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자각몽

낙서 2013. 11. 29. 16:25

자기 전에 TV로 당구 대회 중계방송을 봤다. 잠이 들고 나서 당구를 치는 꿈을 꿨다. 실재하지 않는 인물이 내 친구로 설정되어 나와 당구를 치고 있었다. 나는 당구를 잘 못치지만 그 꿈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공이 예상과 다르게 나갔다.

나는 그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당구공이 왜 계속 이상한 방향으로 나가는지 아냐? 당구대가 미세하게 기울어져 있고 당구공 크기가 각각 서로 다르기 때문이야. 이것 보라구"

그 녀석은 내게 말했다.

"어떻게 당구공 크기가 다를 수 있지?"


나는 그 때 순간적으로 깨닫고 대답했다.

"꿈이니까 그렇지"


오랜만에 자각몽을 즐길 수 있게 되어 기뻤다. 다만 그 부작용을 알기에 온전히 즐기기 어려울 것 같다는 불안도 들었다.

http://b-613.tistory.com/247

꿈인 걸 깨닫고 나니 그 녀석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 말을 할 뿐이었다.

갑자기 외로워졌다.

치던 당구를 마저 칠까 생각했지만 공은 틀림없이 내가 생각한 길대로만 굴러갈 것 같았다.


실내가 답답해서 밖에 나가고 싶었다. 출입구를 통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영화같은 화려한 특수효과는 없었고 그냥 주변이 바뀌었다. 그런데 그 바깥 풍경은 내가 떠올렸던 바깥 이미지와 사진찍은 것같이 똑같은 모습이었다. 이런 풍경을 만들어야지라고 생각을 한 건 아니었는데 안타까웠다. 나는 활동하는게 아니라 단지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꿈인 것을 알아 차리긴 했지만 나는 자유롭지 못하고 내 생각 자체에 갇혀버리게 되었다. 내가 생각을 멈추면 흰 공간만 남았다.


'자각몽이 오히려 재미 없군. 공짜로 엉터리 당구나 실컷 치는게 나을 뻔 했어'라고 생각하며 흰 공간에서 멍하게 서있었다. 간밤 꿈에 대한 기억은 거기까지다.

Posted by 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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