 간절히 연구할 것이다. 지금까지 조선의 민족적 경륜이 확립하지 못하여 전 민족이 거취를 찾지 못함은 심히 개탄할 일이다. 이에 우리는 우리가 확신하는 바를 피력하는 것이니 이것이 기회가 되어 민족적 경륜에 관한 진지한 토론과 연구가 생기고 아울러 올해 안에 그 경륜에서 나오는 모든 사업이 시작하여 나아가기를 바란다.

Posted by 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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