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램프

낙서 2013. 11. 7. 20:03

그는 알라딘의 초대를 받았다. 초대 받은 용무가 끝나자 알라딘은 그를 밀실로 데리고 가서 우정의 표시로 마법의 램프를 내밀고 한번 문지르기를 권했다. 램프를 문지르니 정령이 나타나서 소원을 한가지 들어주겠다고 했다.


갑작스럽게 정령을 만나 소원을 말하게 되어서 당황했다.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지만 단 한 번 뿐인 기회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돈이 많이 있으면 그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금화 1000개가 들어있는 황금항아리 10개를 집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정령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소원은 한가지만 들어드리기로 했는데 여러가지 소원을 한번에 이루려고 하시는군요. 차라리 램프를 하나 달라고 하시지 그러셨어요? 그런 건 안됩니다."

그는 거듭된 실패로 의기소침한 상태였고 고된 일상에 불만이 많았다. 엉망이 되어 버린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풀어가기 위해 개선해야 할 만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현실에 직면한 고통들이 너무 많았다. 한가지 소원만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쾌락을 추구하는 것 보다는 고통 회피 쪽으로 생각하는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고통이란 주관적인 것이고 소원은 구체적으로 한가지만 말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고통을 없애 달라는 식의 요구는 불가능했다.

이룰 수 있는 소원이 구체적인 딱 한가지이기 때문에 '오늘 밤 잠이 들면 다시는 깨어나지 않았게 해달라'고 요청하는게 가장 효과적일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그것을 말리려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만을 위한 하나의 기적이 펼쳐지려는데 죽여달라니 좀 웃기지 않나?'


그래서 그는 한참 망설이다가 좀 더 생각해 보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알라딘에게 다음에 다시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 한참 망설이던 것을 기다리다가 지루해진 알라딘은 심지를 한개 건내주면서 이 아무 램프에나 그 심지를 꽂고 불을 댕기면 정령이 나타나서 소원을 한가지 들어줄 거라고 말했다. 그렇게 심지 한개비를 넘겨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어떤 소원을 말하는 게 좋을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하루 하루 희망이 넘쳤다. 다행히 기적을 필요로 할만한 위기는 그동안 없었다. 고단한 일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 그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청산해버릴 수 있을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원을 이루고 나면 지금 즐기고 있는 행복한 고민 상태가 끝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떤 소원이 좋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소원을 말하기를 계속 미루게 되었다. 세월은 흘러갔다.


그가 끝내 불을 댕기고 소원을 말해서 그것을 이루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그 심지는 마법의 심지가 아니라 지루해진 알라딘이 우유부단한 손님을 빨리 돌려보내기 위해서 그냥 건내준 평범한 심지였을 수도 있다. 다만 그가 불을 붙이기 전까지는 현실을 단숨에 역전시킬 수 있는 든든한 한방을 가지고 살았기에 더 이상 불행하지 않았다. 촉매란 자신은 변화하지 아니하면서 다른 물질의 화학 반응을 매개하여  영향을 미치는 물질이다. 만약 그가 끝까지 심지에 불을 댕기지 않았더라면 마법의 심지는 그의 인생에 활력을 불어넣는 촉매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사는 이유를 찾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다면 램프의 정령을 생각해 보는건 어떨까 싶다. 정령에게 '이제 그만 죽여줘' 라는 부탁을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소원을 말 할 것인가. 그 다른 소원을 사는 이유로 생각해 보는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정령에게 기적을 부탁하는 것 보다 스스로 그것을 이루려 노력하는 것이 사는 이유로서 더 가치있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은 '왜 사는가'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로의 전환점이 된다.

Posted by 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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