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월요일(3월30일)에 예비군 훈련을 했다.
예비군 훈련은일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따분하고 시간 아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약간 달랐다.
살면서 별로 좋은 일이 없으니 이런 극도로 사소한 일에서도 행운의 단서를 찾을 수 있게 된다는 점이 신기하다.
우선 8시57분에 훈련소에 도착했다. 버스 배차시간에 따라 좌지우지 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운 좋게 들어갔다. 지각 처리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도착시간은 늦을 수록 좋다. 안정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달성한 절묘한 도착시간이었다.
안보 비디오를 보고 나서 사격을 했다. 예비군 총은 개인별로 영점이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표적지 자체에 잘 맞지 않는다.예비군 5년차까지종이안에 총알이 들어가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 날은 마지막 예비군 훈련을 기념하여 6발 모두 표적을 맞췄다. 별 일은 아니지만 기분이 괜찮았다.
그리고 나서 서바이벌 게임을 했다. 난 진심으로서바이벌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귀찮고, 페인트가 옷에 묻을 수도 있고, 보안경을 쓸때의 느낌이 답답하기 때문이다. 내 번호가 49번이었는데 40번까지 게임에 투입되었다. 공격조 훈련이 끝나고 10분 휴식 후 수비조 훈련이 시작되었는데 그때는 51번부터 시작을 했다. 페인트볼을 진심으로 쏘기 싫다고 생각했더니 페인트볼을 쏘지 않은 100명중 10명 안에 들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수류탄 훈련을 했다. 수류탄은 항상 예비군 숫자보다 작기 때문에 극소수의 예비군만이 던질 기회를 잡는다. 지난 5년동안은 줄을 선 순서대로 던졌기 때문에 한번도 던져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던지고 싶은 사람은 나와서 던져보라고 했다. 별 이유는 없지만 그냥 한번 던져보고 싶었다. 던져보려면 누가 시키는게 아니라 스스로 던지겠다고 나서는 약간의 적극성이 필요했다. 망설일만한 일도 아닌데 잠시 망설이다가 마지막 수류탄을 던질 수 있었다. 마음속 근심을 모두 그 수류탄에 담았다고 생각하고 던졌다. 모의수류탄은 폭발했고 연기가 났다. 그 연기를 보니 기분이 괜찮아졌다.
예비군 훈련을 갔다오면 군화때문에항상 뒷꿈치가 까지거나 발가락에 물집이 잡힌다. 집에 돌아오니 발가락이 약간 쓰렸지만 다행히 상처난 곳은 없었다. 여러모로 행운이 따랐던 마지막 예비군 훈련이었다.
마음이 편해졌다. 사는데 항상 나쁜 일만 있는건 아니구나. 나쁜 일이 있어도 나락까지 떨어지는 일은 드물겠구나. 행운이 있어도 그 행운을 잡을 준비와 적극성이 있어야겠구나라는 생각들이 막연하게 따라 나왔다.여러가지 이유들이 곪아 터져버린 마음의 병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지겹도록우울모드로 일관했던 올해의 전환점 역할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