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와 나무토막

낙서 2010. 3. 29. 00:11
고등학교 때는 수능 지문에 나올 것에 대비해서 한국 현대 단편소설을 많이 읽었다.
교과서에서 봤는지 다른데서 봤는지 출처가 분명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김성한의 개구리라는 소설이 있다. 부제는 제우스의 자살이다.

개구리들이 왕을 원해서 제우스에게 기도했더니 제우스는 왕을 삼으라고 나무토막 하나를 떨궈줬다.
개구리들은 나무토막은 왕 답지 못하다고 왕다운 왕을 보내달라고 했다 제우스는 황새 한마리를 보냈는데 그 황새가 개구리들을 전부 잡아먹었다. 대략 이런 내용으로 기억난다.

오너가 경영을 하면 의사결정이 빠르고 조직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고 한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책임을 오너가 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회사가 망한다면 오너는 어떤 식으로 책임을 지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회사가 망할 정도면 사재를 털어 부어도 어림없을거다. 총수 일가의 신장이나 안구를 떼어다 팔더라도 별 도움은 안될 것이다.
IMF때 대우가 공중분해 된 것을 기억한다면 오너 역시 위기 때는 나약한 개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떻게 책임을 진다는 것일까. 책임이란게 존재하긴 한걸까?

전문경영인들은 자기가 결정을 내리게 되면 자기가 책임을 지게 되기 때문에 면피성 의사결정을 한다고 한다.
한두 해 실적이 떨어지면 경질되기 쉬운데 오너는 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잘릴 걱정은 없다.
잘리지 않는다는건 책임을 지는게 아니라 책임과 무관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너가 지는 책임이란 결국 자기 지분에서 본 손실인데 그렇게 입은 손실은 대주주나 소액주주나 똑같이 돌아온다.

굳이 오너가 아니더라도 스티브잡스, 아이아코카, 잭웰치, 박태준 같은 사람들은 회사내에서 엄청난 권력을 누리면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방황하는 전문경영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업계획이 성공하지 못했을 때 도끼질하고 불살라 버릴 수 있는 나무토막 아닐까?
Posted by 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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