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떤 국회의원이 자기 부친의 불법적인 땅 투기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자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자신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할 것을 요청했다. 그 기사를 보고 반사적으로 든 느낌은 "극단적 선택을 했군" 이었다.
일반적인 상상을 뛰어넘는 반응을 했으니 극단적 선택이란 말이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극단적 선택'이란 표현은 언제부턴가 '자살'과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만약 어떤 언론사가 "xxx의원 부친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극단적 선택"으로 기사 제목을 붙인다면 거짓말을 한 게 아닌데도 '패륜적' 또는 '선을 넘은 낚시'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여러 상황에서 두루두루 활용되기에 적절했을 '극단적 선택'이라는 어휘가 자살이라는 개념 하나에 일대일 대응으로 포획된 느낌이 들어서 아쉽다.
오늘은 "공인중개사 살해 후 극단 선택한 30대 남성, 왜?"라는 제목의 기사를 접했는데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살인이 자살보다 죄질도 나쁘고 빈도도 낮기 때문에 자살보다는 타인을 살해하는 게 훨씬 더 극단적인것 같은데 '살해'는 그대로 드러내고 '자살'은 '극단적 선택'이란 표현 뒤로 숨겼기 때문이다. 기사 제목을 아래처럼 뽑는 게 원래 제목보다는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일 것 같다.
"공인중개사에 대해 극단적 선택을 한 후 자살한 30대 남성, 왜?" 또는
"공인중개사에 대해 극단적 선택을 한 후 자신에 대해서도 극단적 선택한 30대 남성,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