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언론사들이 지식인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올해의 사자성어를 뽑는다.
대체로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한자성어가 꼽히는데 객관식 문제처럼 미리 주어진 예시들 중에서 하나를 뽑는 형식이 아니라면 무수히 많은 사자성어 중 그런 생소한 것을 고른 지식인이 몇 명이나 겹칠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예컨대 조사대상 지식인이 1,000명이고 지식인 각각이 생각한 사자성어가 다채로워서 1등으로 꼽한 사자성어가 3표 2등이 2표라면 1,000명 중에서 3표를 받아 선정된 1등 사자성어에 1,000명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다. 그리고 만약 설문자가 미리 10~20개 내외의 예시들을 미리 만들어서 설문 대상 지식인들에게 그 중에서 고르게했다면 설문자의 의도가 강하게 개입된 셈이므로 그것이 선정된 지식인들의 의견을 대표한다고 하기에 적절치 않다.
그건 그렇고,
내가 보기에 거의 매년 그 해의 사자성어로 뽑힐 수 있는 것은 내로남불이다.
내로남불은 자신에게만 관대한 이중적인 태도이기 때문에 비웃음내지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나름의 순기능도 있다.
내로남불이 이중적이라서 싫다면 내불남불 또는 내로남로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있다. 그런데 내불을 인정하는 인격자는 흔치 않고 그런 인격자중에서 내불을 저지르는 사람은 더욱 드물 것 같다. 그러면 내로남로가 남는다. 그런데 내로남로 관점으로 잘못에 대한 비판을 중단하면 불륜이 용서받는 세상이 된다.
내로남불이 내로남로보다 일견 추하고 더러워 보이지만 나쁜 행위를 비판, 견제하는 기능이 남아있다는 점은 그나마 인정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