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무아와 고성제에 대한 사이비 창작 동화

누미 2024. 8. 3. 23:02

요 며칠간 유튜브에서 몇 명의 스님과 불교학자들의 강의를 듣고서 느낀 바가 있었다. 인공지능이 선물한 만용을 활용해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 봤다. 클로드 3.5 소네트에게 크게 빚을 진 글이다

 

 

 

 

브라만교 신자 아난드는 행복한 남자였습니다. 그는 부자였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카스트는 사제인 브라만이었는데  두뇌가 매우 뛰어나서 각종 학문들과 다양한 종교들의 경전에도 통달했습니다. 그는 가장 아름답고 현명한 여자와 결혼하여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존경받는 아버지이자 남편이었습니다. 그는 이웃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는 충만한 자비심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물질적으로 돕고 자신의 지혜를 발휘해서 그들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행복한 순환에 이끌릴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물론 그의 인생에도 때때로 만만치 않은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웃들과 힘을 합쳐 이를 지혜롭게 극복하곤 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매 순간 행복과 충만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의 자녀들도 아버지를 본받아 행복하고 자비심이 넘치는 훌륭한 성인들로 성장했습니다. 이제 노년을 맞이한 그는 수시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때때로 힘든 적도 있었지만 이만하면 정말 좋은 인생이었다. 카르마에 따라 나의 내세에도 이런 행복한 인생이 이어지겠지.’

어느 날 고타마 싯다르타와 그의 제자들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아난드는 손님들을 극진하게 대접했습니다. 싯다르타는 아난드의 관대함과 그가 주변에 베풀었던 자비와 지혜에 감탄하며 아난드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전파하여 진정한 자유를 선물하려 했습니다.

싯다르타는 아난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혜롭고 자비로운 아난드여. 저는 왕자였습니다. 비록 그대처럼 고귀한 브라만에 미치지는 못하는 크샤트리아에 불과하지만 세속적 기준으로는 그대보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셈이지요. 그래서 저는 인생이 고통으로 가득 찬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난 어느 날 성 밖을 나와서 고통에 시달리며 연명하는 사람들을 보고 인생의 비참함에 대해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출가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 탐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행을 한 지 6년 만에 저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고통은 욕심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에서 온 것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만들어냈고 모든 존재는 무상합니다. 나 자신조자 말이지요. 그리고 저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아난드는 대답했습니다.

“깨달으신 위대한 손님이시여. 선생께서 설파하고 계신 이야기는 소문으로 들어서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습니다. 선생께서 제자들에게 알려준 팔정도라는 수행법도 알고 있습니다. 팔정도의 내용은 제가 살고 있는 방법 그대로더군요. 결과적으로 저는 선생의 가르침에 꽤 많은 부분을 합치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존재가 무상하다는 점이 달갑지 않습니다. 선생의 가르침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대체로 불행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반길만한 깨달음 같다고 느꼈습니다. 이것이 모두 실체가 없고 가상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 가상 안에서 충만한 삶을 즐겨왔고 앞으로도 반복하고 싶습니다. 비록 내가 믿고 있는 브라만교에서는 윤회를 끊는 것이 수행의 목표이긴 하지만 나는 윤회를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이따금 닥치는 고난을 극복하고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면서 이런  충만을 누리고 싶답니다. 그것이 비록 거짓이나 허상이라 하더라도, 영원한 것이 아니더라도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삶이 놀이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나는 그 놀이에 집중하며 즐거워하는 아이로 남고 싶습니다. 내가 만약 당신처럼 성 밖의 불행한 사람들을 봤다면 출가를 하기보다는 그들을 불행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대책을 세웠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저는 이웃들을 그렇게 도우며 살아왔습니다. 저는 윤회는 끊어야 하는 것이라는 교리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싯다르타는 잠시 침묵 속에서 아난드의 말을 곱씹은 후,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지혜롭고 자비로운 아난드여, 당신의 삶에 대한 만족과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대는 많은 사람들에게 빛과 희망을 주었으며, 그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했습니다. 이는 정말로 가치 있는 일입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신의 삶을 부정하거나, 그대의 행복을 무가치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대의 자비심과 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인정합니다. 다만, 내가 깨달음을 통해 얻은 진리는 조금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삶의 기쁨과 고통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며, 우리가 집착할 때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나는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러한 이해를 통해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이것은 더 깊은 평화와 자유를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다른 이들을 돕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면, 그것 또한 존중받아야 할 길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의 길을 따라가면서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찾는 것입니다.
만약 언젠가 당신이 내 가르침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나는 항상 당신에게 열려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행복하다면, 그 행복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계속해서 당신의 자비와 지혜로 세상을 밝히십시오."

싯다르타의 말을 듣고 아난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은 이의 스승이시여. 선생께서는 삶의 기쁨과 고통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선생의 가르침에 대해 대체로 불행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반길만한 깨달음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불행한 처지에 빠진다면 선생의 가르침에 귀의하여 무상함을 받아들이게 될 것 같습니다만 그게 오늘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난드의 말을 듣고 싯다르타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의 눈에는 깊은 이해와 연민이 어렸습니다. 잠시 후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존경하는 아난드여, 당신의 솔직함과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에 감사드립니다. 그대의 말씀은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합니다.
제 가르침이 불행한 이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다는 그대의 관점은 날카로운 통찰입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서 제 가르침을 찾아옵니다. 하지만 제 가르침의 본질은 단순히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대는 지금 행복과 만족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름답고 귀중한 것입니다. 제 가르침은 그 행복을 부정하거나 거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행복을 더 깊이 경험하고, 동시에 그것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불행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그때 제 가르침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불행을 피하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행복할 때도, 불행할 때도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지금 당신은 행복합니다. 그 행복을 충분히 누리십시오. 다만 그 행복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면, 그것이 변할 때 당신은 덜 고통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말하는 집착에서의 자유입니다.
각자의 길이 다르고, 각자의 때가 다릅니다. 그대의 현재의 삶과 행복을 존중합니다. 계속해서 당신의 방식대로 세상에 빛과 사랑을 전하십시오. 그리고 언제든 준비가 되었을 때, 더 깊은 이해와 자유를 원하신다면, 제 가르침의 문은 항상 열려 있을 것입니다."

싯다르타의 말을 듣고 아난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습니다. 그는 손을 모아 싯다르타에게 경의를 표하며 말했습니다.
"위대한 스승이시여, 당신의 말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선생의 가르침을 존중하며, 제 길을 걸어가면서도 선생의 지혜를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만약 저에게 더 깊은 깨달음이 필요할 때가 온다면, 당신을 찾아갈 것입니다. 오늘의 만남은 저에게 큰 기쁨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싯다르타와 아난드는 서로를 존중하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고, 각자는 자신의 길을 따라 나아갔습니다. 싯다르타는 제자들과 함께 다시 길을 떠났고, 아난드는 계속 그래왔듯 주변 사람들을 도우며 행복하게 살아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난드는 노환으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침상 주위로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그가 평생 도와왔던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아난드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 각각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습니다.

 

"너무들 슬퍼할 필요는 없어. 우리들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으니까. 카르마에 의해 나는 다시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나게 될거야. 자네들도 다음 생애에 지금과 비슷하게 환생할 테고. 그렇게 우리들의 인연은 계속 이어지는 거지. 이번 생애도 자네들 덕분에 정말 행복했어. 고마워."

 

아난드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닌, 충만한 삶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생각은 싯다르타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옳았을까? 나의 행복도 결국 무상한 것이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아난드의 의식은 서서히 흐려졌습니다.

 

아난드가 다시 의식을 되찾았을 때, 그는 자신이 상상했던 브라만 가문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눈부신 광명 속에서 아미타 부처와 관세음보살의 모습이 서서히 나타났습니다.

"아난드여, 환영하오. 이곳은 그대의 선업으로 인해 도달한 극락정토라오."

아난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기억은 자신의 장례식과 카르마에 따른 브라만으로의 환생에 대한 기대였다.
"하지만... 저는 브라만교의 가르침을 따랐고, 윤회를 통해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 행복한 삶을 이어가려 했습니다. 이곳은 제가 기대했던 곳이 아닙니다. 저의 선업은 다음 생의 풍요로운 삶으로 이어져야 마땅한 것이 아닙니까?"

아미타 부처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대의 선한 행동과 자비로운 마음이 그대를 이곳으로 인도한 것이오. 그대는 전생에서 큰 선업을 쌓았고, 심지어 석가모니 부처님을 직접 만날 기회도 얻었소. 비록 그때는 그 의미를 온전히 헤아리지 못했지만, 그 만남과 그대의 선행이 무의식 중에 그대의 영혼에 더 깊은 가능성의 씨앗을 심었소."

관세음보살이 덧붙였습니다.
"아난드여, 이곳은 그대가 미처 다하지 못한 공부를 이어갈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전생의 즐거웠던 기억과 성취에 대한 집착, 그리고 윤회의 틀 안에서만 행복을 찾으려 했던 생각들을 내려놓고, 궁극적인 깨달음과 진정한 자유를 위해 정진할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아난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복했던 삶, 이웃을 돕고 존경받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강하게 반문했습니다.
"제가 누렸던 충만한 행복과 만족감, 타인을 도우며 느꼈던 보람이 모두 무의미한 것이었단 말씀이십니까? 저는 그 안에서 삶의 가치를 찾았고, 그것을 영원히 반복하고 싶었습니다."

아미타 부처가 대답했습니다.
"그렇지 않소, 아난드여. 그대의 행복과 만족, 그리고 자비로운 행위들은 그 자체로 매우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이었소. 그것이 바로 그대를 이곳으로 이끈 공덕이기도 하오. 다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며, 그것에 대한 '집착'이 그대의 영혼을 더 큰 자유로부터 제한하고 있었던 것이오. 이제 그대는 일시적인 행복을 넘어선, 변치 않는 진리와 영원한 평화를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된 것이오."

아난드는 고개를 저으며 물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삶을 고통이라 여기기에 윤회를 멈추고 싶어 하지만, 저는 제 삶에 진심으로 만족했습니다. 물론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그것을 극복하며 얻는 기쁨과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저의 선한 카르마는 다음 생에도 저에게 비슷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영원히 선한 윤회를 반복하며 주변에 기쁨을 전파하고 싶었습니다. 저처럼 삶을 고통과 번뇌의 연속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굳이 그토록 사랑했던 윤회를 끊고 해탈해야 할 이유를 아직 모르겠습니다."

관세음보살이 그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차분히 대답했습니다.
"아난드여, 그대가 삶에서 누린 큰 기쁨과 그것을 다시 경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대가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무상(無常)'의 진리입니다. 그 어떤 행복도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둘째는, 그리고 이것이 그대에게 더 큰 충격일 수 있겠지만, '나'라고 하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무아(無我)'의 진리입니다. 그대가 아무리 다음 생의 행복을 위해 선업을 쌓는다 해도, 지금의 '아난드'라는 의식과 자아를 그대로 가진 채 다음 생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업의 흐름은 이어지지만, 그 업의 과보를 받는 주체는 지금의 그대와 동일한 존재가 아닙니다. 마치 어제의 촛불이 오늘의 촛불에게 불을 옮겨주지만, 두 불꽃은 엄연히 다른 것과 같습니다. 그대가 그토록 집착했던 '나의 행복'과 '나의 윤회'라는 개념 자체가 사실은 허상에 가깝다는 것을 수행을 통해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난드는 관세음보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뜨이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영원불변하며 윤회를 통해 이어진다는 그의 브라만적 믿음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일평생 쌓아온 지혜와 경험, 그리고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이 밀려왔다.
"제가... 제가 아니라면, 그 모든 행복과 선행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습니까? 다음 생의 '나'가 지금의 내가 아니라면, 저의 모든 노력은 허무한 것이 아닙니까?"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평생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고뇌, 존재론적 고통이 그의 마음을 휘저었다. 이것은 육체적 고통이나 세상살이의 어려움과는 차원이 다른, 근원적인 괴로움이었다.

아미타 부처가 그의 어깨에 따스한 빛을 드리우며 말했습니다.
"아난드여, 그대의 혼란을 이해하오. 그러나 허무가 아니오. 오히려 그 반대요. '나'라는 작은 틀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모든 존재와 연결된 더 큰 자비를 실현할 수 있소. 그대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아주 먼 과거의 생들에서 그대는 해탈을 간절히 바라고 발원했던 적도 있었소. 그 오랜 서원과 이번 생의 빛나는 선업이 만나, 마침내 그대를 이곳 극락정토로 이끈 것이오. 이곳은 고통이 없는 환경 속에서, 그대처럼 '고통의 절실함'이 없던 이들도 삶의 본질을 성찰하고 해탈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마련된 특별한 장소라오. 무한한 윤회를 반복하며 행복을 누리더라도, 그 너머의 진정한 자유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곳이지."

아난드는 깊은 침묵에 잠겼다. 관세음보살이 말한 '무아'의 개념은 그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만약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면,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윤회 속에서의 '나의' 행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의 자비심, 그의 지혜, 그의 선행은 여전히 가치 있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나'라는 영원한 주체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의문투성이였다.
문득, 싯다르타 부처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만들어냈고 모든 존재는 무상합니다. 나 자신조차 말이지요." 그때는 그저 철학적인 이야기, 혹은 불행한 이들을 위한 위로라 여겼던 그 말이 이제야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싯다르타는 단순히 삶의 고통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다. 존재의 근원적인 조건을, 그 무상함과 실체 없음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나의 행복도 결국 무상한 것이었을까?' 임종 직전 스쳤던 그 의문이 이제 거대한 파도처럼 그를 덮쳤다. 만약 '나'라는 것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면, 무상한 것들에 집착하며 영원한 행복을 갈구했던 자신의 삶은 어쩌면 거대한 착각 위에 세워진 모래성은 아니었을까. 처음으로 그는 자신의 충만했던 삶 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았다.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그림자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침내 아난드가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에는 이전의 자신감 넘치던 당당함 대신, 진리를 갈구하는 겸허함이 묻어났다. 그의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서서히 열리는 것을 느꼈다.

아미타 부처가 인자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이제 그대는 과거의 삶에 대한 집착, 특히 행복했던 기억에 대한 미련과 그릇된 자아관념을 내려놓고, 싯다르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곳에서 다시 한번 깊이 되새기며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때요. 중도와 육바라밀을 실천하며, 무아의 진리를 체득하여 진정한 자유를 얻으시오. 우리가 그대의 여정을 기꺼이 돕겠소."

아난드는 점차 자신의 상황과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의 지적인 능력은 이제 새로운 방향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극락정토에서의 시간은 인간 세계와는 달랐다. 아난드는 명상과 경전 공부, 그리고 부처와 보살들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는 자신이 행복했던 순간들, 그리고 그 행복의 근원이 되었던 '나'라는 관념까지도 평등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그의 전생에서의 행복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더 큰 깨달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소중한 경험이자 공덕이었지만, 동시에 넘어서야 할 마지막 관문이기도 했다.

 

아난드는 점차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전생의 기억들을 하나씩 되짚어보며, 싯다르타와의 대화를 새롭게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서 집착의 사슬이 서서히 풀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극락정토에서의 시간은 인간 세계와는 달랐습니다. 아난드는 명상과 가르침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행복했던 순간들,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을 모두 평등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의 전생에서의 행복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더 큰 깨달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요한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자비로운 행동들, 이웃을 돕던 순간들, 그리고 가족과 함께했던 시간들 모두가 그를 이 순간으로 이끈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아난드는 마침내 이해했습니다. 행복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초연하게 바라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였습니다.

 

이 천상의 영역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아난드는 명상과 학습에 전념했고, 점차 전생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전 삶에서의 행복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더 큰 이해를 향한 디딤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날, 아난드가 깊은 명상에 잠겨 있을 때, 한 영혼이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혹시 아난드님 아니신가요? 혹시 기억나실지 모르겠네요. 제가 전생에 큰 신세를 진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아난드 님께서는 절제되고 모범적인 생활을 하셨지만 무상과 무아에 대한 관심이 없어 보이셨는데 요즘 많이 달라 보이시네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난드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새롭게 얻은 지혜를 나눌 기회를 인식했습니다. 그가 말을 시작했습니다.

"아, 기억납니다. 친구여, 전생에 나는 영원히 브라만으로 윤회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극락에 와버렸습니다. 제가 해탈이 필요하지 않는다고 여겼던 생은 직전 전생 단 한번 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이 아닌 인간세에서 환생했다면 다시 해탈을 원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과거의 삶에 대한 미련이나 집착 없이 현재의 경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생에 만났던 싯다르타님의 가르침을 통해 '나'라는 실체가 본래 없다는 무아의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모든 존재와 현상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의 가르침을 통해 조금씩 '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향한 여정에서, 정념, 정정, 정진하며 수행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 영혼은 아난드의 변화에 매료되어 열심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깨달음에 이르게 되셨나요?"

지나가던 다른 영혼들이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끼어들었습니다.

 

아난드의 눈은 이해의 빛으로 반짝였습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혼란스럽고 저항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부처님의 가르침의 진리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브라만으로서의 행복과 지위에 대한 내 집착이 영적 성장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여기서 나는 기쁨과 고통을 모두 어우르는 모든 경험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전생에서 경험한 행복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더 큰 깨달음의 순간으로 나를 이끈 필요한 여정의 일부였습니다. 내가 행한 친절한 행동들, 이웃을 도왔던 순간들,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들 - 이 모든 것이 나를 이곳으로 인도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영혼은 이해하기 시작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니까, 집착을 놓아버림으로써 평화를 찾으셨군요?"

 

"그렇습니다," 아난드가 대답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행복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집착 없이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아의 본질입니다 - 집착할 영구적이고 변하지 않는 자아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죠. 이곳에 오기 전까지 저는 카르마에 의해 영원히 행복한 브라만으로 남을 줄 알았었습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다른 영혼들도 아난드의 빛나는 존재와 깊은 말에 이끌려 모여들었습니다. 아난드는 여기 극락정토에서도 계속해서 다른 이들의 깨달음의 길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여정은 인간 세계를 떠났을 때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난드는 모여든 군중에게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시작이었죠. 이제 나는 모든 존재들이 이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노력합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이 길을 가고 있으며, 더 큰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영혼들은 경외심을 가지고 들었고,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해에도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만족한 브라만에서 진정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로의 아난드의 변화는 모두에게 영감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난드의 깨달음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는 수많은 윤회를 거치는 동안 꾸준히 팔정도에 가까운 생활을 실천해 왔었습니다. 그가 무아와 무상에 마음을 열자 그동안 누적된 수행과 결합하여 깨달음은 짧은 시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영혼은 점점 더 밝게 빛나기 시작했고, 극락정토의 다른 영혼들에게도 영감을 주었습니다. 마침내 아마타 부처와 관세음보살이 아난드에게 다가왔습니다.

 

"아난드여, 그대는 이제 진정한 깨달음을 얻었소. 그대의 지혜와 자비는 이제 우주의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게 되었소."

 

아난드는 겸손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의 내면에서는 이제 무한한 사랑과 연민이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전생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의 고통과 기쁨을 동등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난드는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부처로 거듭났습니다. 그의 첫 번째 생각은 자신이 떠나온 세상의 모든 이들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중생들이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아난드 부처는 미소 지으며 생각했습니다.

'나의 여정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구나. 이제 모든 중생들과 함께 더 큰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리라.'

 

그때, 온화하면서도 찬란한 빛과 함께 너무나도 익숙한 미소가 그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 이제는 석가모니 부처로 존경받는 그의 오랜 벗이자 스승이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여전히 깊고 따뜻한, 그리고 이제는 동등한 깨달은 자를 향한 기쁨이 담긴 미소를 머금은 채 아난드 부처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난드여, 마침내 그 강을 건너 이 언덕에 이르렀군요. 그대의 오랜 여정과 이 눈부신 깨달음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일찍이 그대의 자비와 지혜 속에서 이 날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아난드 부처는 이전의 아난드가 아닌, 그러나 모든 것을 기억하는 새로운 부처로서 깊은 존경과 기쁨으로 화답했습니다.
"스승이시여, 당신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이 길은 더욱 멀었을 것입니다. 이제 저 또한 그 빛을 나누겠습니다."

두 분의 부처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과거의 인연과 현재의 깨달음, 그리고 미래의 무한한 자비가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듯했습니다. 아난드 부처의 새로운 여정은 이제 진정으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