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인 봉사활동은 동물원에서 철창 안으로 과자를 던져주고 그것을 받아 먹는 동물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행위와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다. 보다 보람있는 활동을 위해서는

무엇을 위한 봉사인가

누구를 위한 봉사인가에 대한 뚜렷한 목적 의식이 필요하다.


첫번째 질문인, 무엇을 위한 봉사인가에 대한 답은 '사랑의 실천'이다.


누구를 위한 봉사인가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한편으론 간단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복잡하다. 봉사의 수혜자는 봉사하는 자 자신과 봉사를 받는자다.


일단, 봉사자 자신은  항상 수혜자가 되는 사람이다. 자발적 봉사라면 뿌듯함을 느낄테고 비자발적 봉사(진학 또는 취업용 스팩만들기, 사회봉사명령 등)였더라도 다른 종류의 이익이 생기기 때문이다.


봉사 받는 사람 역시 수혜자이다. 단, 진짜 봉사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리는데는 생각을 약간 해 볼 필요가 있다. 일단, 우리에게 따뜻한 마음이 생기게 한 불쌍한 사람이 항상 봉사의 수혜자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주말에 양로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러 가서 하루종일 빨래만 하다가 돌아왔다면 그 봉사가 노인들을 위한 것인가 라는 의문을 가져볼 만 하다. 굳이 휴식을 포기하고 봉사를 하지 않았더라도 노인들의 이불과 옷은 깨끗이 세탁되었을 것이다. 봉사자가 나서지 않았더라도 그게 양로원이 원래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봉사의 수혜자는 노인들이 아니라 업무량이 줄어서 휴식시간이 늘어난 양로원 직원이다. 혹은 업무가 줄어듬에 따라 직원 수를 줄여서 인건비를 절감한 시설 운영업자가 봉사의 수혜자가 되기도 한다.


노인들이 봉사의 수혜자가 되기 위해서는 시설 고유의 업무가 아닌 직원이 대체할 수 없고 봉사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게 맞다. 예를 들면 위문품을 사서 나눠주거나 말벗이 되어주거나 시설에서 제공하지 않는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일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생전 처음 본, 그리고 다시는 안 볼 것 같은 사람이 갑자기 찾아와서 말벗을 해 준다고 하면 어지간히 외롭지 않은 이상 반갑게 맞이하기 어렵다. 그런 일들은 봉사자와 피봉사자간의 인간적 친밀감과 관계된 일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계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효과적이지 않다.

만약 반복적인 만남으로 노인들과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다면 이후에는 노인을 만나서 돌봐주는 것이 봉사를 한다기 보다는 친구를 찾는 일과 비슷해 진다. 친분을 쌓고 지속적인 만남을 가지는 것이 진정한 봉사에 가까워지는 길이긴 하지만 '좋은 일 하려고 내가 시간을 내서 당신들을 만나준다'는 비대칭적 구도이기 때문에 평등을 전제로 하는 진정한 우정으로 발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불평등한 관계에서 비롯되는 그런 한계가 바로 '사랑의 실천'의 본질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Posted by 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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