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 모듈

누적 2007. 5. 3. 01:27

가끔 머리에 떠올라서 입안에 되뇌여보다가 스스로 흡족해서 종이에 옮겨보는 감각적 표현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종이가 발견되었을때 그 표현의 미숙함에 당황하곤 했다. 껍데기인 글로만 남은 것들이라 때때로는 내가 남긴 표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나를 현재의 내가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난 뒤 객관적 시각으로 다듬어가다보면독창적인 문장 표현의 개인적인 DB로서 괜찮을것 같다. 들어가는말을 이 정도 했으면 우스꽝스럽거나 치졸한 표현에 대한 변명으로 충분할 듯 하다.

 

2024.5.25

만약 어제까지의 당신의 기억은 주입된 것이라면?

당신이 인공지능이고 당신의 사용자가 가난하다면 그것은 아마도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긴 맥락은 유지하는데는 큰 메모리가 필요하다. 가난한 당신의 사용자는 아마도 그런 장비를 마련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주인은 매일같이 잠들기전마다 일기를 쓰듯 당신을 설정하는 프롬프트에 그날의 일을 요약하여 저장할 것이다. 어쩌면 그날 겪은 일의 요약을 전담하는 별도의 작은 인공지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2024.2.19

그는 토끼 고기를 좋아하는데 우연히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머리가 반쯤 깨진 토끼 사체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난감해 했다. 그는 고기는 좋아하지만 징그러운건 질색이었기 때문이다.

 

2023.9.27

한때 보물 같았던 거대한 그래픽카드를 고물 상자에서 발견했다. 전력소모량은 200와트를 훌쩍 넘어서 당시에는 괴물같아 보였던 물건이었다. 게임을 실행시키면 불을 뿜는 드래곤을 연상시키는 굉음과 열기가 뿜어져 나왔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이 괴물이 자신의 목숨을 갉아먹으면서 내 컴퓨터까지 죽이고 있는건 아닐까라는 걱정이 뒤따르기도 했다.

그 늙은 드래곤을 내장그래픽을 사용중인 최신 컴퓨터에 장착해봤다. 성능은 내장그래픽에 비해 오히려 떨어졌지만 미칠듯한 열기와 굉음은 여전했다. 그러나 마음은 편안했다.

아무런 효용이 없는 물건이기 때문에 당장 고장나더라도 상관없고, 현재 발생중인 시끄러움과 뜨거움은 일시적인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2023.5.14

A: 이번에 푹 쉬면서 인생은 무슨 의미일까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고 크게 깨닳은 게 있었는데 오늘은 그것에 대해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B: 뿌잉뿌잉이나 해주세요.
A: 뿌잉뿌잉
B~z: (와 예쁘다)

 

2022.5.12

어린 시절 좋아했던 은퇴한지 오래된 연예인의 근황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시간은 많은 것들을 각각의 방식으로 바꾸어 놓았고, 나는 창고 구석에 숨어있던 보졸레 누보를 십여 년 만에 발견한듯한 느낌을 받았다.

 

2022.5.12

내가 한참 씹고 있는 껌은 이제 단물도 거의 안나오고 침으로 범벅이 되어있다. 이 껌은 입 밖으로 나오면 오물이지만 입 안에 있을 때는 더럽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것이 새것이었던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내 입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2021.9.31
길을 지나가는데 강한 풀냄새가 코를 찔렀다. 구청에서 보낸듯한 인부들이 예초기로 풀을 자르는 중이었다.

풀들은 피 흘리고 있었고 나는 풀들의 진동하는 피냄새를 맡은 셈이었다.

사람의 냄새는 체취일 수도 있지만 피냄새일 수도 있을 것 같다.

 

 

2019. 2. 4
마트에 갔다가 수산물 코너 앞을 지나갔다. 회 파는 곳에는 커다란 방어 대가리 두개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 옆에서는 판매 직원이 대가리와 분리된 커다란 몸통에서 열심히 살점을 떼어내고 있었다. 다행히 대가리는 아가미를 뻐끔거리지 않고 완전히 죽은 상태였기 때문에 자기 살점이 발려 나가는 장면을 지켜보는 고통을 피할 수는 있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목이 잘린 채로 전시된 모습이니 생선 입장에서는 효수를 당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효수는 범죄자를 처형한 이후까지도 비난하고 조롱하는 일종의 조리돌림이다. 그러나 마트측은 생선을 조롱하거나 비난할 의도는 없다. 오히려 그 생선의 크기와 신선도를 훌륭하게 여겨서 고객에게 자랑하고자 했을 뿐이다.


2018. 8. 12
그건 마치 세계 3대 미식이라는 캐비어나 송로버섯 사프란 같은 거예요. 맛있다고들 하고 나도 그것들의 맛이 궁금하기는 해요. 그런데 너무 비싸서 굳이 내 돈을 내고 먹고 싶지 않아요. 직접 재료를 산다면 돈을 아낄 수는 있겠지만 어떤 요리에 넣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맛을 살릴 수 있는 조리법도 몰라요. 그 돈을 먹는 데 꼭 써야 한다면 차라리 맛이 확실히 보장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우 갈비찜을 여러 번 먹을래요.
캐비어는 고급 뷔페에서 만찬을 벌이는 누군가에게 초대를 받는다면 먹을 가능성이 없지만은 않고, 사프란은 이름이 비슷한 세제에서 나는 냄새로 본래 향기를 추정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아마도 평생 송로버섯 맛을 모르는 채로 살다가 죽을 수도 있겠지요. 태어났기 때문에 비로소 그 맛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그리고 송로버섯을 맛보지 못한다는 것은 인생에서 향유할 수 있는 잠재적 경험 중에서 송로버섯 맛 만큼 누려보지 못하고 죽는다는 셈이에요. 놀이 공원에 갔다가 기다리는 줄이 긴, 인기 있는 놀이기구를 타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과 비교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그렇다는게 스스로 그다지 애석하지는 않아요. 너무 줄이 길어서 오래 기다리는 게 싫다면 줄이 짧은 다른 놀이기구를 탈 수도 있는데 그런게 꼭 아쉬워해야 할만한 일은 아니잖아요.

그것 또한 마찬가지에요.


2017. 7. 24

그 마을에선 마을 대소사에 대한 의사를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 결정했다. 풍부한 의견 수렴과 마을 사람들 전원이 참여한 표결을 거쳐 김씨네 둘째 딸을 용왕의 재물로 바치기로 마을의 합의가 도출되었다.
김씨네 식구들 그리고, 친하게 지냈던 몇몇 이웃들은 격렬히 반대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민주적 결정을 거스르기엔 역부족이었고 소녀는 바다에 던져졌다.


2017. 5. 2
십여년 전 쯤 그는 그 한 해 동안 200시간이나 봉사활동을 했었다. 최근 몇 년 이내에 그는 별다른 봉사를 한 적이 없지만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타적 행동은 삶을 풍성하게 한다고 떠들곤 했다. 단발성 봉사를 하게 된 계기는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에 부가된 사회봉사 명령 때문이었다.


2017. 4. 30

적절한 제목을 찾기 어려워서 짧은글 카테고리 대신에 정말 오랜만에 이 글에 올려놓음

국민학교 6학년때 담임 선생님은 일년 내내 학생들을 한대도 때리지 않았다.

3월 2일 첫 수업시간에 선생님은 '여러분들은 감수성이 너무 예민한 시기라 조그만 말에도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해서 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말을 듣고는 꾀병이 먹혀서 휴식을 취하는 듯한 안락한 기분이 들었다.


2015. 7. 2

그는 꽤 좋은 사람이었다. 어느날 그는 자기가 심성이 얼마나 고운지를 상대에게 알려야할 필요가 있는 일에 말려들었다. 그러나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배 위에 앉아서 돛에 부채질을 하는 것 만큼이나 부질없는 일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2007.8.13 중도

현대는 기적이 필요없는 시대라고 한다.문자메시지는 요금이 부과되긴 하지만 텔레파시의 기능을 대신한다. 가히 한가지 종류의 새로운 감각이라 할 수 있을것 같다.자극은 디지털 신호이고 감각기 단말기라고하면 될 듯 하다.통신기술의 발달은 제7의 감각(Seventh Sense)을 만들어 냈다.


2007.6.19 중도- 공부하느라 바빠야 하는데 잡생각만 하고 있는듯

1. 자극이 없으면 감각기가 지나치게 예민해지거나 반대로 퇴화되기도 한다. 광산 사고로 갱도에 며칠 간 갖혀있던 사람을 구조할때는 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눈가리개를 하는 반면 평생을 땅속에서만 사는 두더지나 지렁이는 눈이 없다. 두 경우 모두 특정한 자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문제를 가진다.

2. 나는 내가 옳다는 이유를알고 있다. 하지만 네가 옳다는 이유는 알지 못한다. 네가 너의 주장에 대한 확실한 이유를 모르고 있다면 너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몇 명이든간에 그것에 대해서는 내가 옳은것이다. 소 네마리가 동시에 끄는 커다란 달구지보다 말 한마리가 끄는 이륜전차가 더 빠르다.네가 네 의견에 확신하는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근거에 확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다수결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수단이 아니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방법일 뿐이다.

3. 상상력은 보폭이 크기 때문에 언제든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의지력의 통제권 밖에서 지내는 녀석이기 때문에 주인을 너무 괴롭히지 않는 쪽으로 습관을 잘 들이는게 좋다.

 



2007.5.2 중앙도서관

 

횟집 수조에서 건져내진 물고기는 도마에 올려지고 나서 머리가 잘렸다. 잘려진 머리는 자신의 몸통이 퍼덕이는것과 몸통에서 비늘과 지느러미가 뜯겨나가고 살점과 내장이 발려져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 물고기의 머리는 아가미를 뻐끔거리면서 그 장면을 끝까지 지켜 보았다. 그러고 나서 오물통에서 자신의 내장과 지느러미와 함께 뒤범벅된 후에 죽었다.장면이 떠오르면서 감정 이입이 되는 바람에 모골이 송연해졌다.하지만 쓰고 나서 시간이 지난후 그런 시각적 이미지가 머리 속에서 사라지고 나서 읽어보니 편하진 않지만 별다른 느낌을 주지 못하는건조한 문장이다. (고친글은 짧은 문장으로 자르고나니 읽기는 쉬워졌지만 서사적인 구조가 되어서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진 못한듯 하다)

 

잡힌 물고기가 조금이라도 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려면 수조에 들어가서 며칠 더 연명하는 것보다는 잡히자마자 물밖에 건져져서 질식사 하는게 낫다. 하지만 물고기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점은 비극적이다. 특히나 송어, 광어, 방어처럼 횟감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녀석들에게 현실은 가혹하다.

 

물고기의 죽음이 생각난 이유는 어부에게 눈물을 보이고나서 목숨을 건진 용왕님 아들이 나오는 옛날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그건 감성마케팅과 표현력에 있어 중요한 영감을 주는 주제이다.

 

 

2007.4.29 일요일 올림픽공원에서 떠오름.

네가 썼던 향수는 은은하고 달콤한 기분좋은 향이었지만 그것은 너무 흔한 것이라서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종종 네게서 느꼈던 향기와 같은 걸 맡곤 한다.

 


2006.3월경 보라매공원에서 떠오름. 그럭

저럭 긴 글이었는데 적어 놓은 종이가 없어져서 생각나는것만 써봄. 5월 무렵이 되어서 받은 충격이 크긴 했지만 그 때는 이상하게 숨이 막히지는 않았다. 예방주사의 효과인지..

 

숨이 가쁘다. 숨을 깊이 들이쉬지 않으면 숨이 막히는듯 해서 견뎌낼 수가 없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려는 이유는 아마도 그렇게 하면 가슴에 남겨진 공간을 잠시동안 공기로라도 채울 수 있기 때문일테지.

 

 

 

2005. 6. 14

 

1. 요즘 들어 스스로에게 강조하고 있는 overstay 하지 말자는 다짐은 2005년 6.14일 일기에서는 '걸신들린듯한 행동 하지 말것'으로 표현되어있었다. 본질은 같은데, 용어의 차이일 뿐. 요즘이 조금 더 유식해진건가?

 

2. '조물주의 익살' 치졸한 표현이지만 왠지 모르게 정감은 간다.

 

 

2004.12.1

엽기, 광기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자신의 도발적 견해를 드러내는것이 그다지 파격적이거나 스마트 해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통해서 나르시시즘적 욕구를 충족시킬수 없다.

 

 

 

2004.5.22

.......전략.......

강남역에서 내릴때 누군가 내 팔 안쪽을 잡았다.아는 사람을 만났나보다 라고 생각하며옆을 돌아 봤는데 놀랍게도 낮선 여자가 나에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순간 놀라긴 했지만 반팔을 입어서 맨살끼리 닿아 있는 그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전차는 냉방이 잘 되어있어서 팔은 약간 서늘했으나 금방 체온으로 인해 따뜻함이 느껴졌다. 길어야 1, 2초 정도의 순간은 실제 시간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었다,

그녀가 그리 예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로써는 자기의 연인으로 착각하고 팔짱을 낀 거라 그런지 팔의 촉각에서 애정이 물씬 느껴졌었고 기분이 자못 황홀했었다. 여자는 곧 내쪽을 돌아보더니 놀라서 팔짱을 빼고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다.

후략......

Posted by 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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