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이 재미없었던 이유
얼마전 약 2주에 거쳐 900페이지쯤 되는 '권력규칙'이라는 책을 읽었다. 중국역사학자가 쓴 책인데 중국 역사를 통한 권력과 관련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권력이란 돈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는 점을 피부에 와 닿게 잘 설명하고 있었다.
돈은 인간의 사리분별을 흐리게 하지만 권력은 인간을 짐승만도 못하게만든다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그 구절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이 반지의 제왕에서 반지에 대해 보였던 인물들의 집착 내지 미묘한 감정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반지의 제왕은 영화로만 봐서 그런지 철학적 내용이 어쩌고 하는 따위의 비평은 동감할 수 없었다. 반지의 제왕이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이긴 했지만 특별한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아마도 반지의 힘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였던것 같다.
반지는 사우론에게는 큰 힘을 가져다주지만 나머지 인물들에겐 별다른힘을주지는 않는다. 프로도는 반지를 통해서 나즈굴의 추격을 받을 뿐 그로 인해 특별한 힘이 생기지 않았다. 반지를 끼면 몸이 투명하게 변하지만 자기 역시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다. 골룸역시화산에서 반지를 끼웠지만 몸이 투명해지기만 했을 뿐 별다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사우론을 제외한 등장인물들은 단지 반지가 비싸고 예뻐 보여서 좋아했던것같다.
결정적으로 사우론 역시 반지가 없어도 충분히 세계정복 할만한 힘이 있는데 굳이 반지에 집착하는지도 이상했다.
반지의 제왕에서 원작자는 반지를 권력의 상징으로 보고 반지를 가까이 함으로써등장인물의상태가 이상해 지는것으로 권력에 의한 인간성 상실에 대해 보여주고 싶었던 듯 싶다. 원작을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영화에서는 그런것이 상당히 생뚱맞게 표현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재미없었던 이유에 대해선 여기까지...
톨킨의 진정한 업적은 판타지의 세계를 열어줬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
사람이 소설을 쓰려면 자기의 경험을 중심으로 쓰든가 다른 사람의 경험 또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취재를 통하여 사실적 기반을 둔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글쓰기란 치졸하거나 여간 힘들고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게 된다.
그럴리 없겠지만 누군가 날더러 소설을 쓰라고 강요한다면 극히 한정된 소재에서 이야기를 뽑기 위해 애쓸수 밖에 없게 된다. 주인공은 평범한 대학생내지 생각이 많은 초딩, 일 잘하지만 병가 잘쓰는 공익요원, 잡생각이 많은 고시생 정도가 될거다. 그런 한정된 소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취재하든지 역사적 사료를 들추어보아 다른 시대의 생활사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현실성을 확보하기 위한 고증이란 매우 힘들고 번거로운 일이다.
하지만 판타지의 세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내가 무슨 말을 쓰든지간에 사실성에 대해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원래 그 세계는 그래 라는 식으로 밀어붙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보다 제약없이 표현할 수가 있게 된다.
하지만 평범한 창의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세계관을 합리적으로 구축하는건 매우 어렵다. 톨킨의 업적은 게으른 이야기꾼들에게 그들의 생각을 고증의 부담없이 펼쳐보일수 있는 세계, 그들의 놀이터를 만들어주었다는데서높이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