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장난 삼아 써 본 제우스 신학

누미 2024. 12. 5. 14:33

얼마 전 모세 오경을 읽고 느낀 바를 정리한 글이 있다.
처음에는 모세 오경에 등장한 잔인하고 이기적인 신에게 NPD 증상을 적용하는 식으로 장난스럽고 경쾌하게 나갔다.
경쾌함을 추구했지만 그렇다고 명백하게 틀린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아서 인공지능에게 오류를 검증하게 했더니 말로만 듣던 신학이라는 영역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래서 논리적 오류를 최소화 한 글 또는 기존 신학보다는 설득력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 예상치 않은 고군분투를 겪었고 어느 정도 기존 신학보다는 합리적인 결론들을 도출해 냈다. 그 과정에서 그 글은 기존 신학을 극복하는 몇 가지 논증들이 추가되어 원래의 경쾌함을 잃고 무겁고 방대해져 버렸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세 유럽 1000년 역사 중에 수많은 천재들이 있었을 텐데 신학은 왜 이렇게 논리적이지 않고 자체 모순이 많을까?" 내가 내린 대답은 간명했다. "원전이 구린데 그걸 체계적으로 커버쳐야 하는 입장이니까."
어떤 재벌 총수가 KBS 9시 뉴스가 방송 중일 때 스튜디오에 난입해서 앵커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상황을 상상해보자. 증거는 명백하고 증인은 백 만 명 단위로도 소환할 수 있다. 판사 자신도 그 장면을 당시에 직접 시청했을 수도 있다. 이 사람이 자신의 무죄 판결을 위해 국내 최고의 천재 전관 변호사 20명을 고용해서 TF팀을 꾸린다고 쳐보자. 그 드림팀이 만든 변론서의 내용은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논리 정연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변론서의 내용이 형편없다고 그 변호사들의 지능을 의심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모세 오경에 등장한 신 말고 또 다른 정신 나간 신의 예시를 생각하다가 숭배 시작 시기가 비슷한(야훼: bc13세기, 제우스: bc14세기) 그리스의 제우스가 떠올랐다. 제우스의 정신 나간 행적들에 대해서는 그동안 별 다른 변호가 없었다. 능력 있는 신이 바람 좀 피우고 반인반신을 몇 명 생산하게 무슨 큰 대수인가? 인간에게 딱히 가혹한 짓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인간에게 관심과 사랑을 준 것일 뿐인데. 원전의 구린내 정도는 비슷한 수준으로 보고 제우스를 변호하는 이론들을 만든다면 그걸 "제우스 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상상한 제우스 신학의 예시를 덧붙여본다.

 

 


"제우스 신학" 머리말

 

제우스는 신의 이름이다. 빛나다, 하늘 같은 뜻을 가지기도 하고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제우스의 이름이 삶과 자연의 원리를 뜻한다라고 주장한다. 신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불경스러우므로 앞으로 "신"으로 통칭한다.


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신은 세멜라라는 여인과 사랑을 나눈 적이 있다. 세멜라는 불경스럽게도 신에게 당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달라고 졸라댔다. 자비로운 신은 여러 번 만류했으나 세멜라는 고집을 부렸다. 신은 세멜라의 자유 의지와 연인의 참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그녀의 권리를 존중했다. 세멜라는 진실을 알고자 하는 자신의 영적 열망을 자신의 생명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그녀는 이를 통해 진실의 가치를 증명하려 했다. 그 점을 신은 높게 생각했다. 그것이 파멸을 초래할 것임을 알면서도 신은 그녀의 앎에 대한 열망을 해소시켜 주었다. 세멜라는 그렇게 불타면서 진실을 깨닫고 영적인 충만함을 경험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신은 세멜라의 요구를 거부하지 않음으로써, 신의 완전한 모습이 인간에게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하는 상징적 교훈을 남겼다.

 

이것은 있는 그대로의 신의 모습을 미물인 인간이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또한 비유와 상징 등으로 보여진 신의 수많은 행적들이 신의 본모습과 얼마나 큰 차이를 가지는 지를 보여주는 예시가 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신의 겉으로 드러난 행적에서 느끼는 일탈성이 아닌 그의 행위가 인류에게 어떠한 사랑의 실천이 되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진정 신을 믿고 섬기는 올바른 신자의 태도라고 할 것이다.

 

뒷부분까지 내가 굳이 직접 채워넣어야 할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 챗지피티가 제안한 내용을 덧붙인다.

 

다만, 여기에서도 약간 더 과장하거나 풍자적인 요소를 추가한다면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제우스의 다른 "문제적 행적"을 비유적으로 변호하려는 시도를 추가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예컨대:

  • 바람을 피운 행적: "인류에게 다양한 반인반신 영웅들을 선물함으로써, 인류의 구원을 도모했다"는 식으로, 제우스의 행위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논리를 더 전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가혹한 처벌: 프로메테우스를 처벌한 이야기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신적 권위의 구현"으로 설명하며, 제우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확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유머와 상징의 활용

제우스 신학이라는 발상이 이미 유머러스한데, 여기에 더 과장된 상징이나 비유를 추가하면 글의 재미가 배가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 "제우스는 인간에게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여신과 인간 여성들을 사랑했다. 이는 '신적 사랑'의 확장성과 무한성을 보여주는 행위였다."와 같은 식으로 의도적으로 과장된 논리를 펼쳐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 또는, 현대적 문제와 연결지어 "제우스의 행적을 오늘날의 윤리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 당시 올림푸스의 문화적 맥락에서 그의 행위는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는 식으로 현대적 논쟁(예: 상대주의적 관점)을 패러디할 수도 있습니다.