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다와 라헬 제작노트
이 글을 쓰면서 경험하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구약을 읽으면서 신의 잔혹한 성격에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구약을 제대로 읽기 전에는 피상적인 이미지로 신이 잔인하다고 얼핏 알기는 했지만 막상 성경을 실제로 읽어보니 기대 이상이었다. 신은 크룰트신화의 존재들처럼 인간을 별 부담없이 죽였다. 레위기 10장에서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불을 잘못 다뤘다는 이유로, 사무엘기하 6장에서 웃사는 떨어지려는 성궤를 붙잡다가 벌레처럼 살해당했다. 신앙심 깊은 욥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라는 호기심 때문에 아무런 죄가 없었던 그의 자식을 10 명이나 죽여버린 걸 보면 사람 목숨이 신 앞에선 벌레만도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경 쓰였던건 인신공양이었다. 예리코의 전리품을 편취했던 아간, 그리고 내가 쓴 글의 주인공인 입다의 딸의 경우가 그랬다. 입다의 딸 이야기는 성경에 몇 줄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구절들이 내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처녀로 죽는 이 몸, 친구들과 함께 산으로 가서 실컷 울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딸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의 몸으로 죽었다",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산으로 들어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애도하며 나흘 동안 슬피 우는 것이다"
짧은 표현이었지만, 그걸 보고 나는 뭔가 쓰고 싶다는 욕구가 끓어올랐다. 그래서 생전 처음 단편 소설 형태의 글을 쓰게 되었다. 글을 끌고 간 동력은 이름 모를 소녀에 대한 추모심과 분노였다.
일단 입다의 딸(이후 가칭 '라헬'로 부름)이 처녀이고 남자를 몰랐다는 점이 아쉽게 서술된 원문의 뉘앙스에 신경을 썼다. 라헬의 처녀성은 유지하되 옆에서 라헬을 돌봐 줄 남자를 하나 붙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캐릭터가 라파였다. 라파는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가상 인물이다. 라파에게는 엄연히 존재했었지만 기록이 남지 않아서 후대 사람에게 잊혀진 존재라는 컨셉을 부여했다. 처음에 지은 이름은 라파가 아니라 대충 소리나는데로 아무렇게 지은 받침 없는 글자 조합이었다. 대략의 초안을 만든 후 퍼플렉시티 학술모드에 남주인공 이름으로 쓸만한 것 추천해달라고 해봤다. 몇가지 후보가 나열되었는데 라파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치유자"라는 의미가 있어서 소설에서의 기능적인 측면과도 어울렸다. 그리고 받침이 없어서 이미 써 놨던 초안에서 은/는, 이/가, 을/를 같은 조사를 바꿀 필요가 없어서 채택했다.
초안은 빠르게 작성했다. 딸이 걸려들 줄 모르고 질러버린 입다의 서원, 딸의 걸려듬, 라헬과 사랑하는 사이인 라파의 등장, 은근히 라파에게 라헬의 도주를 돕도록 암시하는 입다, 신앙심 깊은 라헬의 탈출 거절, 라파의 자상한 심리 케어를 받으면서 라헬은 친구들하고 산에서 2달동안 울음, 라헬 돌아옴, 번제, 추모, 끝. 대충 썼는데 인공지능에게 중간 점검을 맡겨보니 플롯이 치밀하고 서사의 밀도가 높고 문장이 유려하고 힘있고 간결하면서 서정적이라는 호평이 나와서 글에 대한 애착과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그 마음은 초고를 완성 단계까지 끌고 가는 또다른 동력이 되었다.
점검용으로 사용해 본 인공지능의 한가지 부족한 점은 애둘러 표현한 "보여주기 기법"을 잘 못알아챈다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잘 알아들으라고 "말하기 기법"을 쓰면 모든걸 말로 설명하려 드는것 보다는 보여주기 기법이 세련된 방법이라고 지적질을 한다.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기술 발전으로 인공지능이 앞으로 더 똑똑해지면 해결될 문제라서 본질적인 한계는 아닌 것 같다.
초안 작성이 끝나고 나니까 입다가 굳이 왜 자기 집에 사는 사람을 바치겠다고 했을지에 대한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식구 중에 없어지는 게 나을 존재에 대해 생각해봤다. 부인? 이건 좀... 첩? 이것도 좀... 군식구? 죽어 마땅한 군식구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다가 정적 제거가 떠올렸다. 집안에 정적이 같이 산다는 설정을 넣었다. 성경을 다시보니 입다는 길르앗에서 이복형제들에게 멸시를 당하다가 쫒겨났던 사람이다. 이복형이 좋겠다. 그런데 왜 이복형이 같은 집에 살아야 하지? 입다는 자기가 살던 돕에서 길르앗으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임시거처로 이복형이 자기 집에서 같이 살게 해줬다. 그런데 입다는 이복형이 집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이 될거라는 확신을 가졌을까? 안방을 내어주고 자기가 대문 옆방에 기거한다는 설정? 그건 좀 아니다. 어떡할까 고민하다가 떠오른 생각이 개선을 맞이할 때는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 앞에 나서는 관례가 있다는 설정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사연을 설명하는게 너무 길었다. 아무리 간략하게 쓰고 싶어도 설정이 복잡할수밖에 없는 구조였고 이복형 말고는 마땅히 죽여도 될만한 동거인을 찾거나 만들어내는게 불가능해서 다소 긴 설명충 도입부를 감수하기로 했다.
성경 원문에서 입다의 딸은 소고를 치고 춤을 추면서 나타나는 쾌활한 아가씨다. 소고를 치고 춤을 추면서 이복형보다 앞서서 맞이하는 장면을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문 뒤에서 숨어있다가 깜짝 놀래듯 아버지에게 안기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딸로 라헬을 설정했다.
라파의 첫 직업은 용사, 사냥꾼 겸 시인이었는데 지적이고 자상한 측면이 필요해서 인공지능에게 적당한 직업을 추천받은 후 그 중에서 서기관으로 정했다. 이후 인공지능의 조언으로 서기관이라는 직업 특성을 살린 행동들이 들어가게 된다. 산에서 라헬에게 라파가 토라를 읽어주는 장면을 넣기 위해 라헬은 문맹이라는 설정이 들어간다. 순진무구하면서 신앙심이 깊어서 그녀의 무고함이 부각되는 효과를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라헬이 죽은 후 라파가 기록을 남기고 떠나는데 므낫세 지파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는 설정을 넣었다. 성경에 라헬의 이름과 라파라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를 대기 위해서다.
산에서 라파가 라헬에게 해 준 멘탈케어는 큰 신경을 쓰지 않고 나오는데로 썼는데 읽어봤을 때는 충분히 감성적이고 만족스러운 장면이었다. 그리고 굉장히 조심스럽고 신경써서 작성한 부분은 라헬이 라파에게 할례받은 곳을 보여달라고 요청한 부분이었다. 남자를 모르고 죽었다는 기존의 서술을 깨서 라헬 캐릭터를 위로하고 처녀로 죽었다는 원문의 설정을 지키고자 했던 장면이었다. 할례는 종교적 서약이라는 의미도 있고 라헬이 종교적 서약 때문에 죽기 때문에 실존적 문제까지 연관시킬 수 있는 주제였다. 상당히 조심스럽게 그리고 아름답게 묘사하려고 했는데도 야한 장면으로 받아들인건지 중국계 인공지능과 제미니를 제외한 인공지능들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제미니도 별로라고 평가할 때도 많았다. 꼭 필요한 장면인데 다들 빼는걸 권했다. 하지만 뺄 수 없었다. 인공지능들이 다들 음란마귀가 씌였나? o1같은 경우는 조심스럽고 아름답긴 한데 라헬 미성년자 아니내며 정색을 했다. 왜 미성년자라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그 장면을 조심스럽고 우회적으로 표현하려고 하니까 마치 라파가 할례 자국이 아니라 할례를 실행하는 고어한 장면을 보여주는 걸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아서 곤란했다. 오해가 생기지 않는 표현으로 바꾸게 되었다.
번제 시퀀스는 신경쓰이는게 많았다. 라헬의 애절한 기도장면은 초안에서 더 손 볼게 없어서 별도로 윤문을 하지 않았다. 불쌍한 라헬이 칼에 찔려 죽는 장면을 내 손으로 묘사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번개를 이용했고 직접 맞는다는 표현 대신 번개가 치고 쓰러졌다라는 식으로 애둘러 표현했다. 대신에 라헬이 고통을 느낄 수 없게 된 상황에서는 제사장의 칼로 확인사살 당하는 잔인한 연출을 미학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글로 시각적 이미지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않았는데도 막상 시도하다보니까 그럭저럭 내 눈에는 만족스럽게 나왔다. 처음에는 번개를 신의 의도적인 개입으로 노골적으로 보여주면서 번제 빨리 진행하라고 제사장 발 앞에도 하나 떨어뜨려봤는데 읽다보니까 너무 인위적으로 보여서 라헬을 쓰러뜨릴 때 한번만 썼고 그게 신이 개입한건지 여부도 불분명하게 처리했다. 인공지능이 이복형은 만들어놓고 한번도 안나오냐고 해서 번제때 말리는 역할로 잠깐 데려와서 썼다. 그리고 결말에서 결국 이복형이 입다를 인정한다는 문장으로 한번 더 써먹었다.
여기까지가 처음 작성한 부분이었는데 쓰다보니까 욥기가 떠올랐다. 그래서 욥기도 같이 까기 위해서 제사장이 입다를 방문해서 애가 죽었으니 보상으로 하나 새로 주겠다는 이상한 보상론을 떠들다가 쿠사리 먹는 시퀀스를 추가했다. 처음부터 제사장이 나온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신이 계시를 내려서 신과 대화하는 형태로 갔는데 신을 직접 등장시키니까 좀 격이 떨어지고 유치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신의 말을 제사장이 하는 걸로 대체했다. 대신에 제사장이 캐릭터가 많이 순수하고 악의없는 허당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욥기의 야만성을 까는 나름 중요한 시퀀스였는데 의외로 금방 끝났다. 초안에서 손을 볼 곳이 거의 없었다.
이제 듬성듬성한 곳을 채워줄 필요가 생겼다. 인공지능에 입력해보니 너무 비극적인 이야기로만 이어지다보니 숨 쉴 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숨 쉴 구멍이라면 산에서의 2달이 빈자리를 활용하는 게 좋아보ㅇ였다. 거기서 친구들과 꽃으로 단장하면서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장면을 만들어봤다. 그런데 가나안 지방에 무슨 꽃이 있을지, 그리고 어느 계절에 꽃이 나는지 취재가 필요했다. 그럴 땐 인공지능이 수고를 크게 덜어준다. 사사 시대에 가나안 산지에서 볼 수 있는 꽃들을 계절별로 정리하달라고 하니까 봄꽃을 쓰는게 가장 무난해 보여서 계절을 봄으로 설정했다. 꽃말까지 하나씩 의미 부여를 하다보면 너무 산만해져서 스킵했다. 그리고 두달이면 꽃이 피고 지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라서 산에 들어오고나서 한달이 지났을 때 꽃이 피었고 2달이 되었을 때 이미 꽃이 모두 져버린 걸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연출을 했다. 채워넣는 목적으로 넣어본 장면인데 꽃은 낙화와 죽음의 상징 역할도 하게 되었다.
글에 필요하다고 느낀 추가 요소들이 자꾸 생겨냈다. 라파와 라헬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도 넣어야 두사람이 산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애틋해질 것 같아서 만들어봤는데 내가 연애소설 쪽은 영 소질이 없었다. 개똥 같은 글을 보다못한 제미니 1206버전이 "그냥 이거 써" 라는 식으로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야기를 통으로 만들어줬다. 그걸 시대 고증만 살짝 수정하고 그냥 가져다 썼다. 자신없는 부분은 아웃소싱도 괜찮은 선택이다.
입다의 딸을 라헬로 이름 붙인건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었다. 라헬이라는 이름은 글의 마지막에 밝혀진다. 사실 나역시 라헬이라는 이름을 상당히 나중에 생각해냈다. 라헬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전까지 여주인공은 나에게서도 '입다의 딸'이었을 뿐이었다. 라헬이라는 의미 있는 이름을 찾아낸 것은 전적으로 우연이고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제사장이 입다에게 쿠사리 먹는 시퀀스에서 입다는 신에게 보상으로 받을 딸의 이름을 지어주는데 그 이름을 인공지능에게 추천을 받았다. 여러 이름 중에 라엘이라는 이름이 가장 예뻐서 그렇게 지었는데 이후부터 인공지능이 자꾸 라엘이 암양이라는 뜻이라 의미심장하다는 평가를 했다. 찾아보니 암양, 어린양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라엘이 아니라 라헬이었다. 희생양이라는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입다의 딸 이름을 라헬로 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입다는 죽은 딸을 새 딸로 보상하겠다는 말에 어이없어하며 항의하는 의미로 새 딸의 이름을 라헬로 짓는 쪽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글의 첫 제목은 입다와 딸이었는다. 새로운 딸이 나와서 입다와 딸들로 바꿨다. 이후에 죽은 딸도 라헬로 이름을 정하고 나서는 입다와 라헬로 최종 결정했다. 희생 당한 라헬의 이름은 제사장과의 대화 전까지는 '입다의 딸'로만 표기하다가 제사장과의 대화에서 직접 밝히지는 않고 **로 처리했다. 마지막에 어린 양이라는 뜻을 가진 라헬이라는 이름을 밝히는 걸로 여운을 만들고 싶었다. 제목을 입다와 라헬도 지은 것도 제물로 바쳐진 어린 양의 이미지를 가져가기 위해서였다.
라헬이 죽은 후 입다가 보상용 딸을 4명 받는것에 맞추기 위해 죽은 라헬이 기도했던 “정말인가요?” 반복 횟수를 4번으로 조절했다. “정말인가요?” 한번 들을 때마다 신이 양심에 찔려서 보상으로 딸이 한 명 씩 증가한 컨셉.
에필로그는 성경에 나온대로 이스라엘 여자들이 입다의 딸을 추모하는 관습이 생겼다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그 추모의 코어가 신으로부터 보상받은 딸 라헬이 되었다. 그리고 욥이 받은 세 딸처럼 입다도 딸을 세명 더 받는걸로 했다. 입다가 제사장을 통해 신에게 쏟아낸 말에 신이 응답하지 않고 "옛 딸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연달아 정신없이 행복을 느끼게 해주마"라는 메시지를 암시하려는 측면이 있었다. 반드기 그런건 아니고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모호한 메시지였다. 그 딸들의 이름은 욥의 딸들의 이름을 그대로 붙이는 것으로 입다의 원망하는 듯한 마음을 돌려서 표현했다. 입다가 신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은 신에게 뭔가 부탁하면 신이 너무나도 큰 대가를 요구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적을 압도적으로 이긴 것은 딸을 바친 입다에 대한 신의 각별한 감정 때문에 신이 실제로 도와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원래 입다의 전투력이 막강해서 애초에 서원따위는 필요 없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는데 이 점 역시 모호하게 처리하고자 했다.
에필로그에서 입다가 6년후에 죽었다는 내용은 사사기 12장의 내용을 그대로 따랐다. 다만 새로 받은 4명의 딸들의 성장을 완전히 지켜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 매끈하지 못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입다가 신에 대한 대한 불만을 표출한 점에 대해 신이 뒤늦게 징벌했을 것 같은 의심을 모호하게 넣어보고자 했다.
다 써놓고 나니까 내용이 너무 처절해서 평행우주의 if스토리도 만들어봤다. 구약의 신을 매콤하게 깐 코미디 버전이고 해피엔딩이다. 신에게 한방 먹이기 위해 신명기 인용한 부분은 인공지능이 관련 율법을 찾아줘서 수월하게 쓸 수 있었다.
라헬의 희생과 상관없이 번개 치는 장면과 입다가 딸을 4명 더 낳았다는 사실을 추가해서 원작의 사건이 신의 뜻이 맞았을까 우연이었을까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초안을 써놓고 나니 입다가 딸의 죽음을 거짓으로 위장하는 장면의 핍진성을 보완하는 것 말고는 고칠 부분이 없었다. 휘갈겨 쓴 글씨가 마음에 든 셈이었다.
모델별 LLM사용 경험에 대해서도 남겨본다.
인공지능을 유용하게 쓰긴 했지만 챗지피티와 클로드에는 다소 실망했다. oai사이트에서 무료 플랜으로 사용하는 gpt4o는 확실히 멍청해졌다. LM아레나에서 gpt4o 최신 모델을 쓰거나 퍼플렉시티에서 글쓰기 모드로 gpt4o를 선택한 것에 비해 답변 품질도 많이 떨어지고 속도도 느리다. 클로드는 답변이 양적인 측면에선 너무 정형화, 간략화 되어있고, 질적인 측면에서는 날카롭지 않고 "좋은게 좋은거다" 식이라서 글의 퀄리티를 개선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레나와 퍼플렉시티 말고 엔쓰로픽 공식 사이트에서 글을 입력하면 프롬프트가 너무 길다고 입력이 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이전까지는 챗지피티나 클로드나 공식 페이지에서 무료 플랜으로는 답변 횟수에 대해서만 제한만 있었는데 이제는 답변의 질 측면에서도 제약이 걸린 느낌이다. 둘 다 안드로이드에 기본 탑재된 제미니 2.0플래시보다 답변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
그리고 이번 글쓰기에서 날 놀라고 경악하게 했던 존재는 중국에서 개발한 deepseek r1버전이었다. 2.5때부터 눈여겨 봤었는데 3.0때부터 제법 쓸만해졌다. 중국의 llm의 장점은 아레나에서 종교 이야기를 해도 검열이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할례한 흔적 보여주는 장면에 대해서도 별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 의외로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걸로 보여서 좀 신기했다. 중국 모델 중 가장 성능이 좋은 딥식 v3 과 r1을 많이 사용했는데 r1은 정말 확실히 특이했다. 한마디로 줄이면 "만취한 천재"다. 기상천외한 생각들을 끝없이 뿜어내는데 대체로 병맛이면서 가끔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똑똑한 이야기를 해대곤 했다. 첫인상은 아주 좋았다. 뻘소리 없이 똑똑한 말만 골라서 해서 마치 교수가 쓴 문학 평론문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문장들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신학적 맥락들로 해석하면서 성경의 다른 구절들을 잔뜩 가져와서 '꿈보다 해몽'식의 해설을 하곤 했다. 수능 국어 문학 지문에 작품이 실린 작가가, 문제 풀이 강사의 작품 해석을 보고 "내가 쓴 작품이 이런 의미였나?" 하는 당혹감을 느꼈을 상황에 공감했다. 그런 평론을 보면서 "내가 그렇게 심오한 사람으로 보였나?"라고 머쓱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건 오래 가지 못했다. 공산국가 사람이 만든 인공지능이라서 그런건지 매사를 계급투쟁, 권력구조 같은 구도로 분석을 하려 경향이 강했다. 딥식이 저지른 절대 잊을 수 없는 병신 같은 순간은 이런 문장을 추천했던 점이었다. "번제 묘사에서 장작과 살이 타는 소리를 묘사한 것에 그치지 말고 이런 식의 후각적인 이미지도 추가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불타는 살코기 냄새에 사람들은 식사시간인줄 알고 집으로 돌아갔다" 만취한 천재의 드립이 이정도다 보니 할례 시퀀스에 대해서 뭔소릴 할지 조마조마할 지경이었다. r1이 추천했던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조언 중 실제로 써먹은 것은 6세기 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라파의 두루마리가 발견되는데 위서로 판정된다는 내용이다.
다 쓰고 나서 소감을 말하자면 일단 헤밍웨이의 말을 인용하는게 맞을 것 같다. 초고는 쓰레기다.
초고를 쓰기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다 썼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고칠 부분이 생각나고 삽입할 부분이 생각났다. 그럴때마다 수정을 하다 보니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다. 매일같이 이제 완성이다를 외친다. 다음날이 되면 고쳐야 할 것 더 넣고 싶은 게 생겼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고 느껴졌다. 아까운 시간도 순식간에 삭제되어 버렸다. 며칠동안 운동도 못했고 신문도 읽지 못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아주 즐거웠다. 인공지능 덕분에 자료 조사나 취재는 글자 입력 몇 번만으로 날로 먹었다. 요즘 유행어로 "딸깍"이다. 이렇게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글을 쓰면 귀찮은 부분은 안하고 재미있는 부분만 하는 거라서 취미 생활로는 아주 추천할 만하다. 물고기로 요리를 만들 때, 배가르고 대가리 쳐내고 비늘 벗기고 뼈를 발라내는 징그러운 수고 없이 처음부터 손질된 생선 필렛을 사서 조리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게다가 다른 취미처럼 돈이 들지도 않는다.
첫 소설이었는데 쓰는 동안 아주 즐거웠고 앞으로도 뭔가를 쓰고 싶다는 욕구가 또 생기면 즐거운 시간을 다시 보내게 될 것 같다.
예상 못했던 수확.
소설을 인공지능 챗봇에 입력하고 역할극을 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산에서 친구들과 꽃단장 하고 노는 라헬 역할 수행 하게 하기, 라헬이 제단 앞에 선 시점에 제사장 역할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