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남녀간의 애틋한 감정을 일컫는 사랑보다 광범위한 사랑 개념을 뜻한다는 것과,
'이해'는 어린왕자에 나오는 '길들이기'와 약간 다른 개념이란 점을 미리 밝혀둔다.
몇 년 전 TV에서 어느 농가에서 기르는 소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다.
소를 기르던 할머니가 죽었다. 장례가 끝나고 며칠 후 소는 외양간 문을 부수고 뛰쳐나갔다.
소는 할머니 산소 앞에 가서 구슬프게 울었다.
가족들은 그 장면을 보고 그 소를 자기 식구로 받아들이고 절대로 팔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소는 단순히 가축이고 재산일 뿐이었지만 할머니를 애도하는 마음을 행동을 보여주자 가족들은 소를 자기들과 같은 마음을 가진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소의 입장에서 보면 팔려갈 위험이 없어져서 천수를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 큰 것을 얻은 셈이다.
도살장에 끌려갈 때 무섭거나 슬퍼하지 않는 소는 없을 것이다.
힘으로 버티거나 울부짖어도 도축업자는 직업적으로 도살한다. 어떠한 감정도 개입될 여지가 없다.
말을 할 줄 아는 소가 한마리 있다고 가정한다면, 소는 도살장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평생 일만 하다가 맞아 죽는게 억울한지를 설명하면서 살려달라고 눈물로 호소할 것이다. 아무리 죽이는게 직업이라도 그런 소를 쉽게 죽일 수 있을까?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면 비슷한 예가 나온다.
치타를 주인공으로 삼은 다큐멘터리를 보면 마음이 찡 할때가 있다.
새끼들은 굶어죽어가고, 어미는 잘 먹지 못헤서 젖도 안나온다. 죽느냐 사느냐 생사의 갈림길에서 성공률이 20% 남짓인 사냥을 한다. 가젤이 한마리 잡히기 만을 기대한다. "다행히" 한마리 잡았다. 피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들이 몰려온다. 어미 치타는 하이에나를 이길 수 없어서 잡아놓은 가젤을 놓고 도망간다.
반면 가젤을 주인공으로 삼은 다큐멘터리를 본다면 무사히 치타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응원하게 된다.
내가 사냥 실패를 기원한 치타와 성공을 기원한 치타가 같은 놈일수도 있다.
나와 아무 이해 관계가 없는 동물들에게 조건 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게 한 원인은 그 치타, 또는 그 가젤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묘를 찾아간 소는 자신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여 감동을 주었다.
순전히 이해타산 때문에 맺어진 관계에서 인간적인 관계로 발전하여 내 편을 만들고 싶다면
호의적이고 순수한 마음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이해시킬 수 있는 표현력이 더욱 중요하다.
표현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다르지 않다.
----------------------관련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사기나 성범죄는 아는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가정 내지 희망은 종종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