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부터 식수로 차를 끓이지 않고 2리터 생수를 인터넷으로 대량 주문해서 마시고 있다.
그러다보니 하루에도 최소 2병 가량 빈 페트병이 생기고 꽤 많은양의 페트병들을 버리곤 한다.
페트병은 쓸모가 많은 물건이다. 쌀이나 잡곡, 미숫가루를 보관하기도 하고 애매한 액체들을 보관하거나 선물할 때 아주 유용하다. 버리지 않는다면 일이년 정도는 거뜬히 쓸만해 보인다. 어찌보면 내용물인 생수보다 빈 페트병이 더 가치있는 물건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가볍고 비교적 튼튼하고 기밀성도 좋아서 무인도에 표류할 때 패트병이 한 두개 있으면 생존 가능성이 다소 높아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물건 자체의 내재적 가치 또는 잠재력은 좋지만 필요에 비하여 밀려드는 물량을 감당할 수 없어서 버릴 수 밖에 없다. 다음과 같은 상용구가 연상된다. "귀하께서는 뛰어난 자질을 갖추셨으나 한정된 인원을..."
운이 좋게 적절한 시기에 들어온 몇몇은 간택되어서 몇 달간 쌀이나 술, 약재, 기름 등을 보관할 기회를 얻기도 하지만 보관중인 내용물이 소진되면 또 다시 버려지는 위기를 맞게 된다. 또는 생수병보다 내구성이 좋은 비슷한 사이즈의 탄산음료병이 생기면 물건을 보관하는 지위를 박탈당하고 조기은퇴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