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다. 750여개 중에서 약 90여개 정도 들은 상태다.
명성과는 달리 다소 실망스러웠다. 너무 천편일률이라 설법을 10개 정도 듣고 나니 질문자가 고민거리를 말하면 스님이 어떤 대답을 할지 미리 짐작할 수 있었고 짐작한 내용은 실제 답변과 상당 부분 일치했다. 대체로 마음에 안들었지만 그 중에 들을 만한 내용도 있기는 했고, 이유를 모를 묘한 매력이 있어서 조금씩 계속 듣고는 있다.
나는 불교에 대한 지식이 깊지 않기 때문에 그 설법이 불교를 대변한다고 보는 것이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다. 더구나 그 스님을 싫어하는 사람 중 그를 일컬어 "승적에도 등록되지 않고, 중옷 입고 다니는 다니는 이상한 사람"이라 칭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가 불교계의 입장을 대표한다고 보는데 무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쨌거나 설법 중 가장 마음에 안들었던 내용은 정신승리 만능주의다.
그건 고민을 해결하지 않고 잊게 하거나 다른 고민으로 돌리는데 불과하다. 모든 고민을 마음탓 하면서 실제로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을 마음 공부나 하라면서 회피한다.
합리적인 사람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정신승리는 현실적으로 승리가 어려울 경우 차선책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진정한 승리를 쟁취하는데 드는 노력의 양이 100이고 정신승리하는데 드는 양이 10인 경우는 정신승리는 현실승리의 훌륭한 대체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양반은 진짜 해결책이 멀리 있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도 성취하기 어려운 정신승리를 권한다.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는데 드는 노력량이 5면 충분 경우에도 10만큼 노력이 필요한 정신승리를 권한다.
그러면서 마음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거고 자기도 아직 공부를 끝내지 못했다고 한다. 고민을 해결해 주겠다는건지 다른 고민거리로 돌리겠다는건지 그 속을 알기 어렵다.
은으로 만든 물건은 오랫동안 방치하면 검게 변색된다. 검게 변색된 은수저는 치약 묻히면 잘 닦인다. 이 스님한테 물어보면 검은 것이 더럽다는 것은 분별심이니 그냥 쓰라고 할 것 같다. 일리는 있으나 검게 변색된 은수저로 음식을 떠 먹으면 씁쓸한 맛이 난다. 보다 바람직한 조언은 치약을 묻혀서 닦아 보라는 말이다. 땅콩 버터가 묻어 있는 숟가락을 닦지 않고 밥먹을 때 그냥 써도 보통 사람에겐 별 문제는 없다. 그러나 땅콩 알러지 있는 사람은 하루종일 온몸이 가렵다. 세상에는 더럽고 안 더럽고의 문제를 떠나서 실제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속세와 인연을 끊고 고고하게 도 닦는 사람들은 그런 걸 볼 줄 모르는 것 같다고 느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다른 전문가와 상담을 해보라고 권유하는게 진정 중생을 돕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가끔 실제 해결책을 주기도 하는걸 보면 속세에 대한 시야가 좁기 때문에 쉽게 해결가능한 속인의 고민에 대해 마음 공부라는 적절치 않은 대답을 하는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다른 문제는 남의 고민에 대해 너무 남의 일처럼 말한다는 점이다. 자기 고민에 남의 일처럼 초연하게 행동하는 것은 훌륭한 인격 수양의 결과인데 남의 일을 남의 일로 대하는건 누구나 할 수 있고 오히려 정신적으로 미성숙 사람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다.
남의 일처럼 말하는 이유는 자기의 일이 남의 관점에서 보면 별 일 아니니까 한걸음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라는 의도인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그게 과하다. 고민을 가져온 사람들의 사정을 보면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들도 적지 않다.
'제가 병에 결렸어요. 죽을 수도 있대요. 지금도 아파요." 라는 고민을 말하는데
"아프고 죽는게 무슨 대수입니까? 그래도 여기까지 나오신 걸 보면 아주 아프신건 아니네"라고 대답을 하는 식이다.
보통 사람들끼리 이런 식이었으면 멱살 잡히고 뺨 맞을 일인데 자기는 스님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는건지 그 속내를 짐작하기 어렵다. 자기는 남의 일이라서 담담할 수 있지만 고민의 당사자는 담담하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또 마음 공부나 하면서 남의 일 보듯 할 수 있는 힘을 기르라고 한다. 결국은 또 다시 정신승리 지상주의에 빠지게 된다.
힘든 사람에게 필요한 가장 실효적인 구제책은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언을 해 주는 것이다.
그게 어려울 때는 정신적 위안을 찾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자기 기만적 정신승리가 반드시 나쁘기만 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정신승리가 유일한 해결책은 사안에서는 매우 훌륭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뭔가 기대하고 상담을 요청했는데 남의 일 취급하는 투의 자기 기만을 조언이랍시고 해주면 듣는 사람이 짜증날 수도 있다. 자기 기만은 있는 그대로를 보라는 불가의 수행법(팔정도 중 정견)에 어긋난 태도이다.
현실적인 해결방법이 없고 정신 승리도 어려운 고민에 대해서는 차라리 이렇게 위로를 해 주는게 어떨까.
"그래요? 안되셨네요. 그런데, 나도 힘듭니다. 저 사람도 힘들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힘든가 봅니다. 부처님 말씀이 인생은 원래 힘든 거라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살만하다고는 합니다. 오늘 힘들었으니 앞으로는 좋은 일도 있을 겁니다. 힘들 때 서로 힘을 나눕시다. 당신을 응원하겠습니다. 당신도 내가 힘들어 할 때 나를 응원해 주세요."
공허한 이야기는 듣고 나서 남는게 없다. 그릇을 뒤집어 놓으면 물을 받을 수 없다고 하는데 물이 아니라 휘발성 강한 알코올은 그릇을 제대로 받쳐도 날아가버린다. 그리고 그 물이 똥물이면 당연히 그릇을 뒤집어서 그릇 안쪽이 더럽혀 지는걸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