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현재 한반도를 지배하는 국가는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이 생긴 시점이 1948년이니 한민족의 수천년 역사 중 70년이 조금 못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존속 중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특징 중 하나는 이전에 존재했던 나라들과의 철저한 단절이다. 단군 이래 왕을 모시고 노비를 부리며 살아온 역사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제도는 너무나도 이질적이다. 또한 대한민국은 선사시대 이전부터 불과 수십년 전까지 유구히 이어져온 절대적 빈곤에서 거의 유일하게 벗어난 시대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이색적인 시기이다. 20세기 초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식민지 시기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측면에서 극적인 변화를 야기했고 이런 역사적 단절을 더욱 강하게 느껴지게 했다.
그래서인지 대한민국은 과거 존재했던 역사를 현재 시점과 연속된 관점에서 파악하기보다는 박제화시켜서 전시하는데 집중하는 듯 한 경향을 보인다. 대한민국은 스스로가 한반도에 존재하는 마지막 국가이고 인류가 종말을 맞이하는 시점에 한반도에 존재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일 것으로 믿는 것 같은 결정들을 한다.
대한민국은 한반도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특정 시점에 누군가에게 보여줘야만 한다는 사명을 가지기라도 한 것 같은 태도를 취한다. 전통 문화의 계승 발전시킬 헌법상 국가의 의무에 대하여는 과거의 것들을 현상 유지 시키거나 이미 소멸한 것을 재현해 내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대한민국은 천여년 전 삼국시대에 건축되었다가 오랜 역사를 거치며 소실된 건물에 대한 기록을 보면 그 건물을 굳이 대한민국 시대에 다시 만들어 내야 직성이 풀리는 듯 움직인다.
선사시대 유적지는 원시인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오랜 세월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그 터에서 생활해왔던 장소이다. 그 터는 한 시점에 전속되는 고정된 시공간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세대를 이어오며 교체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어진 터전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선사 시대의 유적이 발견되면 이미 그 터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던 사람은 그 터에서 쫒겨나고 그 공간의 시간은 영원히 선사시대로 고정되어 버린다. 마찬가지로 어떤 장소에서 백제의 흔적이 발견되면 그 자리는 백제가 되고 조선의 흔적이 발견되면 영원히 조선이 되어 버린다.
고려시대 때 불타버린 황룡사를 다시 건립하면 황룡사는 신라의 유산일까 대한민국의 유산일까.
선사 유적지를 발굴한다고 지역 주민들을 전부 몰아내고 건물을 부숴버리기도 하는데 선사시대의 흔적만 중요하고 그 자리에 존재했던 대한민국 주거에 대한 역사는 무시해버린다. 그 장소는 선사시대인의 주거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주거공간이기도 하다. 망자를 추모하기 위해 모든 무덤을 그대로 보존한다면 모든 땅은 무덤으로만 뒤덮이게 된다.
서울 한복판의 육조거리는 조선시대를 지배했던 성리학 이념과 당시 정부의 기능에 맞추어 조성된 것이다. 그것을 사회적, 행정적, 이념적 측면에서 완전히 달라진 대한민국이 굳이 부활시켜 계승해야만 할 이유는 무엇일까.
더 이상 대감의 행차를 피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 국민들이 피맛길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피맛길이 없어지면 그 자리에 대한민국만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또 다른 스토리텔링을 가진 거리가 생기지 않을거라는 믿음의 근거는 무엇인가.
옛 것은 무조건 좋고, 현재는 그것이 손상되고 타락한 잔해라고 여기며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세계관은 종말론적이다.
한 사람이 죽을 때 그의 입장에선 그것이 세상의 종말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사실은 그가 죽더라도 세상사는 계속되고 역사는 흐른다. 우리의 삶이 끝나고 나서도 수천 수만년간 인류의 문명은 지속될 것이고 우리는 그들 입장에선 고대인이나
중세인이 될 것이다. 그들의 역사책에는 21세기에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있었고 그들은 마치 그들이 인류의 마지막 세대나 되는 것 처럼 착각하며 이전
왕국들의 유산을 있는 그대로 보전하는 것을 넘어서 복원하기까지 하려는 풍조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을 수 있다. 자연은 후손에게 빌린
것이라는 표어가 있는데 대한민국은 선조들에게 땅을 빌려 쓰는 듯한 결정들을 내리곤 했다는 평가가 뒤따를 수도 있다.
전 국토를 박물관처럼 만들어서 과거의 흔적만을 절대적으로 보전하면 한반도 땅에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것이 누구를 위한 일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렇게 한 경우 가장 큰 이익을 누릴 자는 인류가 멸망한 이후 지구에 와서 한반도 땅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문명을 이루고 살다가 멸종을 맞이했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한반도를 방문한 외계인 학자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인류의 종말 시점은 아직 가깝지 않아 보이고, 인류가 종말한 이후에는 외계인 관광객이 지구를 찾아와서 우리가 특정한 공간에 대하여 끈기 있게 나열시킨 시대별 흔적들을 보고 감탄해봤자 우리 후손들은 이미 멸종된 상태이기 때문에 관광 수입을 거둘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현 시점에서 이전의 모든 시대를 보전하고 재현하고 정리해야 할 의무를 진 것 마냥 서두를 필요는 없다.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은 중세에 주거용으로 이용되기도 했고, 르네상스 시대 건축물의 재료로 재활용 되기도 했다. 그로 인해 폐허가 되어 옛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긴 했으나 현재 남아있는 콜로세움의 잔해는 고대의 문명의 화려함 뿐만 아니라 황폐한 중세의 흔적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콜로세움의 석재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완전히 보호되기만 했다면 장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거대 문명의 덧없음이나 속절없는 세월의 풍화를 느껴볼 기회가 없어졌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문화유산인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들은 존재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옛 것의 복원은 나름의 가치는 있으나 그 자체가 종국적 목적은 아니다.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옛 것이 없어진 상황은 그 자체가 역사의 한 장면이다. 고려 때 없어져버린 황룡사를 현재 재건한다면 그것은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한 사명 때문에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복원하여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이익에 기여하기 때문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목적은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 새로운 역사적 의의를 가지게 된다.
과거의 것을 현상유지하거나 복원하는 것 자체만을 지상 목표로 하는 것은 과거의 모든 것은 현재에 구현이 되어야 한다는 의지에서 비롯한다. 이는 현재를 역사의 마지막 시대로 보는 종말론적 세계관의 연장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