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마당놀이

낙서 2015. 11. 1. 01:40

얼마 전 영화 배테랑을 봤다. 작년쯤부터 흥행에는 성공하지만 재미는 없는 국산영화들만 쏟아져나와서 아쉬웠는데 배테랑은 흥행에 성공했을 뿐만아니라 평론가 점수까지 높아서 보기 전에 기대를 많이 했다.


도입부는 제법 흥미진진했는데 뒤로 갈수록 어디선가 마르고 닳도록 봐 온 것 같은 이야기만으로 흘러가서 실망스러웠다. 이제 한국 영화의 플롯은 모듈화 생산이 되어버린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죄 지은 놈이 벌을 받기는 한다. 러시아 영화 리바이어던은 일개 시골 동네 시장이 아무런 제한 없이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데 우리나라가 러시아보다는 선진국인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좋은 고기는 소금 간만 해서 구워도 맛있는 법이다. 재벌 까기와 권력형 비리에 대한 비판 클리셰만 가득찬 진부한 영화임에도 평론가 점수가 높은 이유는 아마도 그 소재 자체가 그들의 입맛에 잘 맞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영화는 일종의 마당놀이 같다. 봉산탈춤에 나오는 욕심 많고 허세나 부리는 바보 같은 양반 삼형제는 양반을 희화하고 풍자하기 위해서 만든 캐릭터일 뿐이다. 실제로 그 당시 양반들이 말뚝이에게 휘둘리는 탈춤 캐릭터 마냥 어리숙하지는 않았고 개중에는 평생 유학을 공부하며 인격을 닦은 훌륭한 양반들도 많이 있었을 거다.


봉산탈춤의 창작자는 양반 계층의 부정적인 면만을 극대화시킨 캐릭터를 내세워서 마당놀이로 승화시켰다. 마당놀이를 보면서 이렇게 멍청하고 천박한 양반이 어딨느냐고 비판을 하는 것은 마당놀이를 감상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풍자가 주제인 작품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얼마나 반영했는지를 따지기보다는 작품성 자체를 평가하는게 낫다고 본다. 그리고 풍자의 대상이 된 계층에 속한 사람은 불쾌해 하기보다는 이렇게 받아들이면 된다.


"저런 사람도 있나?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인데 만든 사람 상상력이 풍부하군."

Posted by 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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