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가 필요한 이유

생각 2009. 1. 16. 00:46

오늘은 무슨 이유에선지 하루종일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떠올라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글씨 연습이라도 하자는 생각에 답안지에 60점 분량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가상의 편지와, 자신에 대한 위로의 편지를 썼다. 기분을 가라앉히는데 약간 효과는 있는 듯 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정신적 고통이라는건 100% 인간 관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떠올려보면 내가 가해자였던 것도 있고 피해자였던것도 있다. 자기 중심적인 생각일수도 있지만 내가 피해자였던 적이 더 많았고 특히 최근 5년 이내에는 내가 특별히 누군가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입혔던 기억은 없다.

물론 받아들이는 쪽에선 어떨지 모른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뱉었던 말에 앙심을 품었던 사람이 최소 2인 이상은 실제로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서로 사과, 해명을 하고 풀었던 적도 있고 끝까지 그렇지 못했던 적도 있다. 원래 피해 망상이나 편집증이 있는 사람은 용서를 할 줄 모른다.

두 건의 차이점은 사과와 해명의 유무였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냥 넘어갔던 쪽은 아직도 개운치가 못하고 가끔은 고통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뭔가에 심하게 얻어 맞고 나면 상처가 남는다. 마음에 충격을 받아도 상처 입었다고 한다. 몸이나 마음이나 상처의 공통점은 시간이 약이라는 것이다. 인체의 자연 치유 능력 또는 망각이 그 역할을 한다.

마음이 제대로 아프면 아침에 일어나는것 자체가 고통스럽다.깨어있는 상태로 그 기분을 모조리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 버겁게 느껴진다. 하지만 열흘, 한달이 지나가면서 고통의 강도는 줄어든다. 그러다가 잊혀진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별 일 아니었던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 오늘 같은 날이 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 자꾸 생각이 난다. 게다가 아프기까지 하다. 다 나은줄 알았는데 왜 그럴까?

몸에 큰 상처를 입은 후 시간이 지나면 왠만큼 치유된다. 하지만 흉터가 남는다. 흉터가 있는 부위, 흉터의 크기 등에 따라 흉터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숨기려고 한다. 팔이나 다리에 흉터가 있다면 긴 옷을 입어 숨길 수 있다. 옷에 닿아도 아프지가 않다.하지만 가끔은 옷자락이 걷어 올려져서 그 흉터가 보인다. 흉터의 원인이 되었던 상처를 입었던 사건이 떠오른다.

여기서 마음의 흉터와 연결시켜보자. 흉터가 보인다. 상처 입었던 사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때 느꼈던 기분도 같이 생각난다. 아프다. 그렇다면 상처가 치유된 거라고 볼 수 있을까?

마음의 상처에서 완전히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자연 치유가 아닌 인위적인 치유는 가능하다. 진심어린 사죄가 바로 그것이다. 내가 잘못해서 개운치 못하다거나, 씁쓸한 일이 있다면 피해자에게 사죄함으로써 그 짐을 벗을 수 있다.

반대로 사죄를 받는것도 좋은 치료책이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의 가해자가 사죄를 하여 관계를 회복한다면 그 고통의 기억과 이후 사죄의 기억이 결합하여 독성을 중화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사죄와 용서는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죄 없는 용서가 가능한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직 가끔씩은 오늘처럼 마음이 아파서 나는 당신들을 용서하기 어렵다.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연륜과 수양이 더 필요할 듯 하다.

Posted by 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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