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국어사전에 있지만 저희나라는 국어사전에 없는 단어다.
저희 나라로 띄어쓰기를 해서 저희와 나라가 각각의 단어라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한다.
'저희 나라'는 한국어를 알지만 한국 국적이 아닌 사람에게 한국을 지칭할 때 또는 한국인이 아닌 사람이 자기 나라를 한국인에게 말할 때 쓰인다.
저희 나라는 한국인끼리는 사용될 수 없다. 저는 나의 1인칭 존대형이다. 나를 낮추어서 존댓말을 하는 것이다. 저희는 우리를 낮추어 존대를 하는 것인데 한국인끼리 있을 때 저희 나라라고 말하면 나뿐만 아니라 상대까지 낮추는 것이기 때문에 어법적으로 틀리다. 나와 당신의 나라는 언제나 우리나라로 써야 한다.
한편 외국인 앞에서도 저희 나라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이 국립국어원의 입장이다. 국가는 평등하기 때문에 낮출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외국인 앞에서 나의 나라를 한국어로 말하면서 나만 낮추려면 어떤 표현을 써야 할까.
수 십 년 경험이 누적된 원어민 입장에서 느끼는 언어 감각으로는 국립국어원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국립국어원의 주장이 올바른 것인지를 따지기 위해서 저희xx에서 낮추는 것은 '저희'인가 'xx'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주장을 논파하기 위해서는 반례를 찾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그래서 예문을 만들어 봤다.
"저희 스승님께서는 이곳에 친히 왕림하시어 몇 가지 하교를 내리시고 떠나셨습니다."
스승에 대한 공경하는 마음이 넘치는 표현이다. 이 문장에서 스승은 낮춰진 것일까?
A: 선생님, 저희 할아버지 보셨어요?
B: 내가 네 아버지를 형님으로 모시고 있는데 할아버지를 나한테까지 낮추면 어떡하니?
B의 지적대로 A는 B에게 할아버지를 정말로 낮춘 것일까?
두 가지 예문에서 '저희'는 '우리의'가 아닌 '나의'의 낮춤 표현이다.
따라서 우리를 낮추는 저희가 아니라 저의 스승님, 저의 할아버지라고 쓰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다만 외동 자녀가 '우리 엄마', 일부일처 부인이 '우리 남편'이라고 말하는 언중의 습관, '저희'가 '저의'를 사실상 흡수해버린 언어 환경에서 그런 표현은 실생활에서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것이다.
한편 스승님이 왕림하신 그곳에 같이 있던 제자가 여러 명이고 말하는 사람이 그 제자들 중 하나였다면 '저희'는 정확히 '우리의'의 낮춤 표현이다. 할아버지를 찾는 A가 동생들을 데리고 다니다가 B를 만나서 말하게 된 '저희' 역시 그렇다.
각 상황은 스승님과 할아버지를 낮추는 뜻이 전혀 섞이지 않았고 화자와 화자가 포함된 집단이 낮추어졌을 뿐이다. 이렇듯 저희xx에서 낮춰지는 것은 'xx'가 아니라 '저희'로 결론지어진다.
국가끼리는 평등하므로 낮출 수 없다는 국립국어원의 해설은 약소국 컴플렉스와 국가권위주의 강박으로 인해 답을 미리 정해 놓고 그 이유를 끼워 맞춘 것 같다는 의심이 간다. 그 입장에 따르면 이웃과 대화할 때 '저희 가족', '저희 집'이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이웃끼리는 상하관계가 없으므로 낮출 수 없기 때문이라는 말은 국립국어원의 해설과 논리적으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앞 예문의 A는 아버지인 C와 같이 할아버지를 찾는 중이다. C의 동생 격인 B와 다시 마주친다.
C는 B에게 "우리 아버지 봤는가?" 물어볼 수 있다.
한편 A는 B에게 "우리 할아버지 보셨나요?", "저희 할아버지 보셨나요?" 둘 중에 골라야 한다.
저희를 선택한다고 해서 할아버지가 낮추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B보다 높은 아버지도 같이 낮추어지기 때문에 어색하다.
우리를 선택하면 나를 낮추지 못했기 때문에 예의에 어긋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어느 것을 골라도 완벽하진 않기 때문에 고충이 따른다.
그러면 저희 나라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앞선 결론으로 저희 나라에서 낮추어지는 것은 나라가 아니라 저희이다. 저희의 범위가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나와 당신의 나라이다. 또는 나를 낮출 의사가 없을 경우는 당신을 제외한 우리의 나라가 되기도 한다.
'저희 나라'는 당신을 제외한 우리의 나라이다.
'저의 나라'는 나의 나라이다.
외국인을 상대로 나를 낮추면서 my country를 지칭할 때 어색하지만 항상 옳은 표현은 저의 나라이다. 나만 낮추기 때문이다.
내가 친구 몇 명과 해외여행을 하다가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면 '저희 나라'도 가능하다. 나와 친구들을 낮추어 외국인을 존대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임직원이 외국인 고객을 상대로 '저희 나라'라고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 회사의 구성원이 소속된 나라를 지칭하는 것으로 그 나라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구성원을 낮춰 고객에게 존대를 하는 것일 뿐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류 스타가 외국 취재진을 상대로 한국어로 말할 때 '저희 나라'도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저희의 범위가 자신과 일행 및 관계자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말하면 지탄의 대상이 되기는 한다.
그러나 색다른 상황을 상상해보면 좀 더 공감하기가 쉬워진다. 우리나라라는 말은 항상 한국인만 쓴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 국적 아이돌이 한국 팬들 앞에서 신년 인사를 하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여러분, 연초부터 와주셔서 감사드려요. 저희 나라는 음력 말고 양력 1월 1일이 설날이에요. 설날에 저희 나라 사람들은 친지들에게 연하장을 보내는 풍습이 있어요. 오늘은 제가 저희 나라 스타일로 여러분들께 드리는 연하장을 준비했어요. 끝나고 꼭 받아 가세요."
이 인사말에서 '저희 나라'를 '우리나라'로 바꾸면 "저 사람이 귀화를 했나?"라고 잠시 혼란을 느낄 것이다.
한편 저희가 한국 국민 전체를 범위로 하게 되는 경우는 시빗거리가 생길 수 있다. 한국의 외교 사절단이 다른 나라를 방문해서 '저희 나라'라고 말할 때 저희의 범주가 사절단에 한정되는 것인지 한국을 대표하여 한국인 전체에 해당하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한국인 전체 중에는 외국인에게 자신을 낮출 의사가 전혀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아버지와 동행중인 A가 아버지의 동생 격인 B에게 아버지를 낮추지 않으면서 자신만 어떻게 낮출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문제와 비슷하다. 저희보다는 우리가 그나마 나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느 것을 사용해도 뜻하는 바를 정확히 표현하기 어렵다. 다소 어색하지만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법상으로는 틀리지 않는 '저의 나라'를 활용하거나 객관적 표현인 '한국'으로 말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