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함

생각 2009. 3. 26. 21:09

예전에 마술의 비밀을 알려주는 TV프로그램이 수차례 방송되었다. 호기심 천국에서 타이거 마스크를 쓴 마술사와 스펀지에서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최씨 마술사가 수차례 마술 트릭 기법을 소개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마술계의 엄청난 비난과 위협을 받고 프로그램을 그만 두었다.

나는 그 정도 비밀 공개는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 사람들이 공개한 마술들의 특징은 그 공연 자체만으로는 더 이상 흥미를 끌 수 없는 진부한 마술들이었기 때문이다.

마술에 대한 흥미를 끄는데 있어 마술의 비밀을 아는지 여부나 공연의 스케일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예를 들어 모자에서 비둘기나 토끼가 나오는 마술, 철가방 뚜껑같이 생긴 칼을 미녀가 들어가 있는 상자에 집어넣는 인체분리 마술은 그 비밀을 알지는 못하지만 너무 많이 봤던 내용이라 재미있거나 신기하지는 않다.

TV에서 공개한 마술들은 하나 같이 너무 자주 봤었던 내용이었다. 신기하거나 재미있다는 느낌 보다는 "또 저거야?" 라는 식상함이 느껴졌던 마술들이었다. 앞서 예로 들었던 비둘기나 신체 분리 마술보다는 규모가 크고 덜 알려진 마술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흥미를 끄는 내용도 아니었다. 예를 들어 무대위의 연단이 탁자가 등장하면 그 아래는 거울이 달려있다는게 조금만 주의하면 알 수 있고 그 아래 숨겨진 공간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비밀은 마술보조 미녀의 반대편 조용한 곳에 있기 마련이다.장막을 치거나 손수건으로 대상을 덮으면 더 이상 대상은 장막이나 손수건 뒤에 없다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또한 비밀을 공개하는 장면을 보더라도특별히 창의적인 트릭이 숨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비록 관객이 비밀은 모르지만 그 마술을 보고 식상함을 느낀다면 그 마술의 이용 가치는 끝났다. 아무도 그 공연을 돈주고 보고 싶어하지는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마술사들은 바로 그 시점에서 그 비밀들을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 더 이상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마술이지만 비법을 공개한다면 비법을 공개하는 그 순간 마지막 한번의 관심을 더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낡은 집을 철거한 후 폐자재를 고물상에 파는 행동에 비교할 수 있다.

주제를 살짝 돌리면 AV(adult video, 야동)도 비슷한 원리가 있는 듯 하다.

이성이 옷을 벗은 모습이나 성행위 장면을 보는 것은 처음에는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다. 하지만 여러 차례 반복하여 그런 장면을 접하다보면 곧 식상함을 느끼고 담담해진다. 사람 몸이란게 거기서 거기인데다가 사람 몸끼리 뒤엉켜서 할 수 있는 일도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그런 영상은 외설적이기는 해도 자극적이지는 않다. 평정심을 전혀 흔들어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AV를 화면 넘기기 안하고 영화 보듯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같은 체위에서 삽입운동을최소 5 ~ 10분 가량 비슷한 카메라 각도로 보여주는데 그 장면을10분 내내 보는건 상당히 지루한 일이다. AV에서 여배우의 얼굴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는 여배우의 미모를 즐기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식상함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특별히 마르거나 뚱뚱하지 않다면 몸은 사람마다 대충 비슷하지만 얼굴은 사람마다 확실히 달라서 식상함이 덜 할 수 있기때문이다.

AV에서 변태적인 행위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식상함에서 벗어난 자극을 제공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러나 AV의 변태적인 행위들은 어느 정도 정형화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 역시 몇번 접하다 보면 그저 그런 행동이 되어버린다. 그러다 보면 현실에서는 일반적으로 쉽게 허용되지 않는 행위가(예:구강, 후배위 기타 등등)일반화되었다거나 정상적인것이라고 착각하게 될 수가 있다.

흥미와 관심을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건이나 행동이 필요하다. 또한 그러한 변화가 식상함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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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보니 수습할 수 없는 길로 빠져들고 말았다. 마무리를 짓지 못해서 몇달간 방치한 글인데 다시 봐도 깔끔하게 끝을 내기가 어려워 보인다.

AV는 글의 주제가 아니라 한가지 예시 였을 뿐인데 너무 길게 처리되다보니 주제가 흐려지는 듯 하다.

또한 마땅히 마무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럴때마다 필력이 모자라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낀다.

더 할 말이 없어 식상한 말로 서둘러 마무리 지어버리는 막장 드라마 식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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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3플레이어에 수록된 곡들


1.추천 받은 뮤지션의 앨범을 mp3플레이어에 넣는다.
2. 듣는다. 반복해서 익숙해질때까지 듣는다.
3. 마음에 안드는 곡을 하나씩 지운다.
4. 남아있는 곡들만 듣는다.(셔플재생)

지워지는 노래의 특징
상투적 가사와 멜로디, 지나친 시끄러움, 침울함,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공감할 수 없는 가사 등인데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식상함이다.
공장 양산 시스템 곡은 처음 들음에도 불구하고, 한소절 정도는 예측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 노래를 안듣는 이유는 뽕짝을 안듣는 이유와 같다.
가끔씩 형편없는 멜로디와 가사에 비해 가창력이 아까운 노래들도 있다. 뛰어난 가수와 무개념 작곡가의 부조화가 안타깝지만 귀의 즐거움을 위해서 지운다.

Posted by 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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