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액면가치와 실제가치

누미 2008. 4. 23. 22:14

집안일로 돈을 입금할 일이 있어 ATM을 쓰게 되었다. 적지 않은 액수였고 전부 현금이었기 때문에 부피가 약간 있는 편이었다. ATM에서 입금하는일이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가지고 간 돈을 전부 입금하는데 실패했다. 입금하는지폐 매수가 많다보니 손상된 돈이 몇장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구겨진 돈, 밟힌듯 신발자국이 나 있는 돈, 테이프로 깔끔하게 수선 되어 있는 돈

어찌 되었든 '총재의인'이 찍혀 있는 만원짜리 지폐는 손상된 돈도만원이고 새돈도 만원이다.하지만 손상된 돈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다소 제한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자판기를 사용할때나 ATM을 쓰는 일이다.

같은 값인데도 할 수 있는 일이 적기 때문에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집으로 돌아가서 새 돈을가지고 나오려 생각하니 시간도 아깝고 왔다갔다 차비만 2000원이다. 그래서 길가는 사람을 붙들고, 내가 가진 찢어진 만원권과 상대가 가진 새돈 만원권을 바꿔달라고 한다면 상대는별로 좋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손상된만원짜리 지폐와 함께천원짜리를 한장 더 쥐어 준다면 순순히 응할 사람도있을테고, 그렇다면 지폐가 손상되어서 실질적으로 입은 손실은 대략 천원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액면은 철저하게 같고 시장에서도 대체로 같은 가치로 통용되지만 때때로 실제로는 다른 가치를 띌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사람의 가치도 비슷하게 결정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예를 한가지 들어 본다. 만원짜리가찢어져서 테이프로 정말 깔끔하게 붙였다.전보다 빳빳해졌고 튼튼해졌고, 물이 묻어도 약해지지않고, 왠만해서는잘 찢어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돈 주인은 자기의 수선 솜씨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 지폐는 ATM에서 입금할 수 없고, 자판기에서 물건을 살 수도 없다.

같은 구조로대입해 본다.전과자가 개과천선을 해서 사업을 번창시켰다고 치자. 분명히 훌륭한 일이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과거에 범죄를 저질렀다는점이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도 있다.아무 하자없이 인생을 살면서 사업을 번창시킨 사람보다는 좋지 않게 평가할 수도 있을 것다.

비단 그 사람의 과거 행적 뿐만이 아니다. 출신배경, 외모, 심리적 성향 등등 수치화 시키기 어려운 많은 요인들로 인해겉으로 드러난 액면가와 실제 가치는 차이를 갖게 될 수 있다.

같지만 같지 않다는 미묘한 차이 때문에 세상 일은 좀 더 복잡하게 돌아가는 듯 하다.

다만 주의할 점은만원짜리 돈이 아무리더럽더라도깨끗한 오천원권과 바꾸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때때로 화려한 외양에 속아서 진정한 가치를 놓치는 일은 주의해서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