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는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다. 어떤 시련에도 곧은 자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부러질지언정 휘지는 않는다.
올 봄에 대나무와 전쟁을 치렀다. 우후죽순이란 말처럼 봄에는 새 대나무 줄기가 끊임없이 무서운 속도로 뻗어 나온다. 주기적인 관리가 없다면 마당은 온통 대나무 천지가 되고 다른 나무들은 전부 대나무와 경쟁에서 도태될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해가 지날수록 죽순의 양이 점점 늘어나서 관리가 점점 어렵다고 느끼다가 우리 마당에서 대나무는 더 이상 공존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죽순을 파내는 것 뿐만 아니라 기존 대나무들도 제거해버리기로 했다. 뿌리까지 파내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라 땅 위의 줄기만 전부 낫으로 잘라버렸다.
그 날 당장은 마당에서 대나무는 퇴출된 것처럼 보였으나 며칠 후 굵은 죽순들이 또 다시 2미터 이상 높이로 올라온 것들이 눈에 띄였다. 죽순들을 보이는대로 쳐낼수록 새로 올라오는 죽순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더 이상 새 죽순은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양분을 제공하는 본진을 제거했기 때문에 굵은 죽순을 내보낼 힘이 없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의 결심으로 수 십년간 대나무와의 투쟁에서 최종 승리한 셈이다.
그렇게 당분간 대나무에 대해 잊고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당에서 새파란 대잎이 눈에 띄였다. 이미 잘라버린 대나무에 붙어있던 이파리는 전부 말라 비틀어졌는데 아직 살아있는 대나무에 붙어 있는 것이었다. 이파리를 당겨보니 바닥에 누워있던 1년생 잡초 정도 크기의 대나무 줄기가 딸려나왔다. 대나무의 땅속 줄기가 마지막 생명력을 쥐어짜서 땅위로 뻗어낸 줄기였다. 땅바닥을 기는 듯한 모양이 마치 담쟁이 같은 덩굴식물 같아 보였는데 지조와 절개라는 기존 이미지와는 아주 상반되게 느껴졌다. 잘라냈다. 그런데 마당 구석구석을 보니 그렇게 땅바닥을 기고 있는 덩굴 같은 대나무 줄기들은 여기 저기 흩어져 사람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눈에 띄는 대로 잘라냈다. 혹시 눈에 띄지 않은 줄기가 있더라도 겨울에 푸른 잎은 눈에 잘 띄기 때문에 겨울이나 초봄에 잘라내면 된다.
극단적 탄압 앞에서는 꼿꼿한 대나무도 땅바닥을 기게 된다는 사실을 실제로 목격한 흥미있는 경험이었다.
한편 갈라지기 시작한 대나무는 파죽지세이고 쪼개진 대나무는 상당히 잘 휘어서 죽부인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는 점도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