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씨앗

생각 2011. 5. 3. 21:56
만들어 놓은 것을 분석하고 비판, 개선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뭔가를 만드는 일은 어렵다.

어떤 생각의 시작점은 멍하게 정신을 놓았을 때 찾아오기 쉽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묵상, 명상, 참선은 그런 이유에서 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미련해 보일수도 있는 백팔배나 삼천배 역시 고단한 몸을 만들고 절하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자유 연상을 유도하는 효과 때문에 할 것 같다.

나는 가사없는 음악, 뜻을 알아듣기 어려운 외국노래를 들으며 자전거를 탈 때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아래 예제를 하나 써 본다.

오늘 잠깐 자전거를 타면서 도달한 결론은 경영학이 사회 후생에 도움이 되지 않기 쉽다는 것이었다.
가사 없는 노래를 들으며 자전거를 타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땀이 나네. 이어폰에 땀이 차겠어.
소금기하고 습기가 이어폰이 망가지는데 영향을 줄까? 망가지면 새로 사야 하는데, 이건 핸드폰 전용 이어폰이지.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나오기도 하고 전화를 받을 수 있는데 다른 회사와 호환이 되지 않아. 따로 사려면 비싸던데, 겨우 이런 음질 내는 이어폰을 사는데 만원 넘는 돈을 내는건 아까워. 좀 더 비싼 모델이 값은 비싸도 가격대비 성능이 상당히 괜찮다던데, 다음에 살 때 그걸로 할까?
그런데 그건 왜 그렇게 비싸지?
재료도 비슷한걸 썼을 테고, 원가도 비슷할 텐데. 재료를 비싼걸 썼더라도 그게 얼마나 한다고. 진동판을 금박으로 만들었다고 치더라도 개당 들어가는 양 자체가 너무 작아서 그것 때문에 값 차이가 몇만원씩 나는 건 아닐텐데..
생각을 이어나가보니 비슷한 사례가 많았다.
쿼드코어나 듀얼코어나 웨이퍼 값은 비슷하게 들텐데.. 2기가램이나 4기가램이나 비슷할텐데, 500기가나 3테라나 재료비는 비슷할텐데.. 하드디스크 만드는데는 대략 플래터 몇장과 7200RPM모터, 하우징이 들어가고 대략 알미늄과 구리가 700그람정도 들어간다는 점에서 생산비는 비슷할 것 같다. 그런데 같은 비용 들여서 어떤 건 일부러 성능을 떨어지게 생산한다. 이어폰도 비슷한 재료비와 노임을 들여 질이 떨어지는 물건을 생산한다. 고급 제품을 설계할 때 든 비용은 매몰비용이기 때문에 보급형은 설계를 덜 열심히 한 제품이라고 싸게 팔 이유도 없다. 게다가 공정을 통일하면 규모의 경제 때문에 비용절감 효과도 있다. 이런 행태는 비용 최소화를 추구하는 생산자 이론에 부합되지 않는다. 추가 비용을 들여서 더 나쁜 제품을 생산한다는 점에서도 사회 전체의 후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기업들이 그렇게 제품 차별화를 한다.
그 이유는 이윤극대화이다. 모든 제품을 최고품질로 생산한다면 시장원리에 의하여 최고급품을 지금처럼 비싼 가격에 판매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점시장 이론에서 가격차별정책이 이에 해당한다. 경영학은 이윤 극대화를 위한 생산, 판매, 관리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마케팅은 경영학의 주요 분야이다. 경영학은 아담스미스의 주장과 달리 개개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한 노력이 전체 사회의 이익에 부응하지 않을 수도 있게 한다. 이는 경영학이 시장 기능을 원활시 작동하는 것을 거스르는 수단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원리를 성립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완전한 정보다. 브랜드는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완전하고 정확한 정보가 아닌 생산자 스스로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제공한다.
경영학, 특히 경쟁의 산물인 마케팅은 완전경쟁시장 원리를 와해시키는 강력한 무기이다.


자유연상에 의한 생각의 흐름을 나열해 보니 도발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정말로 그런건가에 대한 검증은 다음에 자전거 탈 때 따져보면 된다.

"경영학은 시장경제체제 전체의 관점에서는 해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의 씨앗은 이어폰에 찬 땀이었다.

좀 더 빠져 들어보면 얼마든지 반박할만한 생각들이 떠오른다. 예를 들어 비싼 가격이 존재할 수 없었다면 좋은 물건을 개발할 유인이 있었겠는가? 그것에대한 반박으로써 좋은 품질은 외부 경쟁자와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일 뿐이라는 반박으로 이어지고 생각의 갈래는 끝없이 펼쳐질 수 있다.

생각의 씨앗은 우연에서 찾아오지만 그것을 발전시키는 방향 및 사유의 깊이, 정치함은 지식과 소양에서 나온다.
얕은 지식이 아쉽고, 배움이 풍부하지 못하다는 점을 항상 느끼고 있다.
Posted by 누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