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27일 2차 시험이 있었다. 뒤늦게 후기를 써 본다.
그때 당시 글씨만 평소보다 빨리 쓰면 합격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갔고, 형편없는 점수를 받게 되었다.
가장 큰 패인은 지나친 긴장감이다. 손이 떨려서 안그래도 느리던 글씨가 더 느려지고,계산기 오타도 자꾸 생기고,평범한 문제에서 특색있는 목차를 만들려고 하다보니 목차뽑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평소보다 약간 더 힘을 발휘해야 합격할 수 있는데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눌려서 평소 실력의 반 정도밖에 발휘하지 못했었다.
일단 이론의 패인은 전날 얻은 역정보 때문이었다. 노태욱교수가 출제위원으로 들어갔다는 역정보때문에 마지막날 엄한 논문 읽느라 잠을 많이 못 잤고, 전형적인 일본식 문제를 미국식으로 목차를 잡으려 하다가 시간만 보냈고 결국은 별다른 특색없는 답안을 써야 했다. 목차 생각을 너무 오래 하느라 본문을 쓸 시간이 적었다. 안그래도 글씨가 느린데 더 못썼다. 결국 73점 정도 밖에 쓰지 못했다.
법규는 따로 말 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법규 수석합격자 조차도 논점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장관의 회신을 예비결정으로 봤다니 발상이 특이하긴 하지만논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접근법이다. 수험가에선 아직도 그 문제를 행정법 문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문제는행정법 문제라기보다는토지보상법 문제 성격이 강했다.처음에 제대로 들어갔으면, 70점 이상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처음에 틀리게 들어갔다. 써 놓은 답안 고치느라 답안지는 더러워지고, 시간은 자꾸 흘러갔다. 그렇게 무너졌다. 큰일났다는 압박감 때문에 다음 문제에서는 이미 외워놓은 것도 한참을 생각해야 겨우 머리속에 떠올랐다. 버퍼링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렇게 법규도 70점정도 밖에 못썼다.
가장정신적데미지가 컸던 과목은 실무였다.
실무는 법규보단 못하지만 그래도왠만큼 자신이 있었다. 다만 그날 너무 떨어서 오타를 많이 냈고, 중간값을 자꾸 지웠다 새로썼다를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답안지를 더럽혔다. 뿐만 아니라 1번문제 답안 분량이 너무 많아서 혹시 내가 문제를 잘못풀고 있는건 아닌가 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40점짜리 문제를 6장 반에 걸쳐 풀었다. 16회 시험 1번 문제가 떠올랐다. 그 문제는 처음에 접근을 잘 하면 30점에도 들어올 수 있는 문젠데 함정에 빠지면 그렇게 끝도 없이 푸는 문제였다. 혹시 내가 함정에 빠졌던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며 불안해하며 문제를 풀었다. 그렇게 80분만에 1번 문제를 끝마쳤다. 나머지 문제는 4번까지 20분동안 풀어냈다. 1번 문제가 줬던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커서 그 이후로 그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풀이법을 알고 싶지도 않았다.
며칠전에 김수식 평가사의 베이직실무를 샀다. 문제를 훑어보니 그때 그 문제가 있었다.
내가 제대로 풀었던 것이 맞았을까라는 의문이 들어서 문제 접근법을 대충 봤다.
난 그 때 제대로 풀었었다. 다만 계산이 틀렸을 뿐이다. 급한 마음에적용했던 Ross의 금융적 투자결합법도 틀린 접근법이 아니었다. 심지어 답안 길이도 맞았다. 그 문제는 40점이지만 예시답안을 보니 60점짜리 문제보다 풀이과정이 길었다.
만화 데쓰노트 7권에서 L이 죽으면서 중얼거린 말이 떠올랐다. "난 틀리지 않았어..."
어느 아줌마합격자의 합격수기를 보니 자기는 17회 시험에서 85점 밖에 못풀었는데 68점을 받았다고 한다. 그 때 쫄 필요 없었다. 내가 어려우면 남들도 어려운건데, 괜히 혼자 위축이 되었었다. 2번 문제부터 단 한문제를 풀더라도 그렇게 날림으로 풀지 말고 조금 더 성의껏 풀었다면 좋았을 것을 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는 안 볼거라던 시험이었는데 다시 20회 시험에 도전하게 되었다.
오늘의 나가 그날의 나에게 미리 충고해 둔다. 내가 쫄 필요는 전혀없다. 내가 어려우면 남들도 그만큼 해맨다. 이론은 누구나 잘 쓰고 이것저것 주워 본 다년차들은 낯선 4,5,6번 문제도 어렵지 않게 쓰겠지만, 당락을 좌우하는건 1,2,3번이다. 1,2,3번에서 기계적인 목차를 나열하기 보다는 기승전결의 논리를 세워서 출제자가 원하는 논점을 빠짐없이 건드려 준다면 5,6번 문제에서의 버벅거림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될 것이다.
법규는 나도 고수라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는것이 좋다. 내가 쓰던 중간에 논점을 잘못 짚었는 것을파악할 정도면 수석 합격하는 사람도 처음부터 논점을 잘 잡았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법규고수는 나보다 행정법 내공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단지 나보다글씨를 빠르고 예쁘게 쓰는 재주를 가진 사람일 뿐이다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학원의 최고득점자 답안 복사본을 읽어봐도 특별히 꿇릴만한 건 없었다.
김지혜 팀장이 강평 중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 시험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험에 도전하면붙어요. 실력은 다들 비슷하니까 시험장에서 쫄지않는 사람이 붙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