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권과 자유

낙서 2016. 11. 1. 15:06

중국에 36테라 용량을 제공하는 업체가 있었다.

그 업체를 발견한 때는 태국 홍수로 인해 하드디스크 가격이 몇년 째 고공행진중이었던 시기였다. 2테라 하드디스크가 15만원 정도 되던 시절이라 36테라면 270만원 정도 가치가 있는 저장 용량이었다.

게다가 클라우드 서비스의 특성상 갑작스런 하드의 돌연사 등 개인적 차원에서 겪을 수 있는 재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엄청난 용량을 제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대부분의 대용량 데이터는 동영상이나 사진 음악 같은건데 그런 데이터는 대체로 출처가 정해져 있어서 대부분 사람들은 중복되는 데이터를 저장한다.

예를 들어 A라는 사용자가 anoxmous 릴그룹에서 릴리즈한 약 2기가짜리 위대한 독재자(찰리채플린 1940년 작품) 1080p mkv 파일을 이미 업로드했다면 B, C, D, E~Z 25명이 같은 파일을 올릴 때 서버에서는 파일의 해시값을 보고서 그 파일을 업로드 받지 않고 서버에 저장되어있는 다른 파일로 링크시켜주는데 그렇게 하면 실제로 사용되는 서버 스토리지용량은 1/26이고 약 50기가를 절약할 수 있다.

실제 사용자는 중국 인구를 감안했을 때 사용자는 수천만명 단위일테니 실제로 업체에서 절약할 수 있는 용량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일 거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업로더 입장에서도 긴 업로드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 파일을 저장할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식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하드디스크를 돈내고 구입할 필요는 없을 거란 생각에 빠진채로 한동안 그 서비스를 즐겼다. 하지만 리스크가 있었다. 상대는 공산주의 독재국가인 중국이었다. 중국 정부는 사용자의 온라인 스토리지 내부에 들어있는 데이터를 검열했다. 당국과 업체는 패스워드도 없이 사용자들의 자료에 접근하여 열람하고 삭제했다. 단순히 음란물 뿐만아니라 자신들의 입맞에 맞지 않는 내용의 데이터 역시 삭제해버렸다.


수많은 AV파일들이 삭제되었다. 그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더라면 잃지 않았을, 다시 구하기도 어려운 파일들이 어느 날 갑자기 파일명만 남긴 채 접근할 수 없는 상태로 변해버렸다. 사람들은 갑작스런 재앙에 경악하긴 했지만 곧 현실을 받아들이고 대응책을 찾았다. 수억개의 계정을 상대로 검열을 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이 업로드한 파일이 다른 사람들이 올린 것과 링크가 되지만 않는다면 데이터를 은닉하는 것이 가능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파일에 약간의 문자열을 추가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자신의 데이터를 숨겼다. 또는 동영상의 내용은 그대로 두고 파일 컨테이너만 바꾸거나 초반 또는 후반부의 몇 초 정도를 자르고 재인코딩을 하는 방법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런 방법으로 당국의 검열로부터 자신의 데이터를 지켜내려 했다. 이 방법은 실효성은 있었지만, 업체 입장에서는 모든 사용자의 데이터를 각각 저장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용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켰다. 예전에는 1~2기가만 사용하면 특정 파일을 모든 회원들이 저장할 수 있었으나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회원을 상대로는 회원 수만큼의 곱한 용량이 필요했고 트래픽 역시 그만큼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업체는 업로드 속도에 제한을 걸고 하루에 할 수 있는 업로드 용량을 2기가 정도로 제한하는 등 일반 사용자에 대한 페널티를 부과하여 업로드를 제약했다. 그런식으로 업로드가 가능하긴 하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업데이트 해 나갔다.


그러다가, 서비스 유지비용 때문인지 당국의 압력인지는 이유는 확실치 않으나, 돌연 서비스 중단을 선언하고 업로드 된 데이터를 모두 회수해가라는 공지를 띄웠다.

사용자들은 파일들을 회수해야 했는데 가지고 있던 하드디스크의 용량이 모자란 경우는 하드디스크를 새로 구입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이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구입해야 했을 하드디스크였군. 이런 서비스가 애초에 없었다면 소중한 데이터를 날리는 끔찍한 경험을 하지 않았겠지. 하드디스크가 비쌌던 시기에 하드디스크를 구입하지 않고 구입을 유예시켜줬으니 그래도 없었던 것 보다는 나았다고 볼 수도 있으려나.


올려 놓은 파일들 중 회수가 필요한 것들을 받으려고 하니 동기 오류라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메시지와 비현실적인 다운로드 속도 제한으로 그 파일들을 순순히 내 놓지 않는다. 데이터를 공짜로 저장해 준 것이 아니라 몇년에 걸쳐 서서히 제거해 준 셈이다.


아무튼 자신이 비용을 들여 구입한 하드디스크에 들어있지 않은 데이터는 자신의 지배권하에 있다고 볼 수 없는 듯 하다. 데이터를 보관하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자기 소유 재산인 하드디스크 뿐이다. 다른 이와의 약속은 그가 아무리 겉보기에 믿음직해 보이더라도 언제든 깨질 수 있는 허망한 것이기 때문에 온전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자기 지배 하에 있는 자기 재산을 이용하는 방법 밖에 없다.

Posted by 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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