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사는 이유를 쉽게 찾는 방법

누미 2015. 1. 15. 14:27

너무 뻔한 이야기라서 굳이 글로 쓸만한 가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다른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글로 남기거나 입밖에 내는 것을 본 적도 없으니 써도 괜찮을 것 같았다. 표현하지 않은 생각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다르지 않으니 뻔한 생각이지만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글을 써 본다.


사람은 삶의 이유에 대해 고민하는 경향이 있다. 사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있긴 하다. 사는 이유가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없다면 만들어 보는게 정신 건강에 좋다.(http://b-613.tistory.com/375)

사는 이유를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http://b-613.tistory.com/389) 만들기가 쉽지는 않기 때문에 가장 쉬운 방법을 한가지 적어본다.


수천억개가 넘는 태양계가 모인 은하가 수천억개인 우주에서 나는 먼지와 다를 것 없는 존재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며 허무감에 빠지는 건 어리석다. 규모와 가치는 필연적인 상관 관계가 없다. 손 안의 새 한마리가 숲속의 모든 새보다 중요하고, 적색 거성 베텔게우스보다 냉장고 안에 있는 거봉 포도나 냉면 육수가 중요할 수도 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가장 중요한 존재다. 내가 죽은 후에는 태양이 폭발을 하든 말든 빅뱅의 반대인 빅크래쉬가 일어나든 말든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래서 석가모니는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 말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지만 이쯤에선 어깨에 잔뜩 들어간 힘을 빼야 한다. 나는 그렇게 중요한 존재지만 역사에 아무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있었든 없었든 결과적으로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보통 사람에 불과하다. 나는 가장 중요한 존재이긴 하지만 무한대로 중요하지는 않고 무한으로 수렴하는 정도까지만 중요하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http://b-613.tistory.com/412)

나 이외에 다른 사람도 그들 나름대로는 나만큼 중요하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온라인 게임의 NPC로 취급하지 말고 진심으로 나와 (거의)동등한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 석가모니는 모든 것은 공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라 했고 따라서 나는 곧 너라고 가르쳤다.


다른 사람도 NPC같은 피상적 존재가 아니라 나처럼 가치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기쁨 역시 가치가 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거나 내가 어떤 행동을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기쁨이나 행복을 느꼈다면 나는 가치 있는 일을 한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만든 가방을 산 사람이 그 가방을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면서 기뻐한다면 나는 가치있는 일을 한 셈이다. 가방을 산 사람은 소중한 인격체이고 그런 그가 나로 인해 행복을 느꼈기 때문에 내가 가방을 만드는데 쓴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깊게 들어간다면 사랑을 빼 놓을 수 없다. 나로 인해 타인이 행복을 느끼는 사례를 찾을때 사랑보다 더 좋은 것을 찾기는 어렵다. 남녀간의 사랑은 물론, 가족간의 사랑이나 친구간 우정 같은 것들은 사는 이유로서 특A급 재료다.


냉정히 보면 학교 친구는 우연히 같은 해에 태어나서 특정 시기에 가까운 곳에 살았다는 이유 때문에 친구가 된다. 다른 해에 태어났든지 다른 동네에 살았더라면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공부를 좀 더 잘했거나 못했으면 다른 대학 친구를 만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니컬한 태도는 살아가는데 긍정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우연이든 아니든 이미 그 사람과 내가 친구가 되어버린 건 사실이다. 연인이나 배우자도 마찬가지다. 우연에 불과한 만남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 우연이 일어난 이후이다!!

그것으로 나와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서로 훨씬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내게 있어 그들은 내가 만든 가방을 산 사람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나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기쁨은 내가 만든 가방 덕분에 느끼는 가방 구매자의 만족감보다 크다.


기쁨을 느끼는 사람의 중요도과 기쁨의 강도의 곱(중요도 x 강도)을 삶의 가치를 판단하는 척도 중 한가지로 삼는다면 가족, 친구들을 사랑하며 사는것은, 규모면에서 거창하진 않지만 가치면에서는 꽤 괜찮은 삶의 이유가 된다.

다만 사는 이유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의 문제인데 주변사람들과 잘지내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로 보일 우려가 있다.

확정된 '어떻게'의 방침에서 보다 구체적인 행동을 이어나간다면 '어떻게'는 '무엇을 위해서'의 문제로 전환된다.

좀 더 자비심이 깊어진다면 주변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부처님만큼 수행을 거치지 않는 이상, 자비심이 그만큼 깊어지는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기껏 소중한 자녀들을 잘 키워놓고 나서, '내 인생은 뭐였지?' 라고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빈 둥지 증후군은 어찌보면 어깨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 태도인 듯 하다. '내가 아니었으면 걔들을 누가 그렇게 잘 키웠겠나? 내 인생은 헛된게 아니라 아주 잘 산거지' 라는 자세가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