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유시민 씨의 항소이유서에 대해

누미 2025. 5. 31. 12:34

정치나 정치인에 대한 글을 쓰는 건 절대로 좋아하지 않는데 어쩌다 보니 짚고 넘어가 보고 싶은 주제가 나타나버렸다.

 

이번 수요일에 유시민 씨는 상대 정당 대선 후보의 부인에 대해서 그녀의 학벌과 출신을 이유로 그 자리에 걸맞지 않은 사람이라는 식의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대학도 못 나온 여자가 서울대 나온 남자의 부인이 되어 평생 황송하게 살다가 영부인이 될 기회가 되자 고양감에 도취되어 미쳤다는 식의 정신 분석이었다. 사람을 등급으로 나눠서 평가를 하고 그것을 굳이 입 밖으로 꺼냈다는 점에서 나에겐 다소 충격적이었다. 누구든 몸이나 마음속에는 더러운 것이 들어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공공장소라면 가래침은 뱉기보다는 삼키는 것이 미덕일 텐데...

 

문득 언어의 마술사인 그가 남긴 촌철살인의 예시로 두고두고 회자되는, 그의 '60대 뇌세포 발언'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이제 60세를 훌쩍 넘긴 그의 뇌세포가 가장 건강했었을, 젊은 시절 그의 내면세계는 과연 어땠을까가 궁금해졌고 나 역시 그의 정신세계를 분석해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찾아서 읽어보게 된 것이 몇몇 사람들이 ‘시대를 대표하는 명문’이라 추앙하는 바로 그 ‘항소이유서’다.

글쓰기를 즐기고 다른 사람이 쓴 훌륭한 글을 보면 좋은 점을 배워서 내 글의 수준도 향상시켜보고 싶다는 욕구를 종종 느껴왔던 나로서는 '판사들조차 돌려봤다'라고 알려져 있는 희대의 명문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내 눈에는 20대 특유의 치기(굳이 좋게 말하면 패기)와 자기 중심성, 감정적 비논리성이 진하게 묻은 글로 보였고, 가독성 면에서도 적잖은 문장 수정이 필요해 보였다. 순간, 인공지능에게 ‘이 글 좀 다듬어줘’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시대의 명문'에 그런 무례를 범할 수는 없기에 꾹 참고 원고지 100매 분량이라는 장대한 원문을 끝까지 읽어봤다.

다만 아직 글쓰기 경험이 풍부하게 누적되지 않았을 젊은 시절의 글이란 점과, 구속된 상태에서 종이와 펜만 가지고 14시간 만에 별도의 편집과 퇴고 없이 써 내려간 글이라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그의 괴물 같은 필력과 재능 자체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 같이 재능없는 똥멍청이에게는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이지만 어쨌든 읽기에 수월치 않았고 결과물 자체로서의 퀄리티가 썩 만족스럽지 못했던 건 다소 안타까웠다. 그밖에 사건 피해자에 대한 사과나 폭행이 일어나는 상황을 방치했던 점에 대한 반성이 보이지 않는 점 역시 나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했다.

그 긴 글을 일일이 리뷰할 의욕은 없고, 문제의 핵심이 응축된 몇몇 구절을 가져와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1) 원문
"본 피고인은 다른 사람보다 더 격정적이거나 또는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 인간이 결코 아니며, 하물며 빨간 물이 들어 있거나 폭력을 숭배하는 젊은이는 더욱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청년에 지나지 않으며 늘 ‘불의를 보고 지나치지 말라’,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생각하라’,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신, 지금은 그분들의 성함조차 기억할 수 없는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들의 말씀을 불변의 진리로 생각하는, 오히려 조금은 우직한 편에 속하는 젊은이입니다." 여기서부터 이어지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문의 서사들.

2) 평가
"이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라는 선언은 거리감 있는 사람이 해줘야 설득력이 있지, 자기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이 하는 것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 경찰서에는 매일같이 수사관을 상대로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선량한 피의자들이 우글거리지 않는가. 하지만 이 문장이야말로 자신의 중심으로 한 윤리적 유연성(?)을 줄기차게 보여줬던 그의 인생행로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증거인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가 정의의 화신이라는 관점이 있기 때문에 이어지는 이런 문장의 참사로 이어지는 것 같다.

2. 양심은 절대적이고 영원합니다.
1) 원문
"바로 여기에서 정의로운 사회에서라면 존재할 수 없는 법과 양심의 상호적대적인 모순관계가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그 누구도 이 상황에서 법과 양심 모두를 지키기란 불가능합니다.

이 사건이야말로 우리 사회 전체가, 물론 대학사회도 포함하여, 당면한 정치적·사회적 모순의 집중적 표현이라는 학생들의 주장은 바로 이와 같은 논거에 입각한 것입니다.

법은 자기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지만 양심은 그렇지 못합니다. 법은 일시적 상대적인 것이지만 양심은 절대적이고 영원합니다. 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양심은 하느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본 피고인은 양심을 따랐습니다. 그것은 법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양심의 명령을 따르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이 사건에서만이 아니라 그 이전의 어느 사건에서도 그랬습니다."

2) 평가
이 사람은 세상을 정의와 불의의 구도로 나눈 후 앞에서 보여준 자기 인식에 충실한 자세로 은근슬쩍 정의를 자기 쪽에 끌어온다. 한편, 전두환 회고록에서는 전두환 자신도 내란범 김재규와 공범 정승화를 처단하고 공산주의자들의 망동을 극복하여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양심의 수호자였다.(참고로 설득력 여부는 차치하고, 문장의 가독성 자체는 전두환 회고록의 압승)

3. 내가 한 게 아니라서 윤리적 책임을 느끼지 못합니다.
1) 원문
"또한 임신현, 손형구의 경우에도 본 피고인이 사건에 접했을 때는 이미 감금 및 조사가 진행 중이었으므로 어떠한 지시를 내릴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 자신도 조사를 위한 감금에 명백히 찬동했으며, 또 잠시나마 직접 조사에 임한 적도 있기 때문에 법률을 어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그에 따른 책임이라면 흔쾌히 감수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경우, 가능한 한 짧은 감금과 비폭력이라는 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실제로 이 원칙이 관철되었으므로 본 피고인은 아무런 윤리적 책임도 느끼지 않습니다."

2) 평가
이 대목을 읽고 나는 전두환 씨의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는 한 번도 직접 몽둥이나 총을 들지 않았으며, 그 와중에도 법을 어긴 건 맞다고 ‘흔쾌히 감수’했을 테니. 남의 고통을 ‘짧고 비폭력적’이었단 이유로 합리화하는 이 놀라운 윤리적 내구성은, 지금까지도 그 형태를 바꾸어서 그의 말에서 종종 발견되어 왔다.

4. 이른바 '가짜 (서울대)학생'에 대한 성토.
1) 원문
"이 사건은 바로 이와 같은 조건 하에서 수명의 가짜학생이 수사기관의 정보원이라는 혐의를 받을만한 행위를 하였기 때문에 거의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건입니다. 이들의 의심을 받게 된 경위 및 사건경과는 이미 밝혀진 바이므로 재론할 필요가 없지만, 여기에서 가짜학생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연설명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실제로 정보원인지 그 여부는 극히 중요한 정치적 관심사임에 분명하지만 사건의 법률적·윤리적 측면과는 거리가 있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연행·감금·조사 또는 폭행한 것은 결코 정보원이나 단순한 가짜학생이 아닌 ‘정보원 혐의를 받고 있는 가짜학생’이었으므로, 조사 결과 그들이 정보원이었다고 해서 폭행까지도 정당할 수는 없으며, 또 아니라고 해서 학생들의 일체의 행위가 모두 부당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이 이 문제에 대해 재론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정보원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 의해서입니다.

갖가지 목적으로 학생처럼 위장하고 캠퍼스를 배회하는 수많은 가짜 학생들, 이들은 소위 대형화·종합화된 오늘날의 대학에서, 졸업정원제·상대평가제 등 대학을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마비되어 제 한 몸 잘사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전문기능인의 집단양성소로 전락시키기 위해 독재정권이 고안해 낸 각종 제도가 야기한 바, 대학인의 원자화·고립화 등 비인간화 현상을 틈타 캠퍼스에 기생하는 반사회적 인간집단으로서, 교내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절도·사기·추행·학원사찰의 보조활동(손형구 경우처럼) 등과 복합적인 관련을 맺고 있음으로 해서 대학인 상호간에 광범위한 불신감을 조성하고 대학의 건강한 공동체문화를 파괴하는 암적 존재입니다.

현 정권은 이들이 대학인의 일체감을 파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내에 사복경찰을 상주시킴으로써 야기된 숱한 문제들마저 이들에게 책임 전가시킬 수 있다는(여학생 추행사건 때처럼) 잇점 때문에 가짜학생의 범람현상을 방관 또는 조장하여 온 것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이 이들에 대해 평소 품고 있는 혐오감이 어떠한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일입니다.

이들이, 이들 가짜들이, 혹은 복학생들의 소규모 집회석상에서, 혹은 도서실에서, 법과대학 사무실에서, 강의실에서, 버젓이 학생행세를 하면서 학생활동에 대한 정보 수집활동을 하다가 탄로 났을 경우, 법이 무서워서 이를 묵과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올바른 일이겠습니까? 상호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바로 그들을 보냈으리라 추정되는 수사기관에, 정보원 혐의를 받고 있는 가짜학생의 신분조사를 의뢰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대학의 교정은 개방된 장소이므로 은밀한 사찰행위뿐만 아니라 예전처럼 수백 수천의 정·사복 경찰이 교정을 온통 휘젓고 다닌다 할지라도 이는 전혀 비합법 행위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본 피고인은 이러한 행위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반면 이러한 부도덕한 학원 탄압행위에 대한 학생들의 여하한 실질적 저항행위도, 비록 그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한 일이지만, 현행 법률에 대한 명백한 침해가 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정의로운 사회에서라면 존재할 수 없는 법과 양심의 상호적대적인 모순관계가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그 누구도 이 상황에서 법과 양심 모두를 지키기란 불가능합니다."

2) 평가
첫 번째 문장은 전두환 회고록으로 미러링 하겠다.


-수명의 가짜학생이 수사기관의 정보원이라는 혐의를 받을만한 행위를 하였기 때문에 거의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건입니다.


-더욱이 시위대의 다수가 업소 종업원, 일용직 노동자, 넝마주이, 부랑자 차림이었다는 사실에 미루어보아 아세아 자동차 공장에 집결해 수백 대의 차량을 끌고 나간 사람들의 정체에 의문이 가는 것이다. 특히 일반 시민이 장갑차를 몰고 이동했다는 건 해명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전개된 일련의 상황들이 지금까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북한 특수군의 개입 정황이라는 의심을 낳고 있는 것이다.(406페이지)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부연 설명을 달겠다. 전두환 회고록의 내용에 신빙성이 있다는 게 아니라 항소이유서에서 발견된 주장이 전두환 회고록의 엉터리 논리랑 병치가 된다는 취지로 쓴 것이다. 나를 불순한 사람으로 오인하면 안 된다. 나는 5.18 북한군 침투설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 그 주장을 옹호하거나 알릴 생각이 추호도 없고 5.18 특별법을 위반하여 범죄자가 될 의사는 당연히 없다. 민주주의를 지켜주신 광주 시민 만세!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전두환 xxx(사자 명예훼손도 역시 무서워서 험한 표현은 못쓰겠다. ㅠㅠ)

그 뒷내용도 이어서 평가해 보겠다. 이 글에 등장하는 가짜 학생이라는 사람들은 유시민 씨가 처단할 대상으로 본 프락치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울대 재학생인척 하고 싶어 하는 허풍쟁이, 서울대 학생들과 교류하고 싶은 타대학생이나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 사람 등 다양한 유형들도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사건의 피해자가 프락치가 아님으로 인해 그 점은 충분히 입증되었다. 프락치가 활동하기 쉬운 토양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유시민 씨는 서울대 재학생이 아니면서 캠퍼스에 머무는 모든 사람을 부정한 존재처럼 여기고 멸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우리만 있어야 할 캠퍼스에 왜 자격을 갖추지 못한 너네가 있느냐? 그리고 국가는 왜 저것들을 치워주지 않는가?라는 일갈로 읽혀서 내 개인적 관점에서는 여기서 그의 내면 깊은 곳에 깔려있을 수 있는 엘리트 의식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상대 정당 대선후보 부인에 대한 거친 평가는 사람을 보는 이러한 그의 의식의 연장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의 피해자들은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의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서울대생을 흉내 내고자 했던 가짜학생은 혐오스러운 인간군상이므로 그들에게 가한 고통에 유시민 씨는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그에게는 자신만의 양심이었을 것 같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유시민 씨의 이런 인식은 1955년 박인수 사건의 1심 판결의 악명 높은 명문장을 연상시킨다.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할 수 있다”

 


결론


1980년대 엄혹한 군부독재 시대라는 시대적 맥락을 고려하면 유시민 씨의 항소이유서에서는 정의로움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절박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가 느끼고 바랐던 이상에 대해서는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이 글은 정의에 대한 열망과 양심에 대한 자부심이 이후 그의 인생에 어떻게 투영되었을지를 고찰해 본 것이다. 자신이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주관적 확신 위에서 그는 자신의 양심에 절대성을 부여했을 수 있다. 원고지 100매 분량이라는 항소이유서에서 피해자에 대한 사과나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점에서 그의 당당한 내면을 엿볼 수 있었다. 그 튼튼한 윤리적 우월감은 과거에는 군사 정권을 향한 투쟁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가 정착한 후 그는 사회적 강자로 자리 잡았다. 세상은 달라졌지만 자신이 정의라는, 한 때는 옳았을 수도 있을, 그만의 확신은 유구하게 이어졌던 것 같다. 그런 근거 없는 믿음은 이 '항소이유서'조차 명문장이라고 치켜세워주는 추종자들이 북돋아 준 특유의 일그러진 지적 우월감과 결합하여, 자신에 반대 입장의 타인을 마음껏 멸시해도 좋은 존재로 간주하며 독설을 퍼붓는 습관으로 이어지게 된 것 같다.

 

이렇게 유시민 씨가 상대 정당의 대선 후보 부인의 정신을 자기 방식대로 분석했듯 나 역시 그의 내면에 대해 나름의 방법으로 고찰해 봤다. 유시민 씨의 뇌세포는 그가 60세를 넘겼지만 전혀 손상되지 않았고, 오히려 어느 때보다 건강하게 기능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그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다만 공공장소에서 뱉는 가래침은 더 보고 싶지 않다.

 

결코 사과할 줄 모르는 유시민 씨를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전두환 회고록을 인용해 보겠다.

 

- 그런 억울한 사람,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그동안 몇 차례 사과를 드렸지만 당시 개혁작업을 진두지휘한 국보위 상임위원장으로서 지금도 미안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삼청교육대 피해자에 대해, 558페이지)

 

- 이처럼 억울한 일을 당해 삶의 엄청난 좌절을 겪고 명예를 잃은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뿐이다.(공무원 숙정 피해자에 대해, 559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