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할아버지
남한산성 서문에서 직진해서 하산을 하는 길은 상대적으로 길이 험한 편이다. 내리막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서문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살짝 위를 쳐다보는 게 좋다. 멀찌감치서도 보이는 전망대 옆에는 나무 데크로 만든 계단이 있다. 나처럼 하산에 약한 사람에게는 지옥에서 만난 지장보살 같은 계단이다. 그 계단을 타고 끝없이 이어진다고 느껴지는 내리막을 다 내려오면 평탄하고 수월한 하산 길을 만나게 되고 그 길로 계속 내려가다 보면 조그만 다리로 계곡을 건너게 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길 옆에는 등산모를 쓴 턱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의 금속제 흉상 하나가 있다. 석재로 만들어진 흉상 좌대에 커다랗게 새겨져 있는 이름은 "산할아버지"다. 좌대 왼쪽 면에는 돌아가실 때까지 등산객들이 편하게 산을 탈 수 있도록 다리와 계단을 각각 3개씩 손수 만들고 등산로를 정비하고 주변에 관상수 심고 가꾸면서 노년을 보냈다는 할아버지의 생전 이야기가 쓰여 있다. 나를 구원해 준 그 나무 데크 계단을 산할아버지가 직접 만들었는지, 아니면 그 뜻을 이어받은 다른 사람들이 만든 건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계단 덕분에 나는 안전하게 산을 내려올 수 있었고, 예전부터 그런 등산로를 조성했던 할아버지의 흉상을 보면서 감사와 존경을 느꼈다. 그 이후 나는 가끔 산을 오를 때 산성까지 올라가진 않더라도 그 흉상 앞을 지나가곤 한다. 볼 때마다 불교 신자가 보살상을 보고 경건한 마음을 가지는 것처럼 산할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산할아버지 앞을 지나다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좌대 위에 반짝이는 금색 비닐 조각이 보였기 때문이다. 산을 사랑하는 할아버지 얼굴 앞에 쓰레기를 굳이 버렸어야 했을까 한심하단 생각을 하면서 그 쓰레기를 산 아래까지 가져와서 쓰레기통에 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 껍질을 까지 않은 사탕 2 개였다. 누군가 산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소소한 공물인 사탕으로 표현하려던 것 같았다. 훈훈한 마음 한편으로 약간의 찜찜함도 남았다. 비를 맞으면 사탕은 녹아서 사라지겠지만 비닐은 흉한 쓰레기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약간 더 생각을 해보니 그 사탕은 등산객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나누어준 산 할아버지의 정신에 부합하는 면이 있었다. 무한 내리막 계단을 거치면서 다리 힘이 빠진 등산객이 산할아버지 앞에 놓인 그 사탕을 먹는다면 남은 길을 내려가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사탕을 놓고 간 사람은 사탕 몇 알로 산할아버지에 대한 소박한 존경과 감사를 표하면서도, 나눔의 정신을 실천했던 산할아버지의 흉상을 통해서 힘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 보인 것 같았다. 산할아버지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저승에는 마음만 도착할 뿐 사탕이 오지는 않아요. 마음은 잘 받았으니 사탕은 누구든 필요한 사람이 먹어요."
나만의 과잉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등산객을 돕고자 했던 산 할아버지의 마음을 작게나마 따르며 사탕을 놓고 간 사람의 호의에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다음날 나는 다시 산할아버지를 찾았다. 사탕은 치워져 있었다. 누군가에게 요긴한 에너지원이 되었을 수도 있고 산할아버지를 존경하는 사람이 주변이 지저분해질까 봐 치웠을 수도 있다. 내 입가에는 나도 모르게 잔잔한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