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히로라는 배우

낙서 2013. 2. 24. 16:37

미히로는 은퇴한 일본 av배우이다. 성인업계를 은퇴하고 나서 일반 연예계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네이버 영화에서 검색을 해보면 성인물이 아닌 일반 영화에도 몇 차례 출연했던 걸 알 수 있다.

 

미히로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떤 유머 게시판에 읽었던 미히로와 루카와 리나의 서울 여행이라는 글에서였다. AV배우가 아닌 젊은 일본 여성 관광객의 입장으로 찍은 영상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루카와 리나는 워낙 예쁘고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미히로는 초면이었다. 댓글들을 보니 사람들이 루카와 리나보다는 대체로 미히로에 대해 관심을 나타냈다. 인기리에 현역으로 활동 중인 배우가 아닌, 나이 많고 은퇴한 배우에 대한 관심이 더 큰 것을 보니 미히로가 얼마나 유명했는지, 전성기 모습은 어땠을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러나 나에게 그녀의 작품은 없었다. 그녀의 얼굴은 예전에 봤던 기억이 없었고 하드디스크에 남아 있는 파일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은퇴 전에 했던 활동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검색어를 넣어보니 키스 참기 대회라는 동영상들이 검색되었다. 바보같이 분장한 일본 개그맨을 상대로 예쁘장한 아가씨가 키스해달라고 간청하고 애교를 부리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섹시한 척을 하며 유혹하는 모습이 귀여웠고 그녀에 대한 호기심은 더 깊어졌다. 한편 저런 말괄량이 같은 얼굴로 끈적한 AV를 찍어봤자 과연 어울리기나 할까라는 의구심도 생겼다.

 

좀 더 검색해보니 누드라는 제목의 영화가 나왔다. 포스터에는 일본의 국민적 av배우 미히로의 충격의 자서전 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국민적이라고 하는 걸 보니 유명하긴 했나 보다.

그런데 그 영화 포스터에 등장한 주인공 얼굴이 꽤 예뻤다. 제목이 저 모양이니 틀림없이 저 예쁜 여배우가 적나라하게 몸매를 드러내는 장면을 볼 수 있겠구나 라고 들뜬 기대를 하면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경로를 찾아내서 볼 수 있었었다. 막상 영화를 보니 기대했던 장면들이 있긴 했지만 예상했던 만큼 수위가 높거나 빈도가 많지는 않았다.

 

영화는 AV배우가 아닌 히로미라는 인간으로서의 솔직한 모습을 소녀적 감성으로 보여주었다. 졸업 후 시골에서 상경한 히로미는 평범한 직업에 종사했는데, 연예인이 되고 싶어했고, 길거리 캐스팅으로 그라비아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매니저는 그녀를 조금씩 꼬드겨서 점차 수위가 높은 촬영을 하게 했는데 그녀는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고 즐기듯이 일했지만, 가장 친한 친구는 미히로의 노출 화보에 대해서 주변사람들이 수근대는 걸 보며 히로미를 걱정했다. 모델로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기자 소속사의 주선으로 정상적인 연예계에 데뷔할 면접 기회를 딱 한번 맞이했는데 긴장을 해서 재미 없는 대답만 하다가 어이없게 그 기회를 놓쳐 버렸다. 그러고 나서 그라비아 및 누드 모델로서 인기가 시들해지자 소속사는 팬들이 더 이상 그녀의 벗은 몸만을 보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지 그녀와 잘나가는 AV 제작자와 면접을 주선했다. 미히로는 노출이 심한 비디오 영화까지는 출연한 경력이 있었지만 AV는 거부감 때문에 결정하기를 주저했다. 당신 같은 여자는 흔하고 계약을 하든 말든 별 관심 없다는 심드렁한의 프로듀서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러자 매니저는 또 다시 히로미를 꼬드겼다.

매니저는 영화에서 "우리는 절대 강요하지 않습니다."라고 두차례 말하는데 그것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인 듯 했다. 첫번째는 에이전트로서 히로미를 길거리 캐스팅 할 때였고 두번째는 어떤 아버지가 딸이 AV를 찍은 사실을 알고 격분해서 사무실로 항의차 찾아왔을 때였다. 

 

강요는 안했다지만 결국 끈질기게 구슬렀고, 히로미 역시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넓지 않아 보였다. 이미 인기가 시들해졌기 때문에 제안을 거절한다면 소속사에서 방출이 되든지, 그 동안 하던 일을 지속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녀가 내린 결정에 동의하진 않지만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에 대해서는 일면 공감하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가파른 비탈에 있는 갈림길에서 발을 헛디뎌 미끄러져 내려가는 느낌이랄까.

세상엔 공짜가 없다. 사는 건 원래 고되고 연속된 선택의 결과이다. 그나마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내가 무엇을 가졌을 때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무엇을 내 놓아야 한다. 운이 따르지 않거나 역량이 부족하다면 그러고도 잘 안될 수도 있다.

 

요즘은 야한 컨텐츠가 너무 흔해져서 음란한 영상이나 사진 등에 대한 희소성은 없어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누군가가 벗었다는 자체에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얼굴이나 몸매가 평범하거나 그 이하인 사람의 영상은 널리 번지지 않고 오래 기억되지도 않는다. 넘쳐나는 다른 영상들 때문에 보는 시간 자체도 아깝게 느껴질 정도의 취급을 받는다. 자기 나름대로는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심정으로 수치심에 몸부림치며 그 '작품'을 찍어 봤었겠지만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 받은 것이다. 심지어 못 볼 것을 봤다든지, 눈만 버렸다는 악평이 뒤따르기도 한다. 사람들의 관심을 얻거나 지속시킬만한 매력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빠르게 잊혀져 버린다. 그 분야도 나름의 경쟁이 치열해서, 세련된 제작 노하우와 넓은 홍보 수단과 판매망을 자랑하는 대형 제작사와 계약하려 한다면 데뷔는커녕 오디션 단계에서 탈락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자존심과 눈높이를 더 낮춰 당장 돈이 필요하니 아무거라도 찍어보겠다고 나서면 돈도 별로 벌지 못하면서, 훨씬 더 치욕적이거나 험한 일을 당하고 인간으로의 존엄에 회복이 어려운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AV에 출연하겠다는 결심은 아무리 비장한 각오를 다진 결과더라도 대중에게 있어 숱하게 많은 '네 사정'들 중 하나일 뿐이다. 없는 시간을 쪼개어 몇 주 동안 정성껏 접은 종이학 천마리는 누군가에겐 애물단지일 수도 있고, 혹은 부담스럽지조차 않은 쓰레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

미히로는 주류 연예인이 되기엔 다소 모자랐지만 다행히 AV로 성공할 정도로는 예뻤고 그 방면에 재능도 있었다. 그래서 야한 컨텐츠의 홍수 속에서도 까다롭고 심드렁한 대중을 매료시켜 팬 층으로 만들고 당당히 최고의 스타가 될 수 있었다.

 

자기가 원했던 길은 아니었지만, 미히로는 자신의 재능이 사회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는 분야에 활약하게 되었고 다행히 꽤 성공적으로 활동하다가 은퇴했다. 다행이라 여긴 이유는 운이 따르지 않거나 역량이 모자랐다면 별 다른 소득 없이 만신창이가 된 마음만 남기면서 끝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찾아보니 너무 난잡하거나 변태적인 작품은 피하면서 나름 소신껏 활동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팬들로부터 인기만 믿고 비싸게 군다든지 프로 의식이 부족하다든지 몸을 너무 사린다라는 빈축을 사곤 했다고 한다. 그녀가 정말 원해서 선택한 일은 아니었고 그 일 때문에 가장 친한 친구와 사랑하는 남자를 잃었지만,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만져볼 수 없었을 돈과 인기를 얻게 되었다. 또한 그 선택은 정상적인 연예계 진출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주기도 했다. 다만 연예계 데뷔에 두번째 기회를 준, 화려했던 AV배우로서의 커리어는 주류 연예인으로 성장하는 데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네이버 영화에서 확인한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초라하다.

 

그녀가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했던 전성기 작품들을 보면 그녀가 보여줬던 매력의 정수를 확인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워낙 유명해서인지 어둠의 경로에서 이름만 넣고 검색을 했을 뿐인데 어렵지 않게 오래된 파일 몇 개를 구할 수 있었다. 화면이 HD 규격인 16대9가 아니라 4대3 비율인 작품도 섞여 있어서 활동 시기가 예전이란 점이 상기되었다. 내가 그녀에 대해 알게 된 예능 영상에서 봤던 모습처럼 이 작품들에서도 그녀는 생글생글 잘 웃는다. 너무 잘 웃어서 촬영을 즐기는 것 같아 보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필름이 돌아갈 때는 항상 밝게 웃는 얼굴이지만 마음 속까지 그랬던 건 아니었다는 속사정을 알면서 보니까 기분이 묘했고, AV에도 '배우'와 '연기'라는 말이 명목상으로만 붙는 말 만은 아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난기가 가득한 귀여운 얼굴을 보니 마치 아는 동생 같아 보였다. 그러다가 AV의 목적에 충실한 본격적인 장면이 나오기 시작하자 어색해서 보기가 불편해졌다. 다소나마 인간적인 이해 또는 연민이 깔려서인지, 친한 여자 동생이나 동료가 옷을 갈아 입는 걸 훔쳐보면 안된다는 도덕감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얼핏 위선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불편한 마음이 없으면서 겉으로만 불편한 척 한 게 아니었으니 적당한 단어는 아닌 것 같고, 이른바 현자타임에 어울릴만한 느낌이었지만 오랜 세월과 많은 경험으로 그런 감정은 이미 오래전에 무뎌져 버린 상태다. 게다가 현자타임의 성립 요건을 충족시키지도 않았는데도 그런 생각에 빠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냥 일시적이지만 자연스러운 감정인 것 같다.

어쨌거나 내 관점에서 그녀는 옷을 벗고 신음을 낼 때 보다는 옷을 제대로 입고 웃고 있을 때나 자막이 달려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을 수 있을 때가 훨씬 보기 좋았다. 늦게나마 알게 된 그녀의 성공적인 은퇴를 마음 속으로 축하하고 그녀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바라본다.

 

이런 감정과는 상관없이 이번에 구한 파일들의 소장 가치를 냉정하게 평가해본다. 그녀의 전성기 모습은 현재도 업계의 평균 이상은 되어 보인다. 그러나 한 시절을 풍미한 배우이고 활동 당시엔 얼굴만 믿고 비싸게 군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점이 썩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AV배우들의 외모 수준이 예전보다 높아진 현재 시점에서 순수하게 미모만으로는 큰 소장 가치가 없어 보인다.어쩌면 다른 대부분 사람들 눈에는 엄청나게 예뻐서 레전드 취급을 받는데 내 눈에만 그저 그런 수준으로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 하드디스크의 여유 공간은 유한해서 모든 자료를 보관할 수는 없다.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그 공간은 그녀보다 더 예쁜 그녀의 후배들의 몫으로 남겨놓는 게 나을 듯 하다. 우연히 발견한 예능 프로그램과 자전적 영화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생겨난 그녀에 대한 연민 내지 인간적 호의가 섞인 감정과는 관계 없이, 이번에 입수한 그녀의 작품들을 하드디스크에 오래 남겨 놓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편 영화에서 미히로 배역을 맡았던 와타나베 나오코라는 배우는 미히로와는 달리 귀엽다기보단 우아한 이미지라 미스 캐스팅 같았는데 그래도 미히로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 제목에 혹하긴 했지만, 영화 포스터에 실린 얼굴만으로 영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본의 웬만한 스타급 배우들과 비교해도 외모면에선 별 손색이 없는 것 같다. 영화상에서 투샷으로 잡힌 모든 여성들을 오징어가 된다. 특별출연한 미히로 본인은 다행히 제대로 된 투샷을 피하고 비교하기 어려운 각도로만 찍혀서 오징어를 면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렇게 예쁜데도 전혀 유명하지 않고 필모그래피도 초라하다. 배우는 연기력이 가장 중요하다지만 대중적 인기를 얻기 위해서는 수려한 외모도 연기력 못지 않게 중요한 자질이다. 물론 외모와 인기가 반드시 비례하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미모가 상당한 수준이면 톱스타까지는 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인지도가 생기기 마련이다. 상당히 예쁜 무명 연예인이 눈에 띄면 사람들은 참신한 얼굴이라 생각하고, 저 사람이 누굴까 궁금해 하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대중들에게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고 스타로 성장할 기회도 생긴다. 그러나 무명에 가까워 보이는 그녀의 현재 위상은 화려한 미모와 대비되어 자연스럽지 않은 느낌이다.

 

김태희가 신인 시절에 노란 드레스와 왕관 차림으로 찍었던 국민은행 광고가 기억난다. 한 두 살 어린 전지현과 송혜교는 이미 히트작을 한 두 편 찍고 광고계에서 A급 모델 대접을 받는 떠오르는 별이었다. 그 때는 저렇게 예쁜 모델이 왜 무명일까 의아했다. 진흙 속의 진주일까 아니면 단지 내 눈에만 예뻐보이는걸까 약간 헷갈렸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그 때 거의 처음 나왔기 때문에 유명하지 않은 상태일 수 밖에 없었을 뿐이었다. 아무리 예쁘고 자질이 뛰어나도 신인 연예인이 유명해지는데는 시간이 약간 필요했다. 하지만 그 시절의 김태희와는 달리 이 영화를 찍은 해인 2010년에 와타나베 나오코는 그리 어리지도 않았고 신인도 아니었다. 업계 관계자들에게 발굴되거나 영화나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하더라도 대중에게 매력이 발견될만한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 것 같은데 아직도 인지도는 상당히 낮은 것 같다.

 

내가 그녀를 본 유일한 매체는 이 영화이고 출연했던 당시 27세였다. 상투적 표현을 빌려 순정 만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 상당히 예쁘긴 하지만, 똑같이 27세였던 시절의 김태희만큼 독보적이거나 상상력을 뛰어 넘을 정도로 예쁘다고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아라가키 유이, 이시하라 사토미, 전성기 시절의 토다 에리카 같이 일본의 정상급 여배우들 중 몇몇은 그녀보다 예쁘다. 비록 손가락에 꼽을 수준의 미모는 아니지만 무명에 가까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인기를 누릴만한 잠재력은 보인다. '성진국 예능'에 출연해서 험한 꼴을 당하는 고만고만하게 예쁘장한 연예인 지망생들과는 달라 보인다. 아직 그녀의 진가를 알아준 사람이 거의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낭중지추' 라는 말이 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가 대중들의 관심을 받아보지 못하고 이런 영화까지 찍을 정도까지 중심으로부터 밀려나게 되었을까 궁금해졌고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녀에 대해 아는 건 오직 이름 뿐이고, 이름을 검색해봐도 생년월일과 몇 장의 사진, 조연이나 단역으로 등장한 몇 안되는 출연작 목록만 건질 수 있을 뿐이었다. 그 외에 대부분의 검색 결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시마 과장'처럼 주변 여자들을 다 건드리고 다니는 '와타나베'와 애매모호한 태도만 기억에 남는 간잽이 '나오코'뿐이다. 매니저 역을 맡은 낮익은 중견 배우인 미츠이시 켄 뿐만 아니라 친구 역을 맡은 오징어로만 보였던 사츠카와 아이미 역시 와타나베 나오코보다 훨씬 인지도가 높은 배우란 걸 검색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이 영화는 그녀가 주연을 맡았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고 그 이후 아직 대중의 관심을 끌만한 변변한 후속작도 찍어보지 못한 것 같다. 신인 여배우의 노출만로 화제를 끈 수많은 고만고만한 영화들이 있었다. 작품이나 영화라는 말이 과분한 그런 영상을 찍은 여배우들은 인지도를 높여서 한단계 성장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이름을 알렸다기보다는 오명을 남기며  그 쯤에서 소모되어버리곤 했다. 인지도가 생기는데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미 나이가 적지 않아 시간은 이제 그녀의 편이 아니다. 몇 년 지나 미모가 서서히 사그라지기 전에 배우로서 성공해서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못하면 돈도 인기도 변변히 얻지 못하고 재능을 펼쳐보지도 못하다가 주연이란 허울로 이미지를 소모 당해버리고 잊혀진 일회용 배우로 남게 될 텐데, 그러기엔 그 자질이 아깝기도 하고, 비록 스쳐가는 타인의 인생 중 한 단면일 뿐이지만 안타까운 여정이란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미히로 역을 소화하면서 자기의 실제 처지와 맡은 배역이 어느 정도는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더 실감나는 슬픈 눈빛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망상을 해 본다.

 

지금까지 추세로 봤을 때 큰 이변이 없는 한 그녀가 배우로서 성공할 가능성은 낮은 듯 하다. AV 데뷔할만한 나이는 한참 지났으니 연예인으로서 비전이 없다는 이유로 미히로처럼 옆길로 빠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점을 위안 삼아 본다. 이 정도로 예쁜 여자가 AV를 찍는 건 일반적으로는 열렬히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충분한 잠재력은 있는데 성공하지는 못해서 안타깝다고 내가 생각한 이 배우가 그렇게까지 추락하는 걸 보고 싶지는 않다.

 

끝내 평범하게 잊혀진다면, 나는 그녀를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하여 기억하게 될 것이다.

 

첫째, 송곳은 상자 안에  들어 있었고, 단단한 안쪽 면에 막혀 주머니 밖으로 삐죽 튀어나와보지 못했다. 2010년 전후에 활동했던 유명하지 않은 어떤 일본 여배우를 보고 그런 송곳을 떠올려봤었다. 송곳은 상자를 뚫고 나올만큼 강하진 않았지만 우연히 나는 그 상자 안에 손을 넣었고 제법 따끔하게 손 끝이 찔렸다.

 

둘째, 남들 눈에는 그저 그런 수준의 흔해 빠진 흘러가는 일본 비주류 여배우가 하나 있었는데 내 눈에만 무엇에 씐 듯 예뻐 보여서 별 다른 정보도 없이 영양가 없는 긴 망상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Posted by 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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