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어떤 유튜버가 과학의 한계에 대해 지적하면서 그 예시로 우생학을 제시했다. 나는 거기서 두 가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째는 그가 예시를 든 과거에 끔찍한 일을 벌이게 한 우생학은 전혀 과학적인 방법이 적용된 사례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두 번째는 우생학 자체가 과거에 오용된 사례와 분리될 수 없이 일체성 있는 개념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러한 의문들은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전자 결정론이 만연해있다. 그에 대해 우생학의 부활이라는 우려가 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우생학을 반드시 걱정의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것이 공정한 태도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해 본다.
우생학은 유사과학으로 알려져 있다. 우생학을 말하는 사람은 정상인이 아니고 나치즘을 숭배하는 위험한 인물 취급을 받곤 한다. 하지만 이런 비판들은 모두 정당한 것일까?
이 글은 "우생학? 으악!! 너 나치야? 입 닥쳐 이 악당놈아"라고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위한 목적에서 썼다. 박식하고 똑똑하단 이유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조차도 우생학 앞에서는 총기를 잃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우생학이란 유전 법칙을 응용해서 인간 종족의 개선을 연구하는 학문(표준국어대사전), 인간의 유전형질 가운데 우수한 것을 선별, 개량하여 인류 전반의 유전적 품질(genetic quality)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는 과학적 신념(나무위키)을 말한다.
비슷한 것으로 육종학이 있다. 육종학이란 농작물의 품종을 개량하거나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 내는 이론과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더 많은 수확물이 달리게 하는 작물의 개량. 더 덩치가 크고 빠른 말. 힘이 세고 고기를 많이 생산하는 소는 육종학의 결과이다. 육종학은 엄연히 과학으로 인정을 받는다. 과학의 원리에 따라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종마의 정액은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
어떤 이론이 과학적인지 유사과학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것이 단순히 가설에 그치지 않고 실체적인 검증이 가능한지를 따져야 한다. 하지만 우생학이 유사과학으로 취급되는 이유는 이론에 대한 검증과정에서 가설이 기각되었기 때문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우생학은 그것을 주장한 사람들이 벌인 비윤리적인 만행 때문에 사이비 과학으로 매도를 당하게 되었다. 과거에 종교가 인권을 탄압하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등 거대한 부작용을 보였다고 해서 종교를 금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듯이 우생학을 추종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행위로 인해 우생학 자체를 매도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아 보인다..
사람들은 우생학이라고 하면 즉각적인 반발심을 표출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정자은행에서는 일정한 수치에 미달하는 신장인 사람, 지능이 낮은 사람, 폭력성이 있는 사람, 유전병이 있는 사람의 정액을 매입하지 않는다. 정액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역시 그런 사람의 정액을 원하지 않고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의 정액을 원한다.
이런 행태에 대해 우생학과 차이를 두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정자은행에서의 유전적 선택은 개인의 선택과 동의에 기반한 것이며, 이는 현대 사회에서 유전적 특성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강제적이거나 국가 차원의 정책으로 시행되는 우생학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문제가 있다. 우생학을 그 자체로 독립적인 개념으로 인정하지 않고 이를 오용하고 악용한 역사적 사례와 일체화하여 다룬다는 점이다. 우생학은 나치에 의해 악용되기도 했지만 현대의 정자은행에 의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좋은 형질을 물려주고자 하는 욕구가 국가적 차원인지 개인적 차원인지 강제인지 자율인지 약자를 핍박하는지 아닌지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또한 이런 주장도 있다.
"우생학이 유사과학으로 간주되는 이유는 단순히 비윤리적 행위 때문만이 아니다. 우생학은 과학적 방법론에서 많은 결함을 드러냈고, 인간 유전자의 복잡성을 간과한 채 단순화된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현대 유전학은 인간의 특성을 단순히 '우수한' 유전자로 정의하는 것에 한계를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 역시 한계를 가진다. 일단 특정한 유전인자에 대해 우수함과 열등함이라는 기준으로 판단을 한 것은 우생학이 해악을 발휘했었던 과거의 시대적 기준에서 제시된 것이지 우생학 자체에 내재한 것이 아니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초기 연구자들의 우열에 대한 관점으로 그 학문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닫힌 태도다.
또한 인간 유전자의 복잡성을 간과했다는 지적 역시 문제가 있다. 동물의 유전자를 개선하는 육종학은 과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인간 역시 엄연히 동물이다. 인간의 유전자만 다른 동물들에 비해 특별히 더 복잡하다고 볼만한 근거는 없다. 인간의 유전자 수는 쥐와 비슷한 수준이고 유전체 크기는 일부 양서류나 식물보다 작다. 돼지는 인간과 유전자 유사도가 80%나 된다. 인간은 육종학을 활용하여 돼지를 인간에게 유용한 형태로 진화시켰다. 인간의 유전자가 다른 동물에 비해 특별히 복잡해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유전자를 더 많이 연구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인간 유전자의 복잡성만 강조하는 것은 인간 중심의 오만을 드러낸 것에 불과할 수 있다. 냉정하게 보면 우생학은 육종학의 일종인 '인간 육종학'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어떤 유전자가 우수한지에 대한 판단은 연구를 심화해서 발견해 나가면 될 것이지 애초부터 원천봉쇄를 할 이유는 없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우생학은 육종학만큼 엄밀하게 과학적으로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그러나 우생학은 이미 유사과학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연구는 금기시되었다. 우생학과 유사한 주장을 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인 지탄을 받을 정도다. 따라서 충분한 연구와 과학적 검증과 발전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연구 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는데 그에 대한 검증이 부족하다고 지적을 하는 것은 정당한 비판이라 보기 어렵다. 마치 어떤 사람의 다리를 묶어놓고는 저 사람은 달리기가 느리다고 폄하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한 비판에 대해서는 인간도 생물인데 왜 '인간 육종학'이라고 할 수 있는 우생학만 과학이 아닌가? 우생학은 육종학만큼 충분한 연구를 한 이후에 기각되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우생학에 대한 비판은 이와 같이 윤리성이나 다른 생물들에 대비한 인간의 차별성 강조에 치우친 면이 강하다.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라기보다는 인본주의적이다. 한편 내 관점에서 파악한 우생학의 문제점은 그것들과는 시각을 달리 한다.
우생학으로 사람들이 우수한 형질이라고 여기는 유전자 위주로 후손을 만들게 되면 인류의 유전자 풀이 크게 줄어든다. 그러나 인간이 생존하는 환경은 항상 유동적으로 바뀐다. 따라서 어떤 환경의 변화가 있을 때 사람들의 유전자가 특정 시점에 한정하여 우수하다고 여겨진 형질들로만 이루어져 있을 때 인류는 생존에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시점에서는 뚱뚱한 형질이 열등한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그 '열등한' 유전자가 도태된다면 인류가 다시 기아에 빠지게 될 때 생존률이 크게 낮아지게 될 것이다.
우생학은 이미 역사적으로 큰 윤리적 문제를 일으켰다. 임의적인 기준으로 인간의 유전자에 대해 우열을 가린다는 점에서 태생적인 한계와 위험성을 내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시점에서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그것에 유사과학이라는 낙인을 찍어서 연구와 논의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그것은 우생학과 반인권, 전체주의, 국가주의가 결합했을 때 보인 부작용일 뿐이었다.
다만 우생학은 쉽게 때가 타는 옷감처럼 그런 부정적이고 위험한 사고와 정치체제들과 태생적으로 쉽게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더욱 깊은 연구를 통해 그 위험성을 통제하고 유용성을 취해 나가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자유, 차별 금지에 대한 정신을 내재화하여 우생학으로 초래되었던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